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황샘 당시의 역사의식이나 시대사조를 엿볼 수 있다.지금 살아계셔 국립박물관만 가보셔도 이렇게 쓰지 않았을 것이다.
붓을 어떻게 놀리면 저런 필체가 나올까?
야심에 찬 글귀다.자신의 성공만 꿈꾸었지만 정치적 내리막길을 걸어 몰락할 것을 상상하지는 못하였다.
박용호는 평생 김옥균에 열등감을 가졌고 미국에 가서 항구 노가다를 왕족인 내가 어떻게 하냐고 돌아왔을 정도로 정치개혁을 추구하면서도 신분제의 우위를 절대적 가치로 살았다.
일본에 망명중 김옥균과 다르게 차분한 생활로 보냈다 하는데 글씨체는 김옥균과 정반대다.
앞에서 한 여학생이 글귀를 입으로 따라 낭송하여 못보고 지나가 김정희 글을 못찾고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보니 그 여학생이 보던 것이 김정희 글이었다.
힘과 기술이 조화를 잘 이루었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추사의 가르침을 받고 조선최고의 난초화가가 되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