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에서 제작한 다큐이다. 박해일 배우가 정치색으로 공격받을 소지가 있는데도 용기를 내어 내레이션을 맡아 주었다.
☝주변에 개봉관이 별로 없어 가장 가깝고 덥지 않은 시간대를 찾아 가다. 문제가 많았던 건물 주인이 바뀌었다.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자주 발행되는 도서문화상품권을 이용하려니 너무 어렵다. 왜 이렇게 복잡하고 쓰기 어려운 것을 만들어 냈을까? 결국 쓰지 못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 발발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
1950년 10월 9일 북진
1950년 10월 19일 평양점령
1950년 10월 중공 대만 점령계획 무산
1950년 10월 19일 펑더화이 30만 대군으로 북한 지원
1951년 1월 4일 후퇴
전쟁 발발 후 저의 3개월 단위로 전세가 역전되었다. 당시 일반 국민들은 정말 어리둥절하고 누굴 믿어야 할지 어떻게 살아 남아야 할까 고민의 고민을 해야 했던 순간순간이었다.
북한군 포로는 13만, 미군과 한국군 포로는 1만이 되어 가면서 양측은 포로 교환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임진강 옆 판떼기 판板, 문 문 門, 상점 店 판문점이라는 일제 강점기부터 있던 지명에 협상 장소로 군인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남일이라는 북한군 협상당사자는 고려인이고 소련 유학파며, 2차 대전 당시 소련군 대위로 참전한 소련통 군인이었다.
미국 수뇌부는 전쟁은 소강상태라 자존심 상하는 무승부가 되더라도 체제승리를 장식하기 위해 북한군의 자유의지를 부추기며 월북은 자제하며 미국으로 입국을 불허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일관하였다. 그리하여 중립국 인도를 88명이 선택해 가게 된다. 그들의 행방은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최인훈 소설의 <광장>)
통영에 북한군 A급 포로를 따로 모아 포로수용소를 또 만들었다.
1953년 아이젠하워가 미 대통령이 당선되고 소련은 스탈린이 사망하면서 전쟁을 주도하던 국가에 정권이 바뀌며 초창기 공세적인 주전론자들이 대대적으로 물갈이되며 휴전이 된다.
대대적인 남북 포로 환영식 이후
남과 북은 포로를 1년간 감시하며 재교육하였고 1급 의심 포로는 즉결 처분하였다. 북한의 A급 친북 포로의 과격 투쟁은 다 이유가 있었다. 자신이 북으로 돌아가 처형당할 수 있다는 불안과 공포였다.
공동경비구역이 된 판문점에서 북한군과 남한군은 서로를 챙겨주며 친목을 도모하며 민족애를 다졌다. 하지만 미군에게는 사납게 대해 헨드슨 소령 사건이 발발했다.
1978년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미군 장교는 죽음 앞에서도 확전을 자제하기 위해 발포금지 명령을 내렸다. 이후 폴 버니언 작전으로 미루나무를 벌목했고 북한군은 미국의 압도적인 전력하에 묵인하였다. ( 개인적으로 중학교 수학샘이 참전해 조금 들었다.)
1984년 러시아 유학생이 판문점을 통해 월남하여 총격 사건이 발생해 다수의 북한군 사상자가 발생했고 미군은 도끼만행 사건의 응징으로 생각했다.
베트남전의 한국군 참여로 (동서양 전쟁 구도가 한국군 참여로 무색해졌다. 박정희는 자신의 남로당 경력을 미국의 의심하자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참전을 감행했다)
1968년 북한이 베트남전 참전 의사를 밝혔지만 확전을 경계해 자제하라 하자 후미를 친다고 김신조 일당 남파.
베트남 전쟁에서 터득한 기술로 판문점 양쪽으로 철책이 세워 지다.
김신조는 인왕산 기슭 세검정에서 자폭하려다 살고 싶은 회의가 생겨 투항, 김신조 일당이 절단하고 들어 온 철조망은 사후에도 군에서 알지 못함 ㅠㅠ
1972년 베트남전 지원으로 미국과 핵전쟁 공포에 빠진 중국이 소련과의 갈등으로 닉슨 대통령과 전격 만나면서 남북 화해 분위기가 생격 이후락이 김일성을 만남
미국과 소련, 중국 등 주변국의 정세변화가 한반도의 온도변화에 직접적 요인임을 시사.
냉전이 한창일 때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군사쿠데타가 일어났으며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문민정부가 탄생했다.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푸틴과 김정은이 북한을 전격 방문하고 노르망디 작전 80주년을 맞이한 지금 전쟁의 먹구름이 유럽 주변을 감싸고 있다.
👉https://chappatte.com/en/images/it-was-80-years-ago
☝이화여대윈도우스 스트라이크모니터링 모임에서 만든 조류 충돌 방지 유리
👉https://www.instagram.com/windowstrike_in_ewha/
☝전쟁의 폐허 속에 일어난 지금 우리는 야생 조류 유리창 충돌도 걱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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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마고에서 북촌 시네마 행사일환으로 송원근 감독님을 모시고 석화정(화정동북아연구소)님과 함께 영화 관람 후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은덕문화원 숨 요가를 하러 갔다가 옆 마고 카페/살롱 마고 북촌시네마에서 영화 상영 소식을 알게 되었다.
한반도의 운명이 이곳에 사는 우리가 결정하지 못하고 주변국의 정치 상황에 따라 격변의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갈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인식하며, 이번 겨울 미국 대선 상황을 주시해야 하는 현실이 두려움과 안타까움으로 교차한다.
☝저녁에 몰려온 비구름과 쏟아진 빗줄기가 카페 마고 옆 창덕궁 돈화문에 먹구름이 그림자를 드리웠다. 마치 다가올 한반도의 안보 위협을 상징하는 듯하다.
조선왕조를 견디어 오며 온갖 풍파를 견디어 온 궁궐에 드리운 그림자를 보며 한반도 전쟁은 임진왜란처럼 모두 국제전이었다는 석화정(화정동북아연구소) 님의 말이 떠오르며-수당의 고구려 전쟁, 당나라의 백제, 고구려 침략. 백제부흥운동과 왜, 당나라와 신라 전쟁 등- 한반도의 주인이 자주적으로 자기 안보를 해결할 수 없으며 왜 우리 안보를 주변국의 사정으로 먼저 결정되는가에 대해 무력감이 몰려온다.
☝고대 한.중.일 관계를 국제전의 관점에서 백강 대전을 설파한 김용운교수의 <풍수화>====================================================
파주 헤이리에는 이북오도청이 주관하는 동화경모공원이 있다. 한국전쟁으로 분단이 되자 남쪽에 남게 된 이산가족이 북쪽이 보이는 이곳에 장지를 마련하였다. 지인의 부친이 인민군으로 참전했다 거제 포로수용소를 거쳐 남한에서 살아가시다 최근 돌아가셨다. 항상 고향을 그리워하셨지만, 생전에는 끝내 가보지 못하셨다. 분단은 아직도 우리 생활 곳곳에 상처를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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