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관대첩비를 보면
러일전쟁을 준비하던 일본이
광개토대왕비와 함께
자신들의 미래 운명이
과거의 패전과 데자뷰될까
노심초사한 흔적이 보인다.
광개토대왕비는 군함으로 실어 가려다 실패했고
북관대첩비는 가져갔다 돌려 받았다.
가을마다 장관을 이루는 은행나무
발굴후 관련 기록을 찾아 제자리를 찾아 준 연구진의 노력에 찬사를 보낸다.
지금은 이런 자료가 나와도 일사천리로 연구정리할 수 있는 체계와
인력과 장비가 갖춰져 있는데
활자들이 때를 기다리다
저벅저벅 흙밖으로 햇빛을 보러 나온 듯하다.
시대상에 따라 같은 한글도 다르게 표기되고
일본 도쿄대에 갔다가 관동대지진(1923)으로 다 없어지고 대출본만 남게 되었다.
최근에 고궁박물관에서 <고궁연화> 전시를 보았는데 이 해태가 1927년 당시에는 진흙 속에 묻혀 뒹근다고 표현되어 있다.👉https://dankunjosun.blogspot.com/2022/01/glory-of-royal-palace-30.html
다음 전시 구경은 박수근 님 전시회 ^^👉https://dankunjosun.blogspot.com/2021/12/park-soo-keun-naked-tree-awaiting-spring.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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