Friday, November 21, 2008

책 리뷰-짜르의 마지막 함대The Tsar's Last Armada/2003/중심 출판사-쓰시마 (동해) 해전 신화의 후일담

콘스탄틴 플레샤코프 지음  표완수, 황의방 옮김/중심


앞에 군신으로 이순신에 대한 일본 함장 도고의 예우글은 인상적이나 자세한 출처를 밝혔으면 더 좋았겠다 (사실무근일 가능성이 높다)

👉시바 료타로의 소설 <언덕위의 구름>에서 출처가 나온다.
https://dankunjosun.blogspot.com/2021/08/30-50.html

도고에 대해서는 고집불통이었던 성격,1863년 사쓰마번 전투에 포병으로 참가했다.이 책의 서술과는 다르게 일본으로서는 꽤 선전한 전투였다. 수많은 사무라이들이 칼을 뽑고 해변으로 달려갔지만 영국함선은 상륙없이 함포사격으로 주변을 불바다로 만들고 배위의 악사들은 밤새도록 즐거운 음악으로 일본인을 조롱했다.

도고는 영국유학을 가 형편없는 영어실력과 학업수행능력을 보였다. 수학은 굉장히 잘했다.

교회에 자주가 예배도 참석하고 찬송도 한 걸봐선 어학실력향상을 위해 그런한 듯하다.

사진자료가 좋고대부분 소묘 , 어색하고 낯선 그러나 화려한 러시아 황실얘기

러시아육사에 들어가려면 혈통이 좋은 말 한필을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귀족풍얘기

그래서 로제스트 벤스키는 해군으로 돌려야 했던 삶의 좌절

함장간 권력암투,국제법상 사실심사inquiry가 논의된 도거뱅크Dogger Bank 사건등이 생생이 전해서 좋으나 역시 번역서라 내용이 건조하다


나름대로 모든전쟁이 다 그러하지만 악전고투로 이루어낸 해전이고


아시아 국가가 서구를 상대로 이뤄낸 첫 승리해전



화약의 위력이 일본것이 더 우수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린 흥미진진하다

러시아함대는 껍데기뿐이고 전력보강도 훈련도 되어있지 않았으며 해전에 대한 전문가도 없었다.그리고 중요한 결정은 현장지휘관이 아닌 황제가 독단으로 결정하였다.

현장지휘관은 전쟁전체에 대한 상황파악도 되어있지 못했고, 정보도 없었으며, 러시아-프랑스연맹/영국-일본 동맹으로 인한 정치외교적인 걸림돌에서 그때그때 외교적 판단을 해야만하고 러시아함대는 이동하면서 물자보급(석탄,식수)에 전전긍긍했으며 고물선(전투함도 아닌 여객선,황족의 유람선도 있었다.)은 늘 고장으로 말썽을 일으켰다.

보어전쟁으로 궁지에 몰린 영국은 아시아쪽 우군이 필요에 의해 일본과의 동맹이 필요했고 일본은 영국의 최첨단군함을 지원받았다. 멀리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보어전쟁의 영향이 조선의 생존에 밀접한 국제외교적 군사적 역학관계의 변화를 몰고왔다.

크림전쟁에서의 원한으로 러시아함대의 모든 정보는 영국이 취합하여 신속하게 일본으로 전달되었다.

로제스트 벤스키가 열받으면 쌍안경을 집어던져 여러개 비치해놨다는 기록도 군바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성질이 지랄이라는것을 보여준다.별명이 '미친개',,,,,


👉동해로 오면서 러시아 함대 수병의 일상

일본이 전쟁비용으로 고심할때 (러일전쟁 당시 일본국민총생산의 6년치 자금이 들어가는 전쟁비용 중 40%를 해외조달 이중 반은 영국, 반은 유대계 미국인 제이콥 시프에게 빌림.러시아의 유대인 탄압에 분노해 대출)  미국계 유태인이 자기민족을 탄압하는 러시아를 견제하려 미국금융을 움직여 일본을 지원했다는 조용헌샘의 <인생독법(2018);정확히는 "유대인경제사" 인용> 내용이 있으며https://dankunjosun.blogspot.com/2019/04/2018_24.html 

사카모토 료마가 일본왕후의 꿈에 나타나 안심하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시바료타로/대망25 사카모토 료마/동서문화사)

이 해전의 승리(1905년 5월27일)로 일본은 1945년까지 전성기를 구가하고 러시아는 볼세비키혁명에 들어간다. 일본은 이 당시 비밀리에 혁명지도자를 지원했다. 해전직전 1905년 1월22일 피의 일요일사건이 발생하여 러시아는 러일전쟁에 장기지원을 할 수 없어 속수무책으로 일본에 유리한 방향으로 협상을 하게된다.

만약에 러일전쟁이 장기화되었다면 중일전쟁처럼 일본은 자체적으로 파산했을 것이다.

권성욱님의 중일전쟁https://dankunjosun.blogspot.com/2018/03/blog-post_31.html에서도 언급되지만 청일전쟁,러일전쟁의 승리가 일본이 오판하는 계기가 되었고 진주만 기습, 중일전쟁의 시궁창에 빠지는 계기가 된다.

지엽적인 전쟁과 상대국의 내부사정을 무시한 자화자찬식 오판(일본은 2천6백년이래 한 번도 패한적이 없다,,엥??)이 자국민을 사지로 몰고  주변국에 민폐를 끼치고 원자폭탄을 두발이나 맞고 패망하는 계기가 된다.

이 해전은 이후 <건담>https://dankunjosun.blogspot.com/2018/08/2017_29.html<우주전함 야마토>등 많은 창작물에 영향을 준다.




출반전 극동으로 출발하는 러시아 해군수뇌부는 배의 수에 집착했고 로베스트벤스키는 배의 수준을 걱정했다. 도고의 배는 최신함이었고 고물배를 거느릴 책임이 없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일본관


교전시 서로의 포격에서  양측의 부정확성이 상당했고, 명중된 탄의 파괴력과 일본 시모세 폭약이 러시아함대의 모든 것을 태워버렸다.

            👉쓰시마 해전으로 러시아 함대의 사망자는 5,045명(장교209명)
               208일간 3대 대양 항애 완수
              러시아 군함이 구형이었음에도 일본군함에 더 많은 포탄 명중시켰다.
              
패인으로
  1. 정찰을 무시하여 전투 대형전에 일본 함대 공격받음
  2. 전투계획부재
  3. 위장실패 흑색+밝은 황색 도색
  4. 함대의 선두 전함만 포격


로제스트벤스키는 일본 사원에서 수용되어 지내다 혁명정신을 깨우친 수병들의 선상반란 위협속에 블라디보스톡에서 시베리아철도를 타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귀환하였다.수용된 러시아수병은 전투광경이 꿈에 나타나 괴로움을 겪었다. 혁명의 불길이 번지는 러시아 곳곳에서 혁명가들은 로제스트벤스키가 평소 그들의 행동에 분노와 냉담함을 보였지만 열렬히 지지하였다.



그는 이후 군사재판을 받는 수모를 받았으나 무죄 방면되었다.적함에 포위되어 변변한 공격도 하지않고 무고한 휘하수병을 살리려 항복한 네보카토프는 10년 형을 살았다.그가 타던 기함은 일본군에 나포되어 1915년 함포포격훈련 표적용으로 파괴되었다.뤼순,쓰시마,블라디보스톡에서 사망한 1만2천명의 러시아수병을 기리는 교회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세웠다.40여년후 2차대전 승전국이 되어 만주로 밀고 온 소련군은 잔존 일본인을 무참히 살해하였다.

1905년 5월27일 쓰시마 해전(동해 해전) 패배후 7월 29일 미국과 일본은 카쓰라 태프트 밀약을 맺고, 조선은 11월 17일 을사보호조약으로 외교권을 발탁 당한다.이 해전에서 러시아함대가 이겼다면 아니면 절반만이라도 블라디보스톡으로 귀향했다면, 러시아의 혁명이 늦게 발발하거나 장기전으로 취했다면 조선의 운명을 달라졌을까? 

조선이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면 분단되지 않고 공산화가 되었을까?(전쟁전 일본은 러시아에 38선 이남만 자신들이 지배하겠다는 중재안을 제안했고 러시아가 거부하였다.)

 2차 대전은 발발하지 않고, 태평양전쟁, 중일전쟁으로 수많은 인명피해는 피할 수 있었을까?





👉경기도 연천에 갔다가 러일전쟁 관련 흔적을 발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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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 러일전쟁에 관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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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이누가미 일족 (1976) > -옛날 영화인데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의 홍보 메일을 받아 확인해 보니 재팬파운데이션 무비페스티벌을 상암동 영상자료원에서 하고 있었다. 👉 https://www.koreafilm.or.kr/cinematheque/programs/PI_01578 예약을 못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