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December 06, 2017

책 리뷰-라이프스타일의 창조자 아르마니 패션제국/이승수 옮김/문학수첩/2008 BEING ARMANI by Renata Molho

                               글을 쓴 레나타 몰로



승승장구만 했을것 같은 아르마니가 자신의 자서전제안을 받았을때

"자서전은 내가 활동하면서 생생하게 겪었던 그 절망들을 낱낱이 드러낸다는 의미"라고 말하여 그의 인생이 순탄치 않았음을 예상케한다.




                                  조르지오 아르마니아 자주 꾸는 악몽,,,
                                   
                                       나는 "(군대)영장 나왔어요!!!"

5.16군사쿠데타나 김영삼 문민정부가 미소간의 관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듯이 샤넬이나 아르마니는 전쟁복구의 부흥속에 분위기를 잘 탄듯하다. 다니던 의대를 중퇴하고 백화점일을 하면서 누구보다 먼저 미국, 일본, 인도 제품군을 먼저 접해볼 수 있었다.


2차대전 후 이탈리아 복구과정에서 
칙칙한 회색분위기의 사람들에게 
무채색 파스텔 분위기 옷을 입힘으로서 
화사한 도시로 거듭나게 했던 
도시전체를 디자인한  화가이다.

언젠가 미술선생님이 간판만 이쁘게 만들어도 도시가 활기찰 것이라고 해서 무심코 간판을 자세히 보는 습관이 생긴적이 있었는데 지나가는 행인이 막입은 검은색 옷을 입고 지나가는 것보다 화사한 파스텔계통 옷을 입으면 화면빨을 잘받아 화면전체가 밝아보이는 드라마 보조출연, 방청객 연출기법을 알고 있었다는 것인가?


2차대전이후 사회, 정치적으로 여성의 진출이 두드러지자 활동적인 의상의 수요에 아르마니가 제대로 과녁을 맞춘 듯하다. 60년대에는 지배적 인물이 시인, 사진작가 였지만 80년대에는 패선이 차지


그의 어린시절은 2차대전 말기 공습으로 영화관에서 관람하다 대피하던 일상이었다.
  
이때부터 영화는 평생 그에게 영감을 주고 작품에 참여하는 단골소재가 되었다.


그는 수줍고 내성적이며 관찰능력이 빼어났고, 꿈에 대한 언급이 많은 걸 보면 직관력이나 영적능력이 뛰어난 사람

조르지오는 처음부터 두각을 나타내는 스타일이 아니라 차근차근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외유내강 스타일이었 던듯,,

아르마니는 담배를 피우지 않으며 술을 많이 마시지 않고 음식을 절제해 먹는다.

(채식주의자), 꾸준한 운동관리, 점심식후 15분정도 소파에서 잠

추위를 잘 타는 체질었던듯,,,

영어를 알아 듣기는 해도 말하지는 못함


전쟁통이라 그의 어머니가 낙하산, 군북등으로 아이들 옷을 해입었는데
이때 어느정도 군복에 대한 영감이 생김

영화를 좋아했지만 전후 밀려온 미국 서부극은 영화관밖 폐허가 된 현실과의 괴리가 느껴져 흥미를 못느꼈다고 한다.

부친이 파쇼연맹 사무직원이라서 전후 8개월 징역, 면회 경험

하지만 이때 부친의 정치활동에 대해 후일 거대집단에 대한 소속감을 주었다고 회고
(그의 주변이 가난해서 소속감이 없었던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성장기는 밀라노의 빈민가에서 보냄. 이후 나름 소탈하고 개인적인 사생활도 이때 형성된것이 아닌가 추정

학창시절 여자머리모양이나 옷입는법 조언해주며 심미안 있는 스타일리스트로서의 기질 발휘



밀라노 국립 의과대학에 입학했으나 중퇴

군복무 군의관으로 생활하며 군에 대한 환상이 깨짐( 군생활은 어디나 마찬가지,,,)

군복무중 백화점(리나셴테-이후 황금컴퍼스상 제정)에 입사하여 건축가 조수로 쇼윈도우장식을 하며 다양한 고객들 앞에 내 던져짐,모든 것을 기초부터 독학으로 공부함

히트맨이라는 이탈리아 첫 프랑스진출 남성복 회사에서 디자인을 하게 되는데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것을 독학으로 성취한 것을 보면  타고난 재능이 있지 않았나 싶다.

스타일리스트라는 개념을 거의 최초로 사용함
(유능한 도안사이지만 재봉은 할 줄 모름)



베네치아의 조그만 사무실에서 시작하여 여러 브랜드들을 위해 디자인을 해줌

조르지오가 초창기 스스로 사진 모델이 됨



1970년대 이탈리아 정치, 경제 불안

석유파동으로 심각한 경제난이 휩쓸었으며 귀부인의 화려한 의상은 정치테러의 타켓이 될 정도로  패션산업 뒷전



베트남전쟁 이후 밀리터리 스타일 유행

군부대에 요청해 현역군인으로 모텔을 써 잡지에 실린후 군복제작 의뢰 받아

70년대 프랑스 섬유의류분야가 노후화되는 과정에서 이탈리아 토리노에 장인적인 봉제사가 많았고 크리차아,윌터 알비니,조르지오 아르마니 등 스타일리스트 세대가 탄생했고 당시 젊은 기자들이 기존 일간지와 달리 패션기사를 양산

신문낱장에서 철자를 몇개 오려내어 그의 이름을 구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아르마니
로고 발전

1976년 미국에 소개할 당시 판매액은 9만 달러였으나 6년후 2400만 달러로 폭등

미국에서 여성의 사회참여가 늘어나며 새로운 유형의 옷을 찾는데 아르마니의 편안함과 건강한 느낌, 건방진 분위기를 살린 재킷이 잘 팔림

수익의 2/1을 이미지광고과 신문광고에 쓰고 기자들을 초대함
1985년  아르마니 10주년 기념 신문지면 10면 광고 등으로 강한 이미지 창조
1994년 총매출의 5% 광고 투자

자신을 드러내는 광고가 아니라 자신의 작품을 해석하는 수단으로 광고게재

화려한 파티를 열어 유명인사 초청,홍보

1979년부터 프랑스의 정신적 예속을 벗어나는 실험계속

수많은 헐리우드 스타들이 주고객이 됨

1980년 리차드 기어가  입은 아르마니 옷들이 나오는 <아메리칸 지골로>흥행


패션으로 미국시장에서의 성공은 미국에서의 성공은 미국인이 이탈리아 이민자를 보는 시각까지 미와 창조력이 있는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바꿔 놓음. 영화 <록키>와 <언터처블>에서 이탈리아 사람을 비하하는 내용이 나온다.

일본 에도시대 그림(우키요에(목판화): 일본 에도시대 풍속화. 우키요 浮世는 원래 우키요憂世이란 불교용어가 17세기 도시경제 발전으로 덧없는 세상이란 뜻으로 바뀌었다.홍석기/인상주의/생각의 나무/2010,272쪽.) 이나 영화<가케무사(1980)>에서 영감을 얻음

히로시게 히쓰나 호쿠사이의 그림 좋아함

모네, 마네, 드가, 반 고흐도 역시 일본 그림에서 영감 얻은 것 상기
(모네는 자신의 아내에게 기모노를 입힐 정도였고, 몇몇 그림은 우키요에 판화와 유사,
반 고흐는 히로시게 그림의 열성수집가였고 모사하여 작품도 남겼다.)

서양과 일본의 교배, 혼용, 암시등에 매력을 느낌

인상주의 화가 전시회 후원

마티스 영향 이브닝드레스 제작,마티스의 <금붕어>영향으로 색조변경

패션은 예술이 아니라고 단언하면서

강렬하지만 결국 아주 단순한 색채에 대한 고심을 많이 함


<타임>지 표지 모델이 된 것은 전후 이탈리아인 중 소수임을 생각하면 파격적

타임지 표지모델이 나간 후 매출액이 3배 폭등

대외적이고 상업적인 부분을 전담하며 내성적인 조르지오를 대신해 회사직원들과 친화감을 유지한  세르지오 갈레오티의 죽음으로 충격. 이후 경영과 디자인을 병행


50% 자국 25% 유럽(특히 독일) 25% 미국 판매

동료들과 불화가 많아짐.실수를 하면 죽이려 들었다고 여동생의 회고
자존심이 강해 여러사람 앞에서는 특히 물러서지 않음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고자 일중독에 빠짐
그러나 가족 친척들과의 유대는 좋았던 듯,,

교황의 성당 복음서 디자인,

1986년 월드컵 이탈리아 축구대표팀 유니폼 디자인


1987년 영화<언터처블>주인공 의상담당 아카데미 최우수 의상상 수상

<펄프픽션>의 우마 서먼이 영화속에서 아르마니 입고 나와

 <스카페이스>의 미셜 파이퍼,<피고인>의 조디 포스터 등 할리우드 유명배우들의 시상식 의상 전담

그들과의 유대관계를 위해 비공식만찬,별장 초대등으로 영화계와 끊임없는 공조유지

사회학이나 인류학자가 아니지만 조르지오는 시대를 예리하게 잘 읽어 나가며 시장상황을 잘 파악함

아르마니의 작업방식에 대한 책자를 내려다  5일 동안 급조해서  촬영한 <메이드 인 밀라노Made in Milan(1990)>상영.


소박함과 단순성을 좋아하고 대중에 모습을 나타내는 것(특히 텔레비전)이 명성을 무너뜨릴 실수를 유발할까봐 자제

90년대이후 이탈리아 정치부패 문제로 복잡해지고 아르마니는 검찰에 소환되었지만 무혐의

당시 부패추방에 앞선 디 피에트로 판사을 대면해서는 판사복보다 붉은 조끼 입은 사복이 더 우아했다고 회고

 중국, 루마니아등이 생산단가를 낮춰 옷제작하며 생산라인의 일대변화를 몰고 옴

피어싱, 문신, 사디즘-마조히즘적 룩, 그런지(꾀죄한 뜻의 grotty+ 끈적거리는 물질 뜻의 gunge에서 나옴)운동 등 유행에 민감하지 않고 자기스타일 고수


베르사체와 라이벌 의식을 느끼며 중간적인 무채색 고수

15년이상 같이한 가브리엘라 포르테가 경쟁자 캘빈 클라인으로 이적

짭을 만들지 못하도록 디테일한 부분을 여러 고난도 기술 도입
아르마니 옷을 구매하는 고객이 다른 사람과 자신을 구분지으려는 심리에 충실하려함


패션의 민주화 요구에는 다양한 가격대의 라인 생산으로  응수

1997년 11월 일본방문 패션쇼 1200명 초대 TV생중계

1998년 파리패션쇼에서 비상구문제로 당일 경찰이 불허하자  초청객을 밖에 세워두고 
안에서 스태프만 참여해 행사 강행

미국패션쇼에서는 소설<게이샤의 추억>여주인공에서 영감 받으것으로 추측되는 신비감있는 패션쇼 진행

2002년 센시 향수 출시때 장예모 감독이 광고 제작

아르마니는 작품에 동양적인 요소를 삽입하지만 
중국인이나 일본인은 뜻밖에 유럽적이거나 서양적인 것 선호해

2003년 영국 축구 국가 대표팀 유니폼 제작

2006년 이탈리아 토리노 동계올림픽 이탈리아 깃발 제작

아르마니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 책

책 내용과 관련된 사진자료가 부족하고

인터뷰내용을 인용한 부분이  많아 읽기에 좀 건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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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이누가미 일족 (1976) > -옛날 영화인데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의 홍보 메일을 받아 확인해 보니 재팬파운데이션 무비페스티벌을 상암동 영상자료원에서 하고 있었다. 👉 https://www.koreafilm.or.kr/cinematheque/programs/PI_01578 예약을 못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