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에서 홍보 글을 보고 날짜를 달력에 적어놨는데 이날은 약속이 많았다. 서울국제도서전, 국립중앙박물관 정은귀 교수님 <북미 원주민의 문학과 문화>, 유기쁨 교수님의 <북미 원주민의 종교문화>가 겹쳐 강의 중간에 나와야 했다. 아쉽다.☝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 옆 분수대에서 노는 아이들
☝ 영어에 상당히 유창하신 정은귀 교수님. 대강당이 꽉 찰 정도로 호응이 좋았다.
Look at the starry skies, but walking on the earth. But that is the past.And now,we are looking only to the future.
저자가 신촌 종합대 철학과, 건축학과 전공? 문과에서 이공계로 전과가 되는지 재입학을 하신 건지 복수전공이 되는지 의아하다. 미국에서 석사, 한국 박사, 해외 근무, 중국대학 건축학과 교수, 현재 건축스토리텔링연구소 근무라고 되어 있다.
마지막 건축스토리텔링이라는 부분에서 아하~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내용과 걸맞은 곳에 계신다. 사실 그런 회사나 전공이 있는지는 문외한이라 모르겠다.
하여간 학위에서 보듯 가독성이 상당히 떨어진다. 구입을 2021년에 해서 2024년에 완독했다.
재미있게 읽다가 덮었다가 생각나서 좀 읽다가 바빠서 잊고 또 책상 위 책을 짬을 내서 읽다가 다 읽었다.
여러 인물이 나오고 수많은 자료를 정리했다. 정말 한땀한땀 장인의 정신으로 논문 쓰듯 자료를 숙독하고 정리 요약하여 한 인물당 연관자료도 한 기둥 세우고 또 한 기둥의 자료집을 세웠다.
박경리의 < 토지>에 나오는 윤보는 대목수였다는 자료까지 다 찾아서 언급한다.
서울을 지나면 우연히 보던 많은 오래된 건축물에 생명을 불러일으켰다. 그래도 지나며 저 건물은 이라고 아느 체 할 수 있는 책이 생겼는데 너무 많은 인물과 이야기, 사연이 있어 몇 번 더 읽어서 숙독해야겠다.
지금도 있는 사농공상의 막장 공대, 기술자, 엔지니어에 대한 자긍심과 편견이 일제강점기 시대 우리가 근대화하는 과정에 싹텄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 근대화, 일제 부역, 독립 정신, 조선 식민지로 일본에서 열외가 된 사람들이 로망을 찾아왔던 이야기들이 시를 읽듯, 꿈결을 걷듯 읽으며 떠오른다.
재미있는 것은 건축가들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내부 총질이 거의 전무했는데 그 이유가 사회의 편견과 일의 고단함, 생계 등으로 서로가 서로를 끌어안았기 때문이란다.
윌리엄 보리스의 일대기를 읽으면 건축과 신앙, 선교사, 추방 등을 글을 읽으며 마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사일런스 (2016)>를 본는 듯하다. 언젠가 유우석(유관순 오빠)와 3.1 운동을 같이 하고 망명해 근무했던 강윤의 일대기도 영화나 웹툰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
일본인이 느꼈던 식민지 조선의 다른 분위기도 짧게 언급하지만 강렬하다.
"경성에 살면서 종로는 함부로 거닐기 부담스러운 곳이었다.
왠지 기뿐이 나빴다.
조선인 천하,
순수한 조선인 거리"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촬영 기사, 조명 기사, 동시 기사의 어원이 기술직 최고 자리를 "기사"라고 한 일제강점기 용어임을 처음 알았다.
"아카시아 꽃향기가 나는 경성거리"
서울에 예전에도 아카시아가 많이 자랐나 보다. 5월 초에 느끼는 여유롭고 생기 살아나는 무언가 좋은 일이 일어 날 것 같은 기대 부푼 5월 대학 축제 분위기를 일본인도 같이 공감한 것이 생경하다.
뉴스타파에서 제작한 다큐이다. 박해일 배우가 정치색으로 공격받을 소지가 있는데도 용기를 내어 내레이션을 맡아 주었다.
☝주변에 개봉관이 별로 없어 가장 가깝고 덥지 않은 시간대를 찾아 가다. 문제가 많았던 건물 주인이 바뀌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 발발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
1950년 10월 9일 북진
1950년 10월 19일 평양점령
1950년 10월 중공 대만 점령계획 무산
1950년 10월 19일 펑더화이 30만 대군으로 북한 지원
1951년 1월 4일 후퇴
전쟁 발발 후 저의 3개월 단위로 전세가 역전되었다. 당시 일반 국민들은 정말 어리둥절하고 누굴 믿어야 할지 어떻게 살아 남아야 할까 고민의 고민을 해야 했던 순간순간이었다.
북한군 포로는 13만, 미군과 한국군 포로는 1만이 되어 가면서 양측은 포로 교환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임진강 옆 판떼기 판板, 문 문 門, 상점 店 판문점이라는 일제 강점기부터 있던 지명에 협상 장소로 군인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남일이라는 북한군 협상당사자는 고려인이고 소련 유학파며, 2차 대전 당시 소련군 대위로 참전한 소련통 군인이었다.
미국 수뇌부는 전쟁은 소강상태라 자존심 상하는 무승부가 되더라도 체제승리를 장식하기 위해 북한군의 자유의지를 부추기며 월북은 자제하며 미국으로 입국을 불허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일관하였다. 그리하여 중립국 인도를 88명이 선택해 가게 된다. 그들의 행방은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최인훈 소설의 <광장>)
통영에 북한군 A급 포로를 따로 모아 포로수용소를 또 만들었다.
1953년 아이젠하워가 미 대통령이 당선되고 소련은 스탈린이 사망하면서 전쟁을 주도하던 국가에 정권이 바뀌며 초창기 공세적인 주전론자들이 대대적으로 물갈이되며 휴전이 된다.
대대적인 남북 포로 환영식 이후
남과 북은 포로를 1년간 감시하며 재교육하였고 1급 의심 포로는 즉결 처분하였다. 북한의 A급 친북 포로의 과격 투쟁은 다 이유가 있었다. 자신이 북으로 돌아가 처형당할 수 있다는 불안과 공포였다.
공동경비구역이 된 판문점에서 북한군과 남한군은 서로를 챙겨주며 친목을 도모하며 민족애를 다졌다. 하지만 미군에게는 사납게 대해 헨드슨 소령 사건이 발발했다.
1978년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미군 장교는 죽음 앞에서도 확전을 자제하기 위해 발포금지 명령을 내렸다. 이후 폴 버니언 작전으로 미루나무를 벌목했고 북한군은 미국의 압도적인 전력하에 묵인하였다. ( 개인적으로 중학교 수학샘이 참전해 조금 들었다.)
1984년 러시아 유학생이 판문점을 통해 월남하여 총격 사건이 발생해 다수의 북한군 사상자가 발생했고 미군은 도끼만행 사건의 응징으로 생각했다.
베트남전의 한국군 참여로 (동서양 전쟁 구도가 한국군 참여로 무색해졌다. 박정희는 자신의 남로당 경력을 미국의 의심하자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참전을 감행했다)
1968년 북한이 베트남전 참전 의사를 밝혔지만 확전을 경계해 자제하라 하자 후미를 친다고 김신조 일당 남파.
베트남 전쟁에서 터득한 기술로 판문점 양쪽으로 철책이 세워 지다.
김신조는 인왕산 기슭 세검정에서 자폭하려다 살고 싶은 회의가 생겨 투항, 김신조 일당이 절단하고 들어 온 철조망은 사후에도 군에서 알지 못함 ㅠㅠ
1972년 베트남전 지원으로 미국과 핵전쟁 공포에 빠진 중국이 소련과의 갈등으로 닉슨 대통령과 전격 만나면서 남북 화해 분위기가 생격 이후락이 김일성을 만남
미국과 소련, 중국 등 주변국의 정세변화가 한반도의 온도변화에 직접적 요인임을 시사.
냉전이 한창일 때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군사쿠데타가 일어났으며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문민정부가 탄생했다.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푸틴과 김정은이 북한을 전격 방문하고 노르망디 작전 80주년을 맞이한 지금 전쟁의 먹구름이 유럽 주변을 감싸고 있다.
👉https://chappatte.com/en/images/it-was-80-years-ago
☝이화여대윈도우스 스트라이크모니터링 모임에서 만든 조류 충돌 방지 유리
👉https://www.instagram.com/windowstrike_in_ewha/
☝전쟁의 폐허 속에 일어난 지금 우리는 야생 조류 유리창 충돌도 걱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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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마고에서 북촌 시네마 행사일환으로 송원근 감독님을 모시고 석화정(화정동북아연구소)님과 함께 영화 관람 후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은덕문화원 숨 요가를 하러 갔다가 옆 마고 카페/살롱 마고 북촌시네마에서 영화 상영 소식을 알게 되었다.
☝저녁에 몰려온 비구름과 쏟아진 빗줄기가 카페 마고 옆 창덕궁 돈화문에 먹구름이 그림자를 드리웠다. 마치 다가올 한반도의 안보 위협을 상징하는 듯하다.
조선왕조를 견디어 오며 온갖 풍파를 견디어 온 궁궐에 드리운 그림자를 보며 한반도 전쟁은 임진왜란처럼 모두 국제전이었다는 석화정(화정동북아연구소) 님의 말이 떠오르며-수당의 고구려 전쟁, 당나라의 백제, 고구려 침략. 백제부흥운동과 왜, 당나라와 신라 전쟁 등- 한반도의 주인이 자주적으로 자기 안보를 해결할 수 없으며 왜 우리 안보를 주변국의 사정으로 먼저 결정되는가에 대해 무력감이 몰려온다.
☝고대 한.중.일 관계를 국제전의 관점에서 백강 대전을 설파한 김용운교수의 <풍수화>====================================================
우연히 뽑아 들었다가 4달 가까이 읽다가 덮다가 하면서 재미있게 읽었다.
자료뿐만 아니라 작가가 몸소 경주 구석구석을 걸으면서 감상한 글을 읽으니 마치 같이 동행하면서 여기저기를 돌아다닌 느낌이 든다.
여기저기 재미있는 이야기를 작가의 개인의 상상력도 발휘하여 썼다.
신라왕들의 짧은 치세 기간의 왕위 다툼, 가야가 멸망한 것이 규수와의 외교 동맹이 야마토의 규슈 점령으로 가야 지지에서 백제 지지로 바뀐 점 등을 주장해 가야에 대해 신선한 시선이 생겼다.
기록과 유물이 있다면 역사인데 이차돈 순교(527년)는 기록(삼국유사)과 유물(818년)이 있으며 300여년의 차이 밖에 없다. 300년 동안의 이야기가 이 부조에 함축되어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남은 이야기를 크.리.에.이.트 할 때이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중생사 관음보살의 유래에 대해 중국 양나라 화공이 누명을 쓰고 신라로 와서 제작했다는 주장은 신선하다.
상원사에서 1965년 고려대 불교학생회 학생 10여명이 불어난 급류에 휩쓸려 사망한 사건을 언급하는데 조용헌 샘의 <사주명리학 이야기/생각의나무/2002/221쪽>에도 언급된다. 이후 귀신이 출몰하여 탄허 스님이 비문을 써줬다고 한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유치 투표권를 확보하기 위해 한국에 온 체육회장을 경주에 초대해 경주 대릉원의 곡선미와 산주름을 강조한 후일담. 미국인에게 1, 2천 년 하면 놀라지만 이집트나 중동 사람은 별 반응이 없다고 한다.
70년 주기설
신라가 삼한을 통일하고
70여년이 지나면서
문화의 절정을 보여 주었고,
고려 도한 건국 70여년이 지난
성종 대부터 문화가 꽃피웠고
대한민국도 건국 70여년이 지나며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걔만 빼면
일본대사관의 홍보 메일을 받아 확인해 보니 상암동 영상자료원에서 하고 있었다. 예약을 못 하고 현장 발권했는데 예약만 하고 오지 않으신 분들이 많아서 빈자리가 많았다. 카토카와회사의 상징인 봉황이 나오는데 고구려 봉황과 비슷하다. 1950년 요쿄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