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국대학교 석주선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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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판기록에 형벌의 신구파 논쟁, 자유심증주의 탈리오 법칙이 나오며 관할권문제, 공범문제, 변호인의 조선형벌에 처벌규정이 없어 무죄라는 변론, 안의사의 당당한 변론, 전쟁포로론을 주장하신다.
350년전 미라를 볼려구 갔는데
안중근의사 친필을 보다.
혈서로 잘려진 손가락 마디 둘
동양정세를 걱정하며 실기하여 시간이 흐르면 뒤에 후회해도 늦으리라는 문구는 요즘도 국가건 기업이건 개인이건 통하는 말이다. 가만히 손을 대보니 내손과 거의 같다. 추측컨대 나와 키가 비슷하지 않았을까?
글씨체는 비장함이 있으나 200여편의 글을 여순감옥에서 작성하셨고 여순감옥 中으로 길게 늘여 쓴것이 가슴아프다. 섯부른 판단이나 이분은 악필이 아니었나 싶다.하지만 기백과 정신이 녹아있어 한참을 보게 만든다. 옆에는 이준 열사 친필이 있다. 공부하는 자세와 평소 마음가짐을 표현하셨다.
이 뒤로 신라시대 XX가 있어 과장인지 신라인이 변강쇠인지 모르나 왜 만들었을까?
남자는 다 똑같다는 웃음을 짓게 만든다.
350년전 소년미라는 애틋한 부모의 정과 숨진 6세 소년이 마음아프다.
이리 어린 나이에 죽으면 정치, 시국, 경제, 진보라는 논쟁이 다 헛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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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도서관 가서 안중근샘 자료를 뒤져보니 부친이 동학에 가담하셔 안의사도 동참하셨고 평소 문약이 조선의 패인이라 생각하셔 무를 중시하셨다한다.(?)
소년 안중근은 소년 접주 김구의 동학군을 제압한 기록이 있고 신분제를 버리지 않은 평등사상에서 한계가 있었다.
오만한 검사측이나 재판장이 가소롭게 웃었을 듯하다. 아니면 뜨끔?
동양평화론인가를 집필하다 사형이 앞당겨지고 항소를 포기해 서두만 작성하다 순국하셨다.
언제 공판기록은 좀더 꼼곰히 읽어 형소법공부자료로 활용하면 좋으리라.
손금을 비교해보니 잡것과 많이 틀리네..
아마도 이중생명선이 있어 정신력이 강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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