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y 14, 2024

책 리뷰- 무정 武亭평전/안문석/일조각/2019-비운의 혁명가 무정의 삶 그리고 생각

 무정이라는 이름은 독립운동에 관한 책을 읽을 때 늘 나오는 이름인데 딱히 정리된 자료를 본 적은 없다.

아마도 해방 이후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한 뒤 한국전쟁 이후 김일성에게 숙청당해서 그런 듯하다.

저자 안문석은 65년 생으로 관악 종합대 철학과를 나와 영국에서 석박사를 받고, KBS 기자를 거쳐 전북대 교수를 하시고 계신다. 무정에 대해 책을 쓴 계기가 하숙방 선배가 잠자리에서 언급한 계기로 무정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지나고 보면 사소한 계기가 자신의 긴 인생의 나침반이 되기도 한다.

예전에 읽은 강준식 <적과 동지/한길사>를 보면 해방 이후 정치적 동아줄 잡은 줄이 썩은 동아줄인 경우로 그들의 정치 인생도 끝장이 났다.

👉 https://dankunjosun.blogspot.com/2016/12/blog-post_25.html


무정이라는 독립운동 경력, 인물도 대중적 지지도나 인기 외에 무관 출신의 딱딱한 성격과 무장 투쟁 독립운동가가 흔히 보인 직선적 사고가 해방 이후 소용돌이 속에서 불리하게 작용한 듯하다.


일본

 

여운형

중국

장개석

김구

팔로군

김두봉

공산당?

무정?

미국

육군

이승만

국무성

김규식

소련

군부

김일성

외무성

박헌영


본명은 김병희, 1904년생, 3.1운동에 가담했다. 1922년 강경 학생운동 영향으로 중앙고보에서 퇴학당했다. 1921년  중앙고보, 보성전문 등 7개 교장단이  전문학교 이상만 학생운동을 허용할 수 있다는 결의를 하였다. 별걸 다했네 1926년은 6.10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1923년 조선 노동대회에 참가하였다. 대부분의 일제강점기 사회주의운동은 국사에서 안 가르쳐 생소하다.

1924년 중국 군사학교에서 실전에 참여한 무정이 워낙 뛰어나 상관이 무정이라고 새 이름을 지어 주었다.

중국공산당의 대장정 참여한 한국인 중 유일한 생존자 두 명 중 하나다. 포병장교였는데 백발백중이었다고 한다. 팔로군 내에서 간부로 승승장구한 것으로 미루어 리더쉽도 뛰어났다고 추정된다.

저우언라이, 주더 등과 친분이 있었다. 님 웨일스의 < 아리랑>에 김산과 언급되지만 서로 알고는 있어도 교류는 없었던 듯하다.

중국인 여인과 결혼했다가 이혼 후 한국 여인과 재혼하면서 이후 밉보여  중국공산당에게 소극적 지원만 받은 듯하다.

해방 이후 소련의 방해로 무장 해제되어 개별 입국하였다. 소위 연안파는 교육 수준이 높았고 조선의용군 출신이 많았다. 하지만 김두봉 등 노선투쟁이 심해 만주에서 생존형 독립운동 몰두했던 김일성, 김책 등 만주파에 비해 연대가 약했다. 조선의용군을 이끌었다.

무정은 마오쩌둥 사상학습을 한 경험으로  정치노선은 반스탈린, 반소련, 반김일성이었다. 무정은 무인답게 호방하였으나 고압적인 분위기가 있어 정치인으로 마이너스였다.

무정의 항앵무장투쟁 경력은 김일성의 제1 경계 대상이었다.

한국전에 참전한 조선의용군 출신 5~6만 명은 팔로군 출신 규율이 강해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였다.

인천상륙작전 후 후퇴하는 과정에서 퇴각하는 장성을 즉결 처분하여 숙청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무정은 숙청 당시 숲속 오두막에 갇혀 참전한 중국군이나 연안파의 지원을 못 받아 체념하였다. 대장정 이후 생긴 위장병이 숙청 이후 위암으로 발전해 중장 제복을 입고 위암 수술 도중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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