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궁금해 하던 것이나 교양강의에서 흘려들었던 것을 활자로 확인하는 기쁨을 누리다.
가끔 의문점을 가졌으나 셤에 안나오는 쓸데없는 것에 또 빼곰 관심을 갖는다고 핀잔을 주는 주변인 탓에 맘에 담아 두었던 의문이 많이 풀렸다.
'미국이후'를 제대로 대비하려면 도나스와 도너츠의 차이/빈 라덴과 최익현/유교와 사회주의/갑신정변 다시보기/
아나키스트의 이상과 좌절/후세인과 박정희 등 제목에서부터 문제의식이 가득하며 핵심을 찌르는 목차이다.
도나스와 도너츠의 차이
일본도나스를 먹고자란 386세대는 민권회복을 미국식 도너츠를 먹고자란 세대는 인권신장을 추구했다.
서구민주주의에 대한 몰이해자가 메이져유신으로 단행한 짝퉁민주주의(입법,사법,행정의 3권분립이 아닌 입법 행/사법의 이권분립)를 우리가 그대로 답습.단복수구분이 없는 일어의 한계로 개별,개인근대화,민주주의가 전체주의로 오역되고 우리가 차용하며 같은 모순에 빠져
(민주주의이념을 전체주의로 실행)
케네디의 명연설을 유럽에선 의아한데 우리는 환호하는 이유도 비슷하지 않을까?
(먼나라 이웃나라에서 읽음)
왜 5백전 세익스피어나 1776년 미국독립선언서는 쉽게 읽으며 백여년전 정약용저서나 1919년 3.1독립선언서는 어렵게 느끼는가?구어체개발 못해
일제개작용어 아직도 차용해 사용
(민주화,반체제,일조권,난개발,법률 용어 다수 )
빈라덴과 최익현
이슬람근본주의와 유교근본주의와의 공통점을 찾아내어 기독근본주의까지 찾아내서 질문을 하는 박노자샘과 허동현샘의 재치있는 질문과 답.
두분은 어디서 이런 자료를 찾아내셨는가?
기독근본주의관련 자료는 조용기목사의 글도 찾아내셨다.
"하나님은 자기백성을 위해 전쟁도 불사한다"
"공산주의는 악마집단입니다."
(조용기목사 글)
빈라덴과 최익현의 단순 비교에 대해 후자는 민간인을 공격대상으로 삼지 않았고,최익현이후 그의 추종자가 의병투쟁중에도 적의 민간인을 공격하지 않았다고 답한다.
유교와 사회주의
대학시절 교양강의에서 중국의 주체사상을 설명하시며 공산주의가 맑스에서 나왔지만 중국이전 사상에도 이미 존재하던 이념이라고 가르친다고 들었는데
이 책을 보니 명확하게 정리되어있다.
넉넉한 집에서 자란 마오쩌뚱은 캉유웨이와 량치차오를 읽고 사범학교까지 나왔지만 사회주의지도자로 거듭나게 된 이유는 공자의 대동大同,균분均分사상이 맑스의 공산共産 관념과 대동소이하다고 간파했기 때문이었다.이에 자기 계층의 도덕적해이에 대해 뼈아픈 반성까지 했다는 것이다.
서울대 나온 재벌 2세가 민노당 총재가 되어서 재벌개혁을 앞장섰다다고 할까?
갑신정변 다시보기
대학시절 장관을 지내신 한 교수님이 "갑신정변때 개혁을 단행해 앞서갔어야 했고,우리가 서구사회에 내세울 것이 무엇이냐 지금은 겸손하게 배울때" 라고 하셔서 갑신정변 관련 글과 김옥균의 풍운아적 삶에 관심이 많았었다.
그러면서 갑신정변이후 발발한 동학과의 괴리를 고민했었는데 이에 대한 답을 얻다.
전봉준은 개화세력을 일본과 적은 적으로 간주했고 갑신정변의 주역들은 정변실패이후 일본으로 도피했다가 일본주도 학살과 개혁으로 복권되었으며 전봉준에 사형을 선고한 이는 갑오개혁당시 사법개혁을 주도한 갑신정변 주역 서광범이다.
전봉준은 사형당시 당당하게 거리에서 참형받길 바랬지만 적막한 어둠속에서 교수형을 받았는데 이는 서광범의 사법개혁으로 비인도적 사형제도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김일성은 갑신정변을 높이 평가하는데 대척점에 있는 박정희 역시 평가가 좋다.그 이유는 어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단기간에 관엘리트주도 개혁을 강조하기 위해 편의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기때문이다.
정변당시 무고한 민가방화와 청,일 양국군의 충동로 무고한 백성 100여명이 희생된 점에 대한 참회와 애도 또한 없이 자랑으로 여기던 세력,동학당시 외세에 의해 수십만 한국농민이 처절하게 학살당하는 것에 침묵하였다.(논외 안중근과 동학군이던 김구의 불편한 관계 )
아나기스트의 이상과 좌절
빨갱이라는 말보다 요새는 좌파라는 딱지가 더 불편한 현실이다.
좌파=악으로 모는 극단적인 사고도 많아졌다.
그렇다면 윤봉길의사의 거사에 일본인 사회주의자 종군기자가 자신의 조국 일본의 군국주의에 반대하여 천장절기념식의 명단과 식순을 미리 알려주었다면 좌파라고 다 미워해야할 이유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일본왕의 암살미수로 체포되어 수감된 박열의 연인 일본인 가네코 후미코 역시 사회주의자 아니었나?
가네코 후미코에 대한 위키백과 링크 ☞
후세인과 박정희
후세인에 반대하던 이라크내 정치세력은 미국의 침공이 시작되자 오히려 미국과 게릴라전을 벌였다.이 어찌된 사연인가?
유신독재에 항거 하던 대학생들이 일본이 박정희타도를 외치며 대한민국을 침공한다면 모두다 총을 들고 전쟁에 참전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라크인이 보기에 1920년에 독가스와 폭탄으로 이라크인 1만여명을 학살한 영국과 지금의 미국은 같은 세력으로 파악된다는 것이다.
후세인도 초창기 병원시설개선,문맹퇴치,여성에게 더 많은 자유허용,외지에도 전기와 식수를 공급하고 고대바빌론 문명의 계승자로 대대적인 유적발굴을 한것이 박정희가 한것과 너무나 똑같다.
박정희의 베트남전 참전과 후세인의 이란.이라크전쟁은 개발독재의 후원국인 미국의 대리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1970년 "한강의 기적"과 1980년 이라크가 누린 풍요는 모두 외세와의 타협과 기생으로 이루어진 것인바 만약에 미국과 이익이 충돌한다면 한순간에 틀어질수 있다.
한국의 재벌자본주의와 이라크의 정경유착은 결국 IMF와 미,영국의 군사침략을 초래했다.
(박정희 피살시 핵개발과 충돌을 빚은 후 미국의 사주를 받은 김재규가 암살을 단행해 모처에 숨어산다는 소문이 술자리 괴소문으로 유행하였다,이라크의 쿠웨이트침공은 이라크에게는 영국지배당시 옛영토의 수복이지만 미국에게는 석유지배권에 대한 심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하 두고 두고 탐독할 만한 고전의 반열에 오를 명작이다.
**곁가지
국정교과서문제로 시끄러운데 나는국정교과서 세대이고 우스개 소리로 고지식한 붕어빵 답변을 국정교과서식 답안이라는 농담을 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주변 대학의 대자보를 탐독하고 형의 불온서적을 보아온 탓에 정부의 거짓말을 다 알고 있었다.
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을 몰래 읽고 자면서 엉엉 울었고, 계엄군이 쫒아오는 꿈을 꾸고 소스르라치게 놀라 일어난 곤 했다.
지금도 비오는 날 군인을 보면 착검한 계엄군이 떠오른다.
(이래서 청소년은 권장서적을 봐야해)
이후 국정교과서가 폐지된 김대중,노무현때 학교를 다닌 애들이 반정부,친한나라정서를 보이는 현상을 보며 국정교과서가 없어도 우경화되는 경로는 여러가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이 있고 구글검색,페이스북,유튜브가 있어 정부의 의도를 가진 국정교과서작업은 세금만 축내는 헛수고가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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