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서울 촌놈으로 매일 지나는 경복궁,인사동,창덕궁,남산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나 인상이 없다.
"2백전의 정조시대는 청나라문물과 서구 천주교를 위시한 문화까지 받아들이려는 문화역량이 있던 때였고 그러하기에 "창덕궁"과 "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는 것이다.지금부터 2백후 어느 문화적 산물이 세계로부터 이만한 평가를 받을지 현재로서는 장담할 수 없다."
<정조대왕의 꿈/유봉학/신구문화사/2001/서문중>
옆 매점에서 컵라면을 먹는데 가족여행을 수원에서 왔다고 한다
금천교위의 석수 해학이 엄친다.
창경궁 옥천교 위 석수도 만만치 않다 ㅎㅎ
👉 https://dankunjosun.blogspot.com/2019/12/blog-post_22.html
👉경복궁 근정정 석수 쌍사자상
👉원본은 여기다 두고 경복궁복원공사시 새로 깎아 만든듯하다.
👉경복궁 영제교 석수 혀를 내밀고 있다
👉경복궁 석수
우주,풍수지리,음양오행의심오한 의미가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마치 살아서 날 쳐다보는 듯하다.
진선문쪽이 넓고
숙장문쪽이 좁다
우측에 인정전으로 가는 인정문이 있다.
우측 종묘로 가는 기(?)를 살리고 가늘고 길게 보이게 하기 위해 주변 자연을 최대한 살려보려는 조선건축의 특징이라고 안내하시는 분이 설명해주셨다.중국은 아예 평지로 밀어버린다고 한다.한때 태종이 둘러보고 삐꾸난 모양새에 건축책임자 박자청을 귀양보내며 노발대발하였지만 세종이 취지를 알고 멀리 보낸 귀양지를 근거리 수원으로 배려하고 나머지 형기(?)도 감면해주었다고 한다.
👉후원에 있는 연경당에 온돌이 사용된 건물벽
대조전을 바로 보면 알 수 없는 기품이 있다.지붕에 용마루가 없어 왕=용임을 알 수 있다. 국왕이 사용하므로 어도와 계단이 일원화되어있다.
수려한 색상이 환상적이다
영국다임러사가 1914년경 제작한 전세계3대밖에 없는 차
나라는 망해 어딘가에서는 외롭게 독립운동한 분들도 계셨을텐데,,,
왕족이 할복은 못할망정 어차를 타고 다녔다고?
복원공사로 인해 정갈하고 깔끔한 궁으로 거듭났다.
주변 직원들도 친절하고 (중학교때 경복궁 갔다가 외국인 출입구로 입장했다가 여직원에게 얼마나 무안을 당했는지 지금도 기분이 안좋다)궁궐을 설명하는 역사선생님이 상주하며 외국어 능통자도 대기중이시다.
가장 아쉬운 것은 넓은 공원을 걸을때 목이 말라도 물마실 음용수 나오는 곳이 없고, 커피와 음료을 파는 찻집도 한군데 멀리 있다는 점이다
당시 일반 백성들은 이곳에 들어올 수 없었을 것이다.
도성건설에 강제동원된 백성이나
이후 복원공사에 동원된 많은 노동자를 기리는 기념문구나 설명안내는 없다.
당시 월급은 얼마나 받고 하루 몇시간씩 일했으며
하청업체가 단가후려치기는 하지 않았는지,,
망국의 책임있는 지배층에 대한 선망과 향수만 가르치고 항상 조명받으며 숟가락얹은 사람들만 기리는 분위기로 장식되어
씁쓸하다.
도성작업에 참여한 석공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한양도성박물관 전시물
동대문역사박물관에서 <훈련원과 하도감>전에서 그나마 3D영상으로 힘든 공사현장을 보여준다.👉https://dankunjosun.blogspot.com/2019/05/blog-post_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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