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머리 해안 용뺨 옆에 있다.
멀리 형제섬이 보인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의하면 예산부족으로 80%복원한 것이라는데 1653년 당시에 이런 큰배가 있었다니 놀랍다.
안에 들어가니 인형극 모형 좀 있고 관련 서적 항행로 등이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통해 하멜표류기의 저술동기를 알다.
귀국으로 돌아간 하멜이 임금청구를 위해 쓴 저술의 별책부록.
별책부록이 인기를 얻자 약간 각색하여 표류기로 출간된듯하다.
전하는 말과 인터넷 검색과 책을 읽어보면 조선에서는 풍랑을 만나 제주도에 흘러들어온 하멜일행에 그리 호의적으로 대하지 않았다 한다.
하멜일행은 처음 조선인을 마주쳤을때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는 것도 신기하다.
☞난파한 하멜 일행에 제주도 관리가 심문후 의사소통이 되지 않자 술한잔 따라 주었다.
☞배에 남은 술을 주었더니 맛이 좋다며 많이 마시더니 천막까지 바래다 주었다.
☞난파선 조각을 태우던 중 대포알이 들어 있는 두개의 대포가 폭발하여 모두 도망갔다.
(국가정보를 외부에 유출하는것을 방지하기 위해)외국인을 국외로 내보내는 관례가 없다고 하여 여기서 살도록 배려해주겠다는 국왕의 결정(하멜 일행을 국왕이 친히 접견한 자체가 놀랍다),정말 관례가 없는 일이라 지방관료가 중앙정부에 보고하고 몇달이나 답변을 기다리는 모습도 부분적으로 조선의 중앙집권의 단면을 보여준다.그리고 자주 바뀌는 관리의 행정재량에 따라 대접이 달라졌던 하멜일행들
바로 옆 일본은 실용적인 개방을 하였는데 먹물들의 옹고집이 일본 사무라이 군부의 실용정신 앞에 결국 후일 뒤통수를 크게 맞는다.
반도半島 반만 섬 이란 뜻,북쪽이 대륙에 붙어있고 삼면이 바다라 압록강에서 보면 섬으로 보여 섬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고 설명
청이 서양과 조선이 연합하여 대항하려고 오해한 점,제주도에서 최후를 맞이한 광해군기록,당시 조선 풍습에 대한 기록(상업부기를 못한다고 기록,호랑이가 많다는 기록)은 흥미를 자아낸다.나중에 탈출한 하멜일행이 일본에 요청에 조선의 잔류자를 송환하는 협상을 하고 이에 조선이 응해 모두 일본으로 보내준것도 신기하다.(그와중에 조선에 잔류한 1명도 있었다!)
남편을 죽인 아내는 어깨까지 묻고 나무 톱으로 설컹설컹했다는 기록은 호러였다.
과실치사범에 대한 특이한 처별법도 신기하다
②이 물을 죄인의 입에 깔대기를 대고 먹인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