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
맹자
|
이성계
|
정도전
|
소련
|
맑스
|
레닌
|
트로츠키?
|
조선건국을 이렇게 설명하신다,,,ㅋㅋ
고려를 낡고 누추하게 묘사할수록 자신이 세운 조선은 찬란하기 마련
황제를 칭한 고려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고려 황제 연호 준풍
팔만대장경을 전쟁 제작했다는 것은 고려의 국력 예측
그러나 고려사에는 축소되어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다.
몽고와의 전쟁중에도 끝까지 대장경프로젝트(4톤 트럭,70여대,하루 1천명,연인원130만명,수십만그루 벌목)를 수행한 고려는 큰 나라였다.
김용옥샘의 글을 읽으면 자시의 신변이나 주변사람,자기자랑이 많지만 무엇가 새로운 통찰력을 일깨워 주어 좋다.
책으로도 나와있지만 강의 내용은 유튜브에도 검색하면 볼 수 있는 내용이다.
정경모샘의 <찢겨진 산하>에서 읽었던 이야기가 이제는 보편론이 되었고, 동아일보 오보문제,,<해방전후사의 인식>에서도 비슷하게 나온 듯하다.
몽고와의 전쟁중에도 끝까지 대장경프로젝트(4톤 트럭,70여대,하루 1천명,연인원130만명,수십만그루 벌목)를 수행한 고려는 큰 나라였다.
👉하지만 1058년에는 거란(요) 도종의 연호를 쓴다.
책으로도 나와있지만 강의 내용은 유튜브에도 검색하면 볼 수 있는 내용이다.
정경모샘의 <찢겨진 산하>에서 읽었던 이야기가 이제는 보편론이 되었고, 동아일보 오보문제,,<해방전후사의 인식>에서도 비슷하게 나온 듯하다.
송진우 당시 동아일보 주필은 영어에 능통하여 신탁통치에 대해 동아일보의 오보를 인식하고 김구와 토론하였지만 김구, 여운형이 생각하는 미군정하 임시정부 또는 조선인민공화국(人共)의 희망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었고 그날 암살 당한다.
김구의 <백범일지>에 밝힌 "나의 소원"은 (손문의 삼민주의나 모택동의 그것에 비해)
정치인으로서 국가건설비젼의 치밀함이 없다.
신탁보다는 후견이라는 의미가 더 강하였다,,,
신탁통치, 좌우 대립, 군경 대립 등에 대해 갑자기 맞이한 해방(권력 공백)으로 소용돌이처럼 진공상태에서 여러 세력이 불균형을 이루며충돌하며 분단, 전쟁 등 최악의 현대사의 비극이 일어 났다.
인민위원회의 실체에 대해서도 잠깐 나온다,,
인민위원회의 실체에 대해서도 잠깐 나온다,,
인민은 <맹자>에서 이미 언급한 용어이고 여순순천사건을 통해 "빨갱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사용
조선인민공화국의 산하 인민위원회가 제주도 특성상 도민의 실질적 정부
미군정과 인민위원회는 언제고 충돌할 화약고였다.
김정은의 생모가 제주도 출신임을 언급👉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78419
최근에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어느 도시학자가 꿈 꾼, 서울>전을 보았는데 고 강병기 박사의 일대기중 제주 4.3 항쟁을 피해 도일한 기록이 나온다.
👉낮에 여운형 집터 사진을 정리했는데 저녁에 책을 읽으며 여운형에 대해 다시 알게 되다.
우연일까? 낙원상가 어딘가에 "조선건국동맹"라는 비빌결사도 조직하였다고 하는데 찾아가 보야 겠다.
임진왜란 당시 그냥 길만 비켜줬으면
왜군은 베이징 가다 궤멸했을 것이라는 가정 ㅋㅋ
안중근이 뮈텔을 찾아가 대학설립을 부탁하자 고등교육 받으면 신앙심 떨어진다고 거절 당하자 외국인 믿지 말고 독립운동해야 한다고 다짐
김용옥 샘의 <요한복음강해>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1892년 명동성당을 건립하며 경복궁을 굽어 볼 정도로 높게 짓자 고종이 분노하였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