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December 20, 2008

절두산 切頭山성당 Jeoldusan Martyrs' shrine과 당산철교 아래

1866년 병인박해...깔창,칼부림

카톨릭,서학은 종교적인 면보다는 당시 조선사회의 개혁사상으로 평등사상에 대한 갈망으로 수입되었다.

고인물이 썩듯이 500년을 이어온 조선은 이미 자체 정화능력을 상실했고
임진,병자 두 외침으로 민생을 피폐해질대로 피폐했다.명이 청으로 일본은 도쿠가와정치체계로 새바람을 일으키는데 조선만 현체제를 고수하니 변화에 대한 사회욕구가 팽배하였다.

병인양요로 프랑스함대가 양화진까지 쳐들어와 서강까지 진출함에 천주교신자가 통모하고 뱃길을 인도한 죄를 물어 이 장소를 택했다한다.

저위에서 목을 쳤는지 아니면 아래 백사장에서 쳤는지...

박물관안에 사망자 기록을 보면 어린이도 있고 여자들도 많다.

정약용,정약전 기록이 있고 김대건의 시체 조각(성체)가 있다.

놀라운 것은 김대건이라는 인물이 거물이라는 거다. 라틴어? 영어?로 쓴 편지에 당시의 박해상황을 그림과 같이 적어 외국신부인지 교황청에 보냈는데 고문의 세밀묘사도 그렇지만 학원도 없고 요즘처럼 배워도 라틴어?영어?편지 쓰기 힘든데 그옛날 라틴어?영어? 편지를 쓴단 말인가?

기념비 옆에 있는 소주병과 술안주가 어제 저녁 방탕을 보여준다.

<자전거 여행>에 보면 이승훈과 정약용이 막연한 사이였으나 죽음앞에 이르러 서로를 저주하고 신을 부인하였다 한다.


정약용은 밀고댓가로 목숨을 부지했다하는데 이후 어떠 기록에도 그당시 상황을 회고하거나 반성,부연하지 않았다 한다.

인감됨,반성,자기통찰은 어려운가 보다.

사지여서 분위기 쇄신차 당산철교로 주위를 어수선하게하고 새남터성당 옆도 한강철교가 흐른다.최창조샘<땅의 눈물,땅의 희망>참조.새남터성당에서 으시산한 분위기를 느꼈는데 그날의 피냄새가 풍긴다.

김대건 신부도 그렇고 다른 순교자도 죽음직전에는 신을 영접했을까?




서구외침의 장소였고 1894년 4월13일에는 김옥균의 시신을 능지처참하여 효수하였는데 병인박해나 김옥균사건이나 이곳이 형장으로 결정된데에는 사람의 왕래가 잦았다는 것이다.













여름에 암만 더워도 예 앉으면 시원하니 그날의 참혹함은 알수 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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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이누가미 일족 (1976) > -옛날 영화인데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의 홍보 메일을 받아 확인해 보니 재팬파운데이션 무비페스티벌을 상암동 영상자료원에서 하고 있었다. 👉 https://www.koreafilm.or.kr/cinematheque/programs/PI_01578 예약을 못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