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편을 보고 일제강점기 일본에 간 조선 여성 노동자 이야기라는 것을 대충 알고 갔다. 마침, 영화 상영 장소인 씨네큐브 광화문 앞에 뉴욕 출신 작가 조나단 보롭스키의 "해머링 맨"이 망치질을 하고 있다. 1976년 튀니지의 구두 수선공이 망치질하는 모습을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현세 작가의 <영원한 제국>에서 조선 여공 이야기를 처음 접했다.
몽당연필에서 단체관람 기회를 마련했다.☝관객과의 대화하시는 이원식 감독님, 조청향, 조사량, 강하나 배우님
사회자 : 몽당연필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 이번에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이원식 감독님 : 몽당연필은 예전부터 알았고 이번에는 조선인 여공이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존재에 대해 작품을 준비했다.
오사카 출장을 가서 다른 작품을 준비하다 조선인 여공에 대해 알게 되었다. 조선인 여공이었던 일반인 이야기를 알게 되어 다큐로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의 감동이 있었다. 그분들의 조재에 대해 몰랐다는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재밀동포가 아닌 우리들의 이야기로 만들고 싶었다.
사회자 : 강하나 배우는 현재 한예종에서 마지막 학기를 다니고 있으며 몽당연필 거리 캠페인에도 참여해 주셨다. 조찬양, 조사량 배우는 자매이며 일본에 있는 극단 "달오름"에서 활동하였다. 왜 배우가 되었나요? 어떤 이유로 연기를 하게 되었을까요?
강하나 배우 :어머니(배우 김민수)가 극단 달오름을 창단하셨다. 어렸을 때 아역배우가 모자라서 그냥 참여하게 되었다.
계속 연기를 하면서 연기에 재미를 느꼈고 스스로 연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국 영화에 출연하고 싶고 한국 대학에 유학을 왔다.
조사량 배우 : 고등학교 연극부 활동을 하다가 연기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하였다.
조청향 배우 :중학교는 조선학교를 나왔고 고등학교는 일본학교를 나왔다. 달오름 공연을 보고 충격을 받고 꼭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일본 고등학교 연극부 활동을 했고 예술대학에 다녔다. 재일교포 4세이고 무대 위에서 해방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회자 : 조천향, 조사량 배우는 자매이다.
관객 질문 1: 개인적으로 세 번째 관람하고 있다. 영화에서 낭송 장소가 어디인가요?
이원석감독님 : 장소가 섞여 있다. 담장은 남아 있지만 내부는 철거되었다. 나고야애 있는 1920년대 방직 방조공장은 60~70년대까지 운영되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모여 가서 찍었다.
조청향 배우 : 나고애 방직 공장을 갈 대 설렜다. 남아 있는 곳이 있을까? 상상력을 자극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여기 어딘가에서 조선인 여공이 나를 보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관객 질문 2 : 다큐 형식인데 재현도 있고 퍼포먼스도 있어 특이하다. 동포 배우를 섭외한 이야기 등이 궁금합니다. 조선 여공의 노래는 증언은 있는데 곡조는 없는 상황이고 조선인 여공의 묫자리도 확인이 정확히 되지는 않았다. 자료가 아주 부족했을 텐데 어떠한 고민을 했을까요?
이원석 감독님 : 재연은 좀 힘들었고 캐스팅이나 재연을 어디까지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대부분의 역사 다큐가 재연을 하면서 사실이 아니라는 모순에 빠진다. 논문이나 연구자료 찾고 대중적인 전달 방법을 고민했다. 그래서 많은 대중이 받아들이기 쉬운 수단을 택했다.
오사카에서 연극 활동을 하시는 분을 섭외했고 감정 표현을 잘 해주리라 기대했는데 정말 잘해주었다.
관객 질문 3 : 연기하면서 신경 쓴 부분이 있나요?
조사량 배우 : 한국어 발음이나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언니나 하나 언니가 말하는 것을 듣고 발음 연습을 했다.
강하나 배우 : 낭독극 연극을 살려서 했다.? 나의 상상이 관객에게 전달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감정과 덤덤한 느낌을 살리려 했다.
관객 질문 4 : 조선인 여공의 노래가 가사는 남아 있는데 곡조는 남아 있지 않다고 나온다.
기억하시는 분은 아직 없다는 것일까요? 조선인 여공은 현재 얼마나 남아 있을까요?
이원식 감독님 : 1910년에서 40년대까지 조선인 여공은 3만 명 정도 있었다고 기록이 남아 있다. 하지만 더 많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오사카 센슈 해안가마다 수십 개, 수백 개 공장이 있었다. 기시와다 방적 공장에만 3만 영이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과 환경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공장마다 조선인 여공 노래가 다 달랐다. 다양한 노동요가 있었다. 1980년대 김찬정 작가가 조선인 여공의 노래 가사를 실었는데 녹음기나 촬영을 하시지 못했다. 그러나 오키나와 조선인 여공의 노래는 가사와 녹음본이 있다. 악보 포함 10여 개 있다.
이번 영화를 계기로 새로운 생존자나 자료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지난주 새로운 증언자가 한 분 계신다고 연락이 와서 다음 달 일본에 가서 만날 예정이다.
관객 질문 5 : 증언할 때 할머니는 어떠셨나?
강하나 배우 : 저는 교포 4세인데 교포 1세를 만났다. 쉽지 않은 만남이었다. 개인적으로 증조할아버지나 증조할머니를 만난 기억이 없다. 촬영 전 기대와 궁금증이 생겼다. 막상 만나니 귀엽다는 생각도 들었고 친할머니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제오늘 일은 기억 못 하는데 그 대 "소녀 시절" 기억은 오래 지났어도 생생하게 기억한다는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버티면서 강하게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조사량 배우: 둘이 노래 부르는 장면에서 불안과 아픈 마음이 교차했다. 둘이서 부르니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청향 배우 : 생선을 사러 가서 조선인 여공을 멸시하는 말을 듣고 썩은 생선을 사라는 말에 울면서 걸어가는 장면이 삭제되었다. (모두 웃음)
에너지 넘치게 나오는 장면은 신경을 썼고 파도 장면이나 이외의 장면이 예쁘게 나와서 좋았다.
이원식 감독님 : 죽을죄를 지었다. 증언이 87개인데 20개 정도만 사용했다. 맥락이 벗어나거나 중복되는 것은 뺐다. 너무 고통스럽고 심한 증언은 언젠가 세상에 알려질 기회가 있겠다고 생각한다. 낭독 당시 오사카 날씨가 너무 더웠다. 모기가 많아서 야외나 무덤가에서 배우 옷에 모기가 붙어 촬영을 중단해야 하나 계속해야 하나 고민했다.
사회자 : 증언집이 더 있나요?
이원식 감독님 :일본에서 발간된 책이 여러 권 있다. 하지만 한국에 번역된 것은 하나도 없다.
관객 질문 6 : 동원된 조선 여공의 숫자가 3만 또는 100만 또는 300만이었다는 주장이 있다.
방적공장에서 준징용을 한 것이 아닌가?
증언자료를 정리하면서 체감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이원식 감독님 : 강제연행이나 징집은 1920년대, 1930년대의 일이다. 1910년대에는 자발적으로 돈을 벌려고 군식구를 줄이기 위해 간 것이다. 하지만 약속한 임금의 1/10밖에 받지 못했기 때문에 속아서 간 것이다. 아파도 병원을 가거나 누구를 만나거나 하지 못했다. 임금 차압이나 구타를 당했다. 그런 모든 과정을 보면 이것이 과연 순수하게 자발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강하나 배우 : 조선인 여공에 대한 이야기는 조선학교에서 배웠다. 하지만 구체적인 이야기는 잘 몰랐다. 촬영하면서 공장 내부환경이나 야근, 기숙사 환경을 처음 알았다. 충격을 많이 받았다.
하루 12시간 노동, 병원에 갈 수도 없는 환경 등을 알게 되면서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많이 배웠고 세상에 이런 진실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조사량 배우 : 저는 처음 알았다.공장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이카이노에 살고 있는데 이곳의 조선인 여공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조청향 배우 : 지금 어른이 된 우리가 잘 듣고 전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관객 질문 7 : 재연 낭독을 하는 연출 방식이 100여 년의 시간 간격을 표현하기에 좋았다. 증언하신 분들은 90세가 넘으셨다. 모두 건강하신가?
모두 열심히 사셨다. 그래서 그 당시 일을 기억하고 계신다고 생각한다. 12시간 노동, 외출 금지 등의 공장 생활 중 아이가 있는 여공은 어는 부분에서 생략된 부분이었다고 생각된다.
이원식 감독님 : 오사카에 있는 다른 동료나 사회 구성원이 있다.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잘 정리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 자막을 이용해 정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수십 년 이야기를 한 시대에 초점을 맞춰 정리하는 것을 고민했다. 영화 후반작업으로 조사량 씨가 출연한 <조선인 여공의 노래>의 스핀오프 작품을 계속 작업 중이다.
영화는 8월 6일 극장에서 개봉하였고 우리가 찢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고 서로 연대하며 유대감을 유지하며 지지와 응원을 해주셨으면 한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