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331년 10월 지금의 이라크 지역에서 페르시아 다리우스 3세는 25만의 병력을 몰아 알렉산더 4만군과 대적하였다.
페르시아 다리우스 3세 25만 vs.마케도니아 알렉산더 4만
어떤 자료에는 아르벨라전투로 나와있는데 가우가멜라와 100km 거리라 함
(도해세계전사, 노병천, 한원출판사, 1989년 출간 참고)
5:1로 숫적으로 불리하고 나이26세의 작은 왕국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가 어떻게 이 많은 제국의 대군을 무찌르고 동서융합 헬레니즘문화를 꽃피우게 되는 전초전을 이 가우가멜라 전투로 보고 만든 다큐
미국 군사전문가, 사학자, 퇴역해병대 등이 등장하여 무기, 진형, 병력구조 등 해설
다리우스는 그라니코스, 이수스전투에 패한 전력으로 반드시 이겨 왕의 위신을 회복할 필요가 있었다.(알렉산더는 보급선 확보를 위해 이집트를 1착으로 해안선을 따라 차례로 정복해 들어감)
마케도니아는 군주제 그리스는 공화제여서 야만인으로 열등시하는 시대분위기
마케도니아의 왕 필립2세는 동향출신전투병으로 강하게 훈련하여 강병으로 양성
(페르시아는 각국 천명착출 혼성 용병연합)
늘 병법을 연구하고 평생을 전장에서 보내 알렉산더에게 지대한 영향
호머의 서사시 탐독 영웅관 심취
어머니 올림피아드는 포로국의 공주로 새 아내를 얻는 필립2세와 불화하였다
갑작스런 왕의 죽음(기원전 336년)으로 즉위한 알렉산더는 그리스 지방 반란을 평정하고 대외정벌 시작
그리스와 페르시아는
기원전 550년부터
200년간 긴 전쟁으로
서로 숙적으로 생각
한때는 페르시아가 아테네까지 쳐들어가 신전을 파괴해 서로 깊은 불신이 팽배
고르디움 성전에서 매듭을 푼 일화는 사실여부를 떠나 그의 문제해결능력의 단면을 보여준다.호머의 서사시를 탐독하여 아킬레스, 헥토르, 헤라클레스의 불가능에 도전하는 정신 극대화
"What does it matter how I undo it?"
다리우스 3세는 장기전으로 식량과 논밭을 확보해 이길 수 있는 안전한 방법을 버리고 자신의 권위를 회복하고자 일전을 불사했고, 여러 화친요구를 알렉산더가 거부하여 이제 자웅을 겨루는 일만 남음
알렉산더는 4만이 보병, 7천이 기병
페르시아는 유럽, 아프리카, 인도, 에디오피아 등 각지에서 공출한 인력이 연합군형태
한때는 페르시아가 아테네까지 쳐들어가 신전을 파괴해 서로 깊은 불신이 팽배
고르디움 성전에서 매듭을 푼 일화는 사실여부를 떠나 그의 문제해결능력의 단면을 보여준다.호머의 서사시를 탐독하여 아킬레스, 헥토르, 헤라클레스의 불가능에 도전하는 정신 극대화
"What does it matter how I undo it?"
다리우스 3세는 장기전으로 식량과 논밭을 확보해 이길 수 있는 안전한 방법을 버리고 자신의 권위를 회복하고자 일전을 불사했고, 여러 화친요구를 알렉산더가 거부하여 이제 자웅을 겨루는 일만 남음
알렉산더는 4만이 보병, 7천이 기병
페르시아는 유럽, 아프리카, 인도, 에디오피아 등 각지에서 공출한 인력이 연합군형태
갑옷X무기도 부실
전직해병대장교가 방진(方陣; 팔랑스Phalanx)대열설명
(맨 선두 짬덩어리 배치; 횡256X종16)
남보다 긴 4~5m창으로 상대 위협(페르시아는 2m 창)
방패에 줄을 달아 무게감 덜음
우측에 강한 정병에 하플론 방패에 검을 숨겨 진격,
적이 창에 밀려 넘어지면 제거
적이 25만이면 4km 아군이 4만이면 800m
알렉산더는 체스 게임화하여 적의 좌우측으로 포위한 군이 망치
정면군이 모루가 되어 적을 격퇴하는 전술이 기본인데
페르시아군은 25만(4km)라 4만(800m)로는 불가
알렉산더군은 코시스톤?코피스 칼이란 끝이 커지며 무거운 도끼형 칼 사용
알렉산더 기병옆에는 척후병(척후병의 어원이 돌팔매)이 돌,창,활을 이용
적 근접시 기마병뒤에 붙어 공격( 2~3백이 모여 던지면 위협 )
올림픽 창던지기는 알렉산더왕의 그때 그창
페르시아의 신병기 2백여대의 이륜전차는 관성의 법칙을 이용
(달리는 말에 방진대형으로 말을 위협하면 말은 멈춘다)
방진대열이 벌어져 안으로 쥐덫처럼 들어오게 하여 기수를 제거
알렉산더는 마름모대형으로 대형를 변경한뒤 우측으로 이동
좌측에서 주력군 파르메니온 장군과 교전하게 유인
(파르메니온 장군은 전투 당일 야습을 주장했지만 당당한 전투를 원한 오만한 알렉산더가 낮전투를 선호했고, 페르시아군은 적이 숫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야습하리라 생각하고 야습대비 방어로 밤을 새 피로가 누적됨?? 이건 둘다 마친가지 아닌가? )
따라오는 페르시아 기병이 벌어지면서 대오의 중앙간격이 벌어지자 급회전
(때가 오길 기다리는 영악함)
중앙군이 분산되자 다리우스 3세 정면으로 기습돌격
척후병이 추격하는 다리우스 기병대 공격
갑자기 눈앞에 들어닥친 알렉산더를 마주치자 다리우스 3세 도주
히스토리채널 방송에 의하면 방진대형전술은 아버지 필립2세전술이며 틈이 벌어진 곳을 기습하는 전략은 알렉산데가 18세때 첫 출전한 케로니아 전투에서 테베군을 포위 섬멸할때 이용한 것으로 나온다. |
알렉산더는 호전적이었고 육탄전을 즐겨했다.
다우우스3세를 추격해 페르시아를 일거에 멸망시키느냐
궤멸직전 주력군 파르메니온 장군 휘하를 지원하느냐는 전투상황판단중 후자 선택
트럼펫이나 북이 전투 교신용이었으나 교전 중에는 제대로 정확하게 의사전달 힘들어
한번도 생전에
패전한 적이 없는
영리한 전술가
도주한 다리우스는 1년후 살해당함
6년후 알렉산더 32살 열병으로 사망
당시 한반도는 춘추전국시대의 연나라와 고조선의 전쟁시기(기원전 300년)
도주한 다리우스는 1년후 살해당함
6년후 알렉산더 32살 열병으로 사망
당시 한반도는 춘추전국시대의 연나라와 고조선의 전쟁시기(기원전 300년)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