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스크 1943/ 마크 힐리/ 한국국방안보포럼/2007-모스코바 진격에서 베를린 사수로

 최근 <쿠르스크 1943/마크 힐리/한국국방안보포럼/2007>을 읽었다.



👆전쟁기념관에 있는 T-34-85 전차, 1944년 제작한 것으로 표시되어 있어 쿠르스크 전투에 투입된 기종은 아니지만 T-34전차는 맞다.

초창기 1942년에 독일군은 광활한 러시아 영토를 단기간에 제압하려고 하였고 소련 지휘부는 장기전, 겨울, 공간이용을 전략적으로 이용하여 군수공장을 우랄지역으로 이전시키고 혹독한 추위에 러시아인만이 견딜 수 있다고 버티기 작전 수행, 공간(space)을 팔아서 시간(time)을 얻는 것
독일군은 소련군을 군복입은 농부로 비하하였고 그 당시 소련군의 수준이었다.

1943년 독일군은 재차 찾아 오는 겨울에 댓가를 톡톡히 치렀다. 봄이 오면 국토가 진흙으로 변해 탱크진격이 불가능했다.

1944년 독일군은 마지막 몰아 붙이기로 쿠르스크 전투는 소련군도 절반이상의 피해를 예상한 난투전이었다. 독일군은 질과 양에서 쇠퇴기로 들어섰지만 소련군은 전투경험 누적으로 끊임없이 진화하였다.

여성들을 저격수 등 전투에 직접 참가시킴

소련군 전차는 사정거리에 독일전차를 넣기 위해 근접전투를 벌었고 측면 공격을 위해 기동이동했다.

독일군이 버리고 간 전차들을 소련군이 수리해 원래 주인을 공격했다.

초반의 키일 운트 케셀(Keil und Kessel, 쐐기와 이중포위)전략과 돌출부제거작전(Operation Zitadelle, 치타델레)은 소련군이 그대로 답습하여 돌려주었다. 그들은 더 이상 농부가 아닌 야수가 되어 있었다.

대체로 냉전적 시각에 입각해 독일의 패배에 입각해 서술하지만 소련정치지도작의 높은 안목과 치열한 희생에 근거한 2차 대전의 물줄기를 바꾼 굉장히 중요한 전투였다.

이 전투로 독일군의 동부전선이 공격에서 베를린 사수로 바뀌었다.
 

              모스코바 진격이 
            베를린 사수로 전환

러일전쟁의 패배로 한반도가 일제식민지로 전락했고 소련이 독일군을 궤멸시키며 단박에 전세 역전이 일어나 원폭 , 일본 항복, 한반도 해방, 강대국 대리전 한국전쟁, 분단으로 이어졌다.

한반도가 자력으로 서지 못하고 주변 강대국의 세력 균형이 붕괴되며 바람 앞 촛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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