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anuary 11, 2020

조선.근대 서화전-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

 대통령께서 예술의 전당 신년음악회에 오신다하여 경호하는 인력이 상당히 많이 왔다.하지만 특별히 제재하거나 권위주의적인 위압감을 조성하지 않았다.




 

 이황샘 당시의 역사의식이나 시대사조를 엿볼 수 있다.지금 살아계셔 국립박물관만 가보셔도 이렇게 쓰지 않았을 것이다.




 붓을 어떻게 놀리면 저런 필체가 나올까?






 이완용도 당대 수재였고 글과 그림에 능했으나 역사적 평가 앞에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필부가 되었다.


 야심에 찬 글귀다.자신의 성공만 꿈꾸었지만 정치적 내리막길을 걸어 몰락할 것을 상상하지는 못하였다.

 박용호는 평생 김옥균에 열등감을 가졌고 미국에 가서 항구 노가다를 왕족인 내가 어떻게 하냐고 돌아왔을 정도로 정치개혁을 추구하면서도 신분제의 우위를 절대적 가치로 살았다.

일본에 망명중 김옥균과 다르게 차분한 생활로 보냈다 하는데 글씨체는 김옥균과 정반대다.











 앞에서 한 여학생이 글귀를 입으로 따라 낭송하여 못보고 지나가 김정희 글을 못찾고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보니 그 여학생이 보던 것이 김정희 글이었다.

힘과 기술이 조화를 잘 이루었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추사의 가르침을 받고 조선최고의 난초화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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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이누가미 일족 (1976) > -옛날 영화인데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의 홍보 메일을 받아 확인해 보니 재팬파운데이션 무비페스티벌을 상암동 영상자료원에서 하고 있었다. 👉 https://www.koreafilm.or.kr/cinematheque/programs/PI_01578 예약을 못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