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June 30, 2024

그랑 비드 북토크- 레아 뮈라비에크 작가 초대 토크 부천 만화박물관

 


인스타그램에서 홍보 글을 보고 날짜를 달력에 적어놨는데 이날은 약속이 많았다. 서울국제도서전, 국립중앙박물관  정은귀 교수님 <북미 원주민의 문학과 문화>, 유기쁨 교수님의 <북미 원주민의 종교문화>가 겹쳐 강의 중간에 나와야 했다. 아쉽다.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 옆 분수대에서 노는 아이들
☝ 영어에 상당히 유창하신 정은귀 교수님. 대강당이 꽉 찰 정도로 호응이 좋았다.

"세상의 빛이 꺼져 갈 때 우리의 노래가 흐르고"

영문학에 정통하셔서 캐다나에서 인디언을 First Nations이라고 표기하는데 인공지능(AI)은 첫번째 "국가"로 해석하지만 첫 번째"종족"으로 해석해야 맞다.

아래 인도 재벌 차남 아나트 암바니 결혼식에 참석한 유명인 기사를  파파고에서 해석한 것


Kim을 김연아로 해석, 김연아가 인도 재벌 아난트 암바니 결혼식에 참석했다고?



천편일률적인 한국 웹툰과 그림체도 좀 달라 보여 청강했다.

신명환 작가님이 사회를 보았고 레아 뮈라비에크 작가와 인터뷰했다. 프랑스대사관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게 된 것은 며칠째 여러 곳 행사를 다니시는 듯했다. 

그랑 비드는 "텅빈" 이란 뜻이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의 요약이다.

이탈리아가 첫 번역이고 10개국 언어로 번역되었다.

신면환 작가님은 원근감과 투시도 표현이 잘되었다고 칭찬하셨고 도시풍경을 감명 깊게 보았다고 말씀하셨다. 간판을 통해 홍콩인가 추정되고 한글 간판도 보인다. 한글 간판 중 "신명환"이라고 적힌 부분도 소개하셨다.

작가는 공동묘지의 많은 이름을 보며 그 사람 개개인의 삶은 알 수 없는 단순한 이름에 주목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거리의 사람 이름을 딴 OO로, 기념물에도 관심을 가졌다. 친구가 보내준 우연한 사진을 통해 영감을 얻었다.

동명이인 중 한 명이 유명연예인이라 지명도가 높아지만 다른 개인은 읨미가 퇴색되는 현상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작가는 2021년 첫 수상을 했고 2024년 서울 국제도서전에 초대되었다.

어제 네이버 웹툰이 나스닥에 상장되었다.

작업은 연필, 만년필 등 수작업을 통해 붓, 먹 등 전톨적 채색 방식 통해 했다.

작품이 200쪽인데 속도감이 떨어져 디지털 작업을 하지 못했다. 마지막 채색만 디지털로 했다.

작업은 1년 정도 쉬지 않고 했다. 처음에는 9시부터 8시까지 했으나 나중에는 시간이 부족하여 아침 6시부터 새벽 1시?까지 했다.

프랑스 레지던트 지원 프로그램이 있어 생계유지가 되었다.

감정, 표현은 자기 자신을 찍어서 여러 사진을 참고해서 표현했고 자신의 스마트폰에 기괴한 자기 표현 사진이 많이 저장되어 있다. 표정을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작가 자신은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하였고 어릴 때 스머프나 아스테릭스, 일본 만화 나루토를 따라 그렸다. 어릴 때 가족들이 집에서 만화를 많이 보았다. 고등학교 때 교내 기자가 그럴듯해 보여 해봤다. 이후 상하이에 가서 작업을 했다.  상히이 도시의 호텔 앞 낮과 밤의 조명 차이에서 영감을 얻어 작업을 했다. 수상을 하면서 프로의 세계에 입문했다.
대학교 때믄 편집일을 많이 했다.

영화 <더 랍스터(2015)>를 언급

초창기 Biscoto라는 어린이 잡지에 기고를 했다. 그러나 계속 어린이 만화만 그리게 되어 한계를 느끼고 거절했다. 원고료 문제도 있었다.

신명환 작가가 서울 국제도서전의 독립출판에 대해 알고 있는지 질문

국제도서전을 둘러보았고 이숲 출판사 관계자를  만났다고 언급, 일요일 시간을 내서 더 보겠다고 언급

여러 작가가 함께 참여하는 작품도 해보았는데 일관성 유지하기가 힘들었다고 회고

그래서 독립출판도 생각해 보고 있다고 언급.

프랑스 레지던트 예술가 지원프로그램은 공간, 작업실, 시간, 재정적 지원을 해 준다고 언급

장기간 한 작업만 하면 힘들고 외로워 20~30명 예술가가 공동생활을 하면 심적으로 안정이 되고 한국인 작가도 있다. (국적 상관없이 받아 준다.)

차기작은 말풍선이 없는 작품을 구상 중이다.

서울이 그랑 비드 속 도시 같고 음식이 맛있다.

등장인물의 이름을 지을 때 어려움을 겪어 영화 캐스팅 배우, 스태프 이름 섞기 페이스북 이름을 참고 해 프랑스와 먼 나라 위주로 만들었다. 한국 친구나 만화 동료를 작품에 숨겨 놓았다.

청중 질문 1>  독특한 그림체에 대해서 앞으로 그 스탕리을 고수할 것인지?

특별히 스타일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흑백을 유지하고 싶고 독자 호응을 위해 컬러를 넣었지만 출판사 동의를 얻어 완전 흑백 작품을 하고 싶다.

청중 질문 2> 외국인 작가,,,

책 리뷰-경성의 건축가들/김소연/루아크/2017- 한자 한자 정성들여 쓴 글귀들

 



저자가 신촌 종합대 철학과, 건축학과 전공? 문과에서 이공계로 전과가 되는지 재입학을 하신 건지 복수전공이 되는지 의아하다. 미국에서 석사, 한국 박사, 해외 근무, 중국대학 건축학과 교수, 현재 건축스토리텔링연구소 근무라고 되어 있다.

마지막 건축스토리텔링이라는 부분에서 아하~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내용과 걸맞은 곳에 계신다. 사실 그런 회사나 전공이 있는지는 문외한이라 모르겠다.

하여간 학위에서 보듯 가독성이 상당히 떨어진다. 구입을 2021년에 해서 2024년에 완독했다.

재미있게 읽다가 덮었다가 생각나서 좀 읽다가 바빠서 잊고 또 책상 위 책을 짬을 내서 읽다가 다 읽었다.

여러 인물이 나오고 수많은 자료를 정리했다. 정말 한땀한땀 장인의 정신으로 논문 쓰듯 자료를 숙독하고 정리 요약하여 한 인물당 연관자료도 한 기둥 세우고 또 한 기둥의 자료집을 세웠다.

박경리의 < 토지>에 나오는 윤보는 대목수였다는 자료까지 다 찾아서 언급한다.

서울을 지나면 우연히 보던 많은 오래된 건축물에 생명을 불러일으켰다. 그래도 지나며 저 건물은 이라고 아느 체 할 수 있는 책이 생겼는데 너무 많은 인물과 이야기, 사연이 있어 몇 번 더 읽어서 숙독해야겠다.

지금도 있는 사농공상의 막장 공대, 기술자, 엔지니어에 대한 자긍심과 편견이 일제강점기 시대 우리가 근대화하는 과정에 싹텄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 근대화, 일제 부역, 독립 정신, 조선 식민지로 일본에서 열외가 된 사람들이 로망을 찾아왔던 이야기들이 시를 읽듯, 꿈결을 걷듯 읽으며 떠오른다.

재미있는 것은 건축가들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내부 총질이 거의 전무했는데 그 이유가 사회의 편견과 일의 고단함, 생계 등으로 서로가 서로를 끌어안았기 때문이란다.

윌리엄 보리스의 일대기를 읽으면 건축과 신앙, 선교사, 추방 등을 글을 읽으며 마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사일런스 (2016)>를 본는 듯하다. 언젠가 유우석(유관순 오빠)와 3.1 운동을 같이 하고 망명해 근무했던 강윤의 일대기도 영화나 웹툰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 

일본인이 느꼈던 식민지 조선의 다른 분위기도 짧게 언급하지만 강렬하다.

"경성에 살면서 종로는 함부로 거닐기 부담스러운 곳이었다. 

 왠지 기뿐이 나빴다.

조선인 천하, 

순수한 조선인 거리"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촬영 기사, 조명 기사, 동시 기사의 어원이 기술직 최고 자리를 "기사"라고 한 일제강점기 용어임을 처음 알았다.

"아카시아 꽃향기가 나는 경성거리"

서울에 예전에도 아카시아가 많이 자랐나 보다. 5월 초에 느끼는 여유롭고 생기 살아나는 무언가 좋은 일이 일어 날 것 같은 기대 부푼 5월 대학 축제 분위기를 일본인도 같이 공감한 것이 생경하다.


☝박동진의 고려대 서관, 중앙고등학교 본관, 민족성, 영구성, 지역성(화강암), 완자쌓기(전통성)가 가미된 제국과 식민지, 서양과 조선, 전통과 근대에 대한 그 시대 건축가의 혼종적인 내면세계를 보는 듯하다.



☝한국은행(조선은행) 건축으로 명성을 떨친 도쿄제국대 출신 나카무라 요시헤이는 본국에서 탄압받는 사회주의 건축 형식인 오스트리아 세제션 secession 양식을 국내에 잠입한 안톤 마르틴 펠러를 만나 천도교중앙대교당을 지었다.

☝건축가 장기인이 전통 한옥 형태로 설계한 호암미술관



☝서촌에 있는 이상 생가, 건축가로서의 이상에 대한 글이 인상적이다. 그의 건축가로서의 자질은 그의 문학작품으로 승계되었다.



Sunday, June 23, 2024

2024년 하반기 서대문 디지털. 미디어 도서관 착공 예정


☝2021.3.8 처음 보았다. 3년이 지났다.







 

서대문도서관이 너무 낡아 기대가 많다.

 
☝2022년 7월 22일, 남가좌2동 주민총회에서 구청장님께서 밝히신 가재울 디지털미디어 도서관, 2027년 준공 예정인데 3년 정도 앞당겨졌다.
☝추가로 구청장님께서 서대문구에 대학이 많다면서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게 대학도서관 개방안도 빨리 시행되었으면 한다.


             ☝마포중앙도서관

Friday, June 21, 2024

영화 < 판문점 PAN MUN JOM : The front line of Ideology (2024 ) >- 우리도 모르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

 뉴스타파에서 제작한 다큐이다. 박해일 배우가 정치색으로 공격받을 소지가 있는데도 용기를 내어 내레이션을 맡아 주었다.

☝주변에 개봉관이 별로 없어 가장 가깝고 덥지 않은 시간대를 찾아 가다. 문제가 많았던 건물 주인이 바뀌었다.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자주 발행되는 도서문화상품권을 이용하려니 너무 어렵다. 왜 이렇게 복잡하고 쓰기 어려운 것을 만들어 냈을까? 결국 쓰지 못했다.

우리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라 보거나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을 보면서 느끼는 "과연 저기도 사람이 살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세계인들은 한반도를 바라보며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중심에 판문점이 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 발발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

1950년 10월 9일 북진

1950년 10월 19일 평양점령

1950년 10월 중공 대만 점령계획 무산

1950년 10월 19일 펑더화이 30만 대군으로 북한 지원

1951년 1월 4일 후퇴

전쟁 발발 후 저의 3개월 단위로 전세가 역전되었다. 당시 일반 국민들은 정말 어리둥절하고 누굴 믿어야 할지 어떻게 살아 남아야 할까 고민의 고민을 해야 했던 순간순간이었다.

북한군 포로는 13만, 미군과 한국군 포로는 1만이 되어 가면서 양측은 포로 교환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임진강 옆 판떼기 판板, 문 문 門, 상점 店 판문점이라는 일제 강점기부터 있던 지명에 협상 장소로 군인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남일이라는 북한군 협상당사자는 고려인이고 소련 유학파며, 2차 대전 당시 소련군 대위로 참전한 소련통 군인이었다.

미국 수뇌부는 전쟁은 소강상태라 자존심 상하는 무승부가 되더라도 체제승리를 장식하기 위해 북한군의 자유의지를 부추기며 월북은 자제하며 미국으로 입국을 불허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일관하였다. 그리하여 중립국 인도를 88명이 선택해 가게 된다. 그들의 행방은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최인훈 소설의 <광장>)


통영에 북한군 A급 포로를 따로 모아 포로수용소를 또 만들었다.


1953년 아이젠하워가 미 대통령이 당선되고 소련은 스탈린이 사망하면서 전쟁을 주도하던 국가에 정권이 바뀌며 초창기 공세적인 주전론자들이 대대적으로 물갈이되며 휴전이 된다.


대대적인 남북 포로 환영식 이후 

남과 북은 포로를 1년간 감시하며 재교육하였고 1급 의심 포로는 즉결 처분하였다. 북한의 A급 친북 포로의 과격 투쟁은 다 이유가 있었다. 자신이 북으로 돌아가 처형당할 수 있다는 불안과 공포였다.

공동경비구역이 된 판문점에서 북한군과 남한군은 서로를 챙겨주며 친목을 도모하며 민족애를 다졌다. 하지만 미군에게는 사납게 대해 헨드슨 소령 사건이 발발했다.

1978년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미군 장교는 죽음 앞에서도 확전을 자제하기 위해  발포금지 명령을 내렸다. 이후 폴 버니언 작전으로 미루나무를 벌목했고 북한군은 미국의 압도적인 전력하에 묵인하였다. ( 개인적으로 중학교 수학샘이 참전해 조금 들었다.)

1984년 러시아 유학생이 판문점을 통해 월남하여 총격 사건이 발생해 다수의 북한군 사상자가 발생했고 미군은 도끼만행 사건의 응징으로 생각했다.

베트남전의 한국군 참여로 (동서양 전쟁 구도가 한국군 참여로 무색해졌다. 박정희는 자신의 남로당 경력을 미국의 의심하자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참전을 감행했다)

1968년 북한이 베트남전 참전 의사를 밝혔지만 확전을 경계해 자제하라 하자 후미를 친다고 김신조 일당 남파.

베트남 전쟁에서 터득한 기술로 판문점 양쪽으로 철책이 세워 지다.

김신조는 인왕산 기슭 세검정에서 자폭하려다 살고 싶은 회의가 생겨 투항, 김신조 일당이 절단하고 들어 온 철조망은 사후에도 군에서 알지 못함 ㅠㅠ

1972년 베트남전 지원으로 미국과 핵전쟁 공포에 빠진 중국이 소련과의 갈등으로 닉슨 대통령과 전격 만나면서 남북 화해 분위기가 생격 이후락이 김일성을 만남

미국과 소련, 중국 등 주변국의 정세변화가 한반도의 온도변화에 직접적 요인임을 시사.

냉전이 한창일 때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군사쿠데타가 일어났으며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문민정부가 탄생했다.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푸틴과 김정은이 북한을 전격 방문하고 노르망디 작전 80주년을 맞이한 지금 전쟁의 먹구름이 유럽 주변을 감싸고 있다.

👉https://chappatte.com/en/images/it-was-80-years-ago



☝이화여대윈도우스 스트라이크모니터링 모임에서 만든 조류 충돌 방지 유리

👉https://www.instagram.com/windowstrike_in_ewha/


☝전쟁의 폐허 속에 일어난 지금 우리는 야생 조류 유리창 충돌도 걱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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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마고에서 북촌 시네마 행사일환으로 송원근 감독님을 모시고 석화정(화정동북아연구소)님과 함께 영화 관람 후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은덕문화원 숨 요가를 하러 갔다가 옆 마고 카페/살롱 마고 북촌시네마에서 영화 상영 소식을 알게 되었다.






☝송원근 감독님과 석화정(화정동북아연구소)님이 관객과 대화하고 있다.

한반도의 운명이 이곳에 사는 우리가 결정하지 못하고 주변국의 정치 상황에 따라 격변의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갈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인식하며, 이번 겨울 미국 대선 상황을 주시해야 하는 현실이 두려움과 안타까움으로 교차한다.

👇대충 정리한 송원근 감독님과 관객과의 대화 부분이다.

-미국에서 공개하기 시작한 한국전쟁 자료를 한국인의 입장에서 편집하였다. 이 자료는 미국 Big Picture라는 냉전 시대 미군이 최전선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어 애국심을 끌어 올리기 위한 일환으로 제작된 자료이다. 하지만 미국적 시각을 제거하고 우리 입장에서 다시 객관화해서 정리했다.

-중국이나 동유럽 자료, 대한민국 편집 이전 자료(한자 필기체로 기록; 전문가를 따로 섭외해야 한다) 등은 접근하기 어렵다.

-코로나 이후 판문점에 들어갈 수 없었다.

-판문점에 초청되어 옛날 원래 위치를 안내 장교에게 물으니 잘 몰랐다. 30년 근속 군무원이 위치를 바로잡아 주었지만 별로 관심 없어 보였다.

-정전 70년이지만 그곳을 관리하는 유엔사 장교는 관심 자체가 없었다.

-T1, T2, T3라고 지명하는 회담 장소의 "T"는 temporary란 뜻이었다. 정전 70년이 지났지만, 아직 임시 건물이라는 표현에 충격을 받았다.

-공동경비구역이 옛날처럼 남북 군인이 화해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라고 물어도 관심조차없었다. JSA 남북 군인전우회를 할 수도 있었다.

-정전 협정을 위한 회담에 기자를 초청했는데 한국 기자 두 명(조선일보, 서울신문), 일본기자 10명, 외국인 기자 100명을 초청했다. 전쟁은 우리가 치렀는데 우리는 정작 중요한 순간 배제되었다.

-이런 느낌을 관통할 수 있는 이전의 미국 자료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10세, 12세 되신 생존자를 찾아 포로수용소에 관해 물어 보았다.

-군사 분계선에서 고지전을 치른 93세 참전 용사 인터뷰를 담았다.

-지금 판문점은 유엔사 관할이고 현직 대통령도 허락 없이 들어갈 수 없다.

-군사혐정 당시 중국군은 중국인민지원군 자격으로 슬며시 빠져나갔다. 이승만은 대통령 지위였고 김일성은 군사 통수권을 갖고 있어 북한과 미군 사령관이 교섭을 했다. (우리는 교섭이나 관할 대상이 아니다)

-이후 유엔사 관할을 한국군에게 이전하려고 했으나 북한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2018. 9. 19 군사합의는 남북 군사 35명씩 비부장으로 노란 완장을 차는 것인데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으나 지금은 2023.11월 폐기되었다.

-여러 자료나 구체적인 내용은 대부분 주인공을 "판문점"에 맞추기 위해 과감히 정리했다.

-이승만의 반공포로 석방 정책으로 풀려난 사람들을 현재 찾을 수 없다. 중공군을 자극해 휴전선 남쪽 금성군 전투를 유발하여 우리가 남하하는 결과를 낳았다. 미국은 이승만 제거 작전도 구상하는 등 감정이 나빠졌다.

-일본 독립영화관에서 상영 요청이 들어와 자막 작업을 하고 있다. 국제영화제도 알아 보고 있다.

-한 외국인 기자는 미국 영상을 한국인 입장에서 정리한 것을 신기해 하지만 너무 내용이 어렵다고 지적하셨다.

-대한민국은 미국의 허락없이 종전이나 평화합의를 법적 지위가 없기 때문에 판문점의 주인이 될 수 없다. 노량대첩을 앞 둔 이순신의 울분과 똑같다. 전쟁은 우리가 치렀는데 협상은 명과 왜가 한다.

-포로수용소에 대한 영화를 구상하고 있다.




☝저녁에 몰려온 비구름과 쏟아진 빗줄기가 카페 마고 옆 창덕궁 돈화문에 먹구름이 그림자를 드리웠다. 마치 다가올 한반도의 안보 위협을 상징하는 듯하다.

조선왕조를 견디어 오며 온갖 풍파를 견디어 온 궁궐에 드리운 그림자를 보며 한반도 전쟁은 임진왜란처럼 모두 국제전이었다는 석화정(화정동북아연구소) 님의 말이 떠오르며-수당의 고구려 전쟁, 당나라의 백제, 고구려 침략. 백제부흥운동과 왜, 당나라와 신라 전쟁 등- 한반도의 주인이 자주적으로 자기 안보를 해결할 수 없으며 왜 우리 안보를 주변국의 사정으로 먼저 결정되는가에 대해 무력감이 몰려온다.

☝고대 한.중.일 관계를 국제전의 관점에서 백강 대전을 설파한 김용운교수의  <풍수화>

이를 바탕으로 그림 내 웹툰 <건지산만신>👉https://dankunjosun.blogspot.com/2019/06/geojisan-manshinten-thousand-spirit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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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헤이리에는 이북오도청이 주관하는 동화경모공원이 있다. 한국전쟁으로 분단이 되자 남쪽에 남게 된 이산가족이 북쪽이 보이는 이곳에 장지를 마련하였다. 지인의 부친이 인민군으로 참전했다 거제 포로수용소를 거쳐 남한에서 살아가시다 최근 돌아가셨다. 항상 고향을 그리워하셨지만, 생전에는 끝내 가보지 못하셨다. 분단은 아직도 우리 생활 곳곳에 상처를 남기고 있다.

Tuesday, June 18, 2024

책 리뷰- < 삼국유사를 걷는 즐거움/이재호/한겨레출판/2009 > -삼국유사에 관한 고전으로 남을 책

 우연히 뽑아 들었다가 4달 가까이 읽다가 덮다가 하면서 재미있게 읽었다.


자료뿐만 아니라 작가가 몸소 경주 구석구석을 걸으면서 감상한 글을 읽으니 마치 같이 동행하면서 여기저기를 돌아다닌 느낌이 든다.

여기저기 재미있는 이야기를 작가의 개인의 상상력도 발휘하여 썼다.

신라왕들의 짧은 치세 기간의 왕위 다툼, 가야가 멸망한 것이 규수와의 외교 동맹이 야마토의 규슈 점령으로 가야 지지에서 백제 지지로 바뀐 점 등을 주장해 가야에 대해 신선한 시선이 생겼다.

기록과 유물이 있다면 역사인데 이차돈 순교(527년)는 기록(삼국유사)과 유물(818년)이 있으며 300여년의 차이 밖에 없다. 300년 동안의 이야기가 이 부조에 함축되어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남은 이야기를 크.리.에.이.트 할 때이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중생사 관음보살의 유래에 대해 중국 양나라 화공이 누명을 쓰고 신라로 와서 제작했다는 주장은 신선하다.


상원사에서 1965년 고려대 불교학생회 학생 10여명이 불어난 급류에 휩쓸려 사망한 사건을 언급하는데 조용헌 샘의 <사주명리학 이야기/생각의나무/2002/221쪽>에도 언급된다. 이후 귀신이 출몰하여 탄허 스님이 비문을 써줬다고 한다.


☝서봉총 옆에서 아침운동을 하시는 어르신들. 경주에 사는 분들의 특혜다. 나도 아침에 눈을 뜨고 집 앞에 나왔을 때 천년무덤이 눈앞에 펼쳐진다면 천년을 더 살 수 있을 듯하다.


☝댓잎전사의 전설이 있는 미추왕릉

☝댓잎전사




☝봉황대의 화려함

☝경주 박물관 옆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유치 투표권를 확보하기 위해 한국에 온 체육회장을 경주에 초대해 경주 대릉원의 곡선미와 산주름을 강조한 후일담. 미국인에게 1, 2천 년 하면 놀라지만 이집트나 중동 사람은 별 반응이 없다고 한다.


70년 주기설

신라가 삼한을 통일하고

 70여년이 지나면서 

문화의 절정을 보여 주었고, 

고려 도한 건국 70여년이 지난 

성종 대부터 문화가 꽃피웠고 

대한민국도 건국 70여년이 지나며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걔만 빼면


문두루 비법으로 당의 신라침략을 막았다고 하는데 이것은 마치 신풍이 불어 일본 열도를 구했다는 이야기와 상통한다. 이런 이야기가 황당하다고 유생들이 생각해 잡서로 치부되고 사장되고 일본은 확대 재생해 신풍으로 만들어 국민을 단합시키고 발전해 캐릭터 산업으로 돈벌이를 했다는 점에서 한.일 양국이 자신의 자산을 21세기에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를 보여 준다.

항상 일본 고전을 소재로 삼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과 강마다 용왕이 있다는 동네 전설을 배경으로 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라!

시나브로 그런 新흥선대원군 유사 꼰대( 이분들은 흥선대원군을 망국의 1순위로 꼽는다.)들은 다 사회에서 퇴직하고 그나마 한류니 K-POP이니 신조류를 만들어 가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개랑한복과 버선, 고무신으로 한 껏 멋을 내고 경복궁 흥례문 앞에서 공연을 하는 뉴진스

(코리아 온 스테이지2024)



영화 < 이누가미 일족 (1976) > -옛날 영화인데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

 일본대사관의 홍보 메일을 받아 확인해 보니 상암동 영상자료원에서 하고 있었다. 예약을 못 하고 현장 발권했는데 예약만 하고 오지 않으신 분들이 많아서 빈자리가 많았다. 카토카와회사의 상징인 봉황이 나오는데 고구려 봉황과 비슷하다. 1950년 요쿄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