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이란(2002)> 에서 이런 대사가 있다.
선배 : 너 이일 (조폭)한지 얼마나 됐냐?
최민식 : (,,,,,,,,)
선배 : 야! 너보다 경력안되는 니 동생들도 실장님 소리 듣고, 다 독립했는데 너만 왜 이러구 있냐고?
최민식 : (,,,,,,)
선배 : 너 왜 그런 줄 아냐?
최민식 : (,,,,)
선배 : 임마 이 일(조폭)이 너한테 안 맞는 거야! 알아?
그렇다! 그거였다.
노력이 부족하거나 4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정말 무식한 이야기는
누가 만들어 낸 것일까?
근거가 없는 다 헛소리라는 걸 이 책에서 조목조목 설명한다.
1만 시간의 법칙은 틀렸다.
전문가가 되기 위해 1만 시간을 투자하면 어떤 분야도 고수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인데
뻥이라고 반박한다.
지금은 국회의원이 되고 과거에 시민단체에서 활동했고 학생운동을 하다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 사법시험에 붙어 학원강사를 하던 그 분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강의를 하다보면 정말 오랜 기간 공부하신 분들이 계신는데 제가 좀 유심히 보고 상담도 했는데 공통점이 있던 군요. 우리나라 서울법대보다 퀄이 더 높는 도쿄대 법대도 보면 교수님들은 (일본 )사법시험에 안되셨더라구요. 우리나라 법대 교수님들도 그렇구요. 뭔가 학문적인 기질이 있어서 한 가지 주제를 골똘히 생각하거나, 이 책 저 책 비교해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야 직성이 풀리시는 분들은 다 수험기간이 길거나 시험에 안되셨더라구요,,,저는 대학원에 가서 더 깊게 공부하시는 것을 추천해 드리고 싶어요. 시험공부는 그렇게 하면 망합니다."
예전에 같이 회계사를 공부했던 안암골 경영학과 출신은 늘 고민되는 문제가 있으면 학원강사에게 전화상담을 했고 수학 문제가 안 풀리면 도서관에 <수학의 정석>을 들고 와 풀고는 했지만 결국에는 최종 합격 못 했다.
개인적으로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는데 나도 역시 시험보다는 연구나 기자(한 가지 일에 오래 집중 못해서 기자가 되신 분이 있다.) 같은 일을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후회를 해본다.
고3 때에도 "고려.원나라의 연합 일본 침략"에 꽂혀 점심도 굶고 서점에 가서 대학 서적을 탐독했다.
그런데 이 책에도 지적했지만 왜 한국 사회는 왜 그렇게 공부에 결국 좋은 대학에 가려고 집단 광기를 보일까? 이유는 사농공상이라고 유교적 전통이 남아 있고 다른 하나는 다른 대체 직업군의 처우가 명문대-대기업/관료/의사 구조에 비해 너무나 안 좋기 때문이다.
학교 다닐 때 독일의 마스터 제도를 칭송하며 벽돌장인 말씀을 하신 교사분이 계셨는데 우리나라 건축공사장 인부는 일에 대한 사명감도 없고 날림공사를 한다고 개탄하셨다. 하지만 과연 독일과 우리나라의 공사 인부의 처우를 알고 말씀하셨을까?
독일에서 유학하신 교수님도 학교에서 등록금 투쟁을 하면 미국의 사립대학의 등록금을 들이대며 우리나라는 정말 싸다고 하셨는데 그 교수님이 독일의 장학제도가 없었으면 과연 독일에서 학위를 땄셨을까? 왜 자신은 그런 혜택을 받고 미국 대학은 다니지도 않았으면서 한국에 독일식 장학제도를 도입할 생각도 안 하실까? 독일은 대학마다 지하철역이 있다는 둥 어쩌고 했지만 정작 당시 우리나라 사립대학은 대학 기숙사도 없었고 독일 교수가 강의하러 와서 남학생만 있는 것을 보고 남녀 평등에 반한다고 지적하니 웃기만 하셨다.
공부도 운동도 성적 향상을 위해서는 노력보다는 재능이 첫째이며 절대로 노력이 재능을 이길 수 없다는 여러 사례를 보여 준다.
예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염경업 감독과 이종범 코치는 동갑내기 동네 친구였지만 염 감독은 지도자로서 이종범 코치는 선수로서 두각을 나타낸 다른 재능의 소유자다.
미국일수록 이런 재능을 조기에 발견해 픽업 후 전폭 지원하며 자신의 재능으로 이룩한 부를 사회 환원인 기부 문화를 권장하며 재능이 없는 사람이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다른 재능을 발견하고 활용하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한 목사님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종교는 대학"교"라며
한국인이 명문대 입학에 모든 것을 투자하는 세태를 한탄한 글이
세칭 명문대를 나오지 못한 나 자신과 친구들은 그 이후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젊은 날을 보냈던 씁쓸한 상처와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BTS의 성공으로 2024년 프랑스 올림픽에서
이탈리아 체조 선수가 등에 한글 문신을 새긴 뉴스를 보며
외무고시를 합격한 외교관 100명 뛰어다녀도 저런 효과를 낼 수 없다는 생각하며
공부 말고도 문화 영역, 스포츠, 음악, 영화, 댄스, 요리 등이
이제는 공부⇰입시 성과✈평생 장미빛인생이라는 환상 공식에서 벗어나
입시 실패가 평생 낙오자라는 피해의식에서 벗어나게 하는 인식의 전환이 생겼으면 한다.
너 자신을 알라.
내 안에 더 큰 너 자신을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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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보 김경득(1949~2005) 일화가 나온다. 재일교포로 딱히 민족의식 없이 와세다 대학 법학부에 다니다가 "신문기자가 되어 재일 차별과 싸우겠다"고 아사히신문에 지원했지만, 외국인은 취업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아르바이트하며 사법시험을 준비해 합격했으나 외국인은 사법 연수원에 입소할 수 없어 6번에 걸친 최고채판소 의견제출 이후 그의 요구가 관철되어 1977년 최초의 외국인 사법연수원생이 되었다.
'자기 탈환'을 위해 조선인으로서의 피차별 체험을 양식으로 삼아 일본의 차별 구조에 맞서기 위해 사법시험에 도전하기로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분은 공부 머리보다 선배나 교수들이 말하던 독기로 붙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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