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December 30, 2024

다시 동학이다. Reviving Dong Hak (2024)- 남태령 전봉준 트랙터 대첩에서 우금치전투가 소환되다.

11월 19일 창덕궁 뒤에 있는 마고 카페 북촌 시네마에서 
석화정 선생님께서 
올해 마지막 상영작으로 
<다시 동학>을 선정한 이유를 설명하실 때만 해도
나는 과거의 상념 속에서 갇혀있는 동학군을 생각했었다.

그리고 12월 3일 밤
절차상 하자가 있는 계엄이 선호되고
12월 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 의회에서 가결되자 

혹시 북촌 시네마 관계자가
 작두를 탄 게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21일 전봉준 투쟁단 트랙터 대행진이 
남태령에서 경찰에 막혔다가 
시민들의 자발적 투쟁으로 
경찰이 봉쇄를 풀고
한남동 대통령 저택으로 
행진하게 되면서 
동학이 과거완료가 아닌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피부로 느꼈다.

전봉준 투쟁단
남태령이
지금의 우금치다.








☝분명 북콘서트가 있다고 공지도 있고 
문자도 받았는데 
관성에 절어 
7시에 가서 북콘서트를 불참하게 되다. ㅠㅠ







유동종 감독님의 <다시 동학이다> 영상 상영 후 박맹수 전 원광대 총장님의 좌담이 있었다.
영상 중 박홍규 작가의 판화 그림이 자주 나왔다.


☝전주 동학혁명기념관에 있는 박홍규 작가의 판화작품

아래 내용은 박맹수 전 총장님의 좌담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전주 동학혁명기념관에 있는 수운 최제우의 친필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 선생님은 부친 최옥(1815~32 ; 63세 늦둥이)이 퇴계 학풍을 이어 받은신 분이시고 퇴계의 제자들과 교류가 빈번했다. 그러므로 최제우의 동학에는 퇴계 학풍의 유교 사상이 녹아 있다.
용담유사의 회확록에는 이언적과의 교류 흔적이 보인다. 다만 최제우는 최옥의 적자가 아닌 서자라 조선시대 시스템의 한계를 빨리 느꼈으리라 생각된다.

미르체아 엘리아데(Mircea, Eliade)의 저서 <샤머님즘> 언급

퇴계학의 경(敬) 사상은 신분 질서를 공고히 하는 경향이 있어 동학은 한글로 저작을 썼고 민중과 사상을 공유하였다. 당시 시대상을 보면 근대화의 바람으로 대량 출판이 가능해져 민중의 자각이 빨리 일어나던 시기였으며 근대 시작을 알리는 인물이 바로 최제우였다.

200~300만 가지 불어난 동학교도가 우금치전투에서 30만 명까지 사망했고
이후 증산도나 원불교에 영향을 미쳤다. 근대문명에 대한 자각으로 눈에 보이는 것을 개혁하려는 것이 동학이었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개혁하여 하여 신비주의로 흐른 것이 증산도였고 물질이 개벽하니 정신을 개벽하자고 한 것이 원불교였다.

조선 경국대전 내의 합법적인 요소로 교조신원운동을 하다 한계에 봉착하자, 개혁, 혁명으로 동학운동이 발전하였다.

<1894년 경복궁을 점령하라, 나카츠카 아키라, 박맹수 번역, 1994, 푸른역사> 언급

우금치 전투 후 대둔산 항쟁 언급, 1895년 2.17~18 사이 일분군이 기습

당시 25명 정도 있었고 김석순 접주가 한살 아이(딸)를 안고 100m 산 아래로 투신하였다. 남아있던 임산부는 처형되었다. 이후 일본군은 천황폐하 만세삼창을 하고 하산하였다.

연산현에서 일본군이 전사한 기록, 한국, 일본학자가 공동 연구하였다.

1995년 7월 훗가이도대학교에서 동학교도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일본 병사의 종군일지, 2016년 소설 중 1907년 군대해산 후 연산 현감을 지낸 장교가 일본군 전투에 참전한 기록이 있다. 지식인, 관료가 지원했다는 기록이다.

일본이 가해자로서 스스로 상처나 아픔을 밝히는 것이 진정한 치유가 될 수 있다.

박맹수 총장님은 80년 5월 광주 당시 군인이었고 이를 계기로 동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자신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전봉준은 따뜻한 남자였다.



Q. 영화에 나온 동학답사기행는 대해 설명해 주세요.

A. 2006년 처음 시작했고 내년 20주년 큰 행사를 기획 중이다. 10월 말 5박 6일 정도 기획하고 있다.

Q. 동학혁명이 3.1 운동 이후 현대사에서 단절된 느낌이다.

A. 동학도 초창기에는 문화공동체 운동이었다가 혁명이 패하고 천도교로 종교화되었다. 이후 사회공동체 속으로 들어갔다. 원불교 내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사회 곳곳에 시민 운동이나 운동권, 촛불 시민 운동, 최근의 응원봉 집회 등으로 스며 들었다. 

동학 세력이 5가지 흐름으로 전수되었다.

1. 천도교로 계승

2. 친일파 세력으로 변질

3. 은둔 청림교 등

4. 활빈 운동, 의병, 만주 독립군 활동

5. 신종교 증산교/원불교 사상, 철학, 학문, 동호회 등 확대되어 민중운동이 되었다.

Q. 동학을 지칭하는 용어가 다양하다.
A. 교과서는 운동으로 일본에선 (갑오) 농민전쟁으로 혁명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농민으로 본 것은 계급적인 표현이 들어갔다.

Q. 역사학자들의 관심은 어떻게 변화하였나요?

A. 대체로 역사학자를 세대별로 구분하자면 1세대 이병도 이하 조선사편수회소속이었고 그 당시 역사평가가 사이비, 전봉준 폭동, 부친의 복수, 전라도 지역, 지역 폭동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서 식민사학을 배우신 분이시고 치명적인 한계를 보여 준다.

2세대는 신용하로 대표되는 식민지사학을 극복하기 위한 저항, 투쟁, 의병, 독립운동에 집착하던 시기였고 민족의식을 강화하는 쪽으로 관심을 가졌고 약자나 여성, 생활사에 대해 소홀했다.

3세대는 인간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4세대는 한문이나 일본 자료 번역에 치중하고 있다.

Q. 동학이 근대사의 출발점이라고 보더라도 요즘 젊은 세대가 미국의 수입된 민주주의나 수입된 사상, 산업화, 민주화에 경도되어 있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다.

A. 2021년 백낙청, 도올, 제가 4시간 토론을 한 것을 유튜브로 방송했는데 3만 7천 회로 호응이 좋고, <창작과 비평사>에서 요즘 나오는 대부분의 주제는 동학이 주요 내용이다.

그래서 한국 사회가 꿈틀거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분단된 나라가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 힘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12.3 계엄이 국회에서 해제되는 것은 민주주의 모범국가라는 것을 보여 준다. 
민주주의 회복력이 대단하다.
 
이러한 힘이 어디에서 왔을까? 성찰, 관심을 가지고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끼고 있다.

우리 안에 자주적 자생력이 무엇일까? 
미국, 일본, 유럽과 다르다. 
세대 불문 찾기 시작했다.

 백낙청의 창비는 동학, 개벽 사상에 집중하고 있다.

안양천에서 
한강으로 
황해바다로 
태평양으로 
거대한 흐름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Q. 초창기에 동학을 믿는다고 하지 않고, 동학을 "한다"고 하였다.

A. 옛말에 "젊은 사람 무시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어디로 튈지 알 수 없고, 성장 가능성이 무한하기 때문이다. 콩나물을 키워 보면 알 수 있다. (이른바 콩나물 전법) 답사, 다큐, 책 등으로 알리려야 한다.

젊은이를 가르쳐 보면 발아가 되는 과정이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 젊을 때 경험이 평생 간다.
만남과 교류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젊은 세대 안에서 
스스로 응원봉을 
들고 나오는 
창의성이 놀랍다.

젊은 세대에 대한 믿음, 마치 콩나물에 거름 주듯,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다. 변화가 곧 진화가 되고 가능성이 폭발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시천주"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시천주(侍天主) : 인간 속에 존재하는 한울님을 잘 모셔야 한다는 천도교 교리



                ☝ 박맹수 전 총장님께서 참가자들에게 친히 책을 보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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