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오타니 탐험대가 무단으로 훌처 온 것을 조선총독부에 보관하다 해방이 되어 우리가 점유승계를 하게 된 듯하다.
중국인이 이민 와서 살다가 현장법사가 인도 갈 때(630년)까지만 해도 고창국으로 존재하다가
640년 당의 영토가 되었다가 792년 이후로 위구르와 티베트의 영토가 된 듯하다.
![](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img/b/R29vZ2xl/AVvXsEhXsPpIhQHdrL74i4GkJlJUbhtuOiMMUn_a7khMaBZO75MQkrUOU2t1Ldg1mG_VKjIJd6xHuOTTFymRGSxxNXEy624FDOAypAXISxO6s1-g04fodMdkkYCx1KdV9PxjnmcsDiT1/w640-h324/IMG_6122.HEIC)
투루판이란 어디인가?
저곳에서 당 고종 679년도 중앙관청에서 보낸 공문서를 시신 깔개에 같이 보관했다가 오타니가 훌쳐오고 연구를 통해 중국 일본에 같은 문서가 있어 고증을 통해 해독한 듯하다.
좌측에 사라르칸트가 보인다.
고구려사신이 당 태종의 고구려 침략에 맞서
후미를 공격해 달라고 갔다는 이야기가 있고 벽화가 있다.
오타니가 大谷인데 일산에도 대곡이라는 지명이 있고
MLB 야구선수도 오타니가 있어
곡물이 상하지 않도록 보관의 지침을 보냈다.
호랑이 포획자에 대한 논공행상
이렇게 부르지 않았을까? 당나라에서 출세 꽤 했는데 말년에 대장경을 베끼어 쓰는 작업으로 공덕을 쌓으려는데 당시 문자인 측천무후가 반포한 측천문자도 있어 사료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유물이다. 당시 대장경 내용도 확인할 수 있다. 아직도 땅속 어딘가에 그 경전이 잠자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 677년
부인 아무개는 장군의 손녀고 전중감의 딸이다.
의봉 2년(677년) 돌아가시다.
슬프다
예쁘고 아내로서 덕이 있었고
어머니로서 기품이 있으셨다.
"돌연 별빛이 떨어져 갑자기 하늘은,,,"
,,바람 소리,,,
사람의 죽음 앞에 인간의 무력감과 슬픔을 애절하게 적었다.
![](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img/b/R29vZ2xl/AVvXsEh0wRMFzpm134Y3zxveuoZ1J5DEsDRyrBpTmnjvQCNanMwqRvIkEm6mI2U8pQN_Yu5NnS6Ck-S9v2Mf8qFpCCQnm4dpwje8xoki3ZwhYQfBbj1N85LlEws4r4NHti6x6CV1zhcT/w640-h480/IMG_6142.jpg)
인형의 팔을 폐기한 관청 문서로 만들어 끼웠는데
투루판의 건조한 날씨 때문에 사라지지 않고 발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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