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큼 전공자도 없고 자료는 많으나 ? 정리가 안된 미지의 분야라고 말씀 하셨다.
많이는 들어 봤으나 전인권이 <가야>라는 그룹을 만들어서 그런가 싶다가...
임나일본부가 가끔 나와서 가야어디라고 그러다가,,,
초딩칭구가 김유신이 가야후예고 자신은 그의 몇대손 어쩌구 그래서 주눅 들어있던 기억
이덕일의 <살아있는 한국사1>에서 삼국시대는 100년이고 이전에는 열국시대였다고 강조한 기록..부여가 고구려에 항복한 494년 까지 오국시대(부여,고구려,신라,백제,가야),가야가 신라에 망한 562년까지 사국시대(고구려,백제,신라,가야)라는 주장
최근 김훈의 소설<현의 노래>에서 몰락하는 가야의 기억과 패망한 나라의 백성이 어덯게 처참하게 살육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 가야가 머리에 쓰는 고깔에서 유래했다는 정약용 견해
-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2,284쪽>에서 붓다의 보리수 나무에서 유래한 보드가야에서 가야의 어원을 찾는 견해(고려와 삼국유사 저자가 승려인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견해-김태식<미완의 문명7백년가야사 1권/푸른역사>)
- 김병모샘의 <김수로왕비의 혼인길/푸른숲>에서는 언어학자 강길운교수의 조언으로 "물고기"라는 드라비다어에서 단서를 찾는 견해
김병모샘의 <금관의 비밀>에서의 가야 기마인물형토기와 각배,,
다큐에서 본 편두이야기
기마민족정복왕조설(에가미 나미오 도쿄대교수)에 대한 이야기
그러던 중 김종성님의 글을 읽고 항상 공중에 붕뜬 듯한 가야에 대해
대체 줄거리가 잡히는 느낌이 생겼다.(물론 이것은 하나의 견해일뿐이다.)
흉노(유목세력)-진,한(농경세력)의 문명충돌론이 그것이다.
이전에 김지하가 치우천황와 중국황제와의 싸움, 이현세<천국의 신화>
김현기,유정아 공저<짐은 이것을 역사라 부르리라>에서 논의된 유목문화와 농경문화의 두 문명충돌로 본 것과 궤를 갖이하여 흉노(유목세력)의 팽창으로 가야가 허황옥(인도), 김수로,석탈해(캄차카 반도)의 여러 세력의 연맹체로 철의 생산,수출로 문명사의 한 획을 이루었다고 파악한다.
김태식<미완의 문명7백년가야사 3권/푸른역사>에서는 허황옥과 인도 쌍어문의 이야기는 고려시대 또는 조선후기에 삽입된 것으로 추정한다.몽공침입시부터 조선 세종시까지 아무런 건물이 없었던점,왕릉또한 논두렁에 잠겨있던 점을 든다.
석탈해를 추격하기 위해 배500척을 동원했다는 삼국유사기록을 인용한 글은 그들의 세력이 거대했음을 증언한다.
5호16국으로 중국분열시 팽창했던 유목세력이 차차 중국이 단일왕조로 통일되어가자 서진이 막힌 고구려가 밀려 장수왕이 남하를 하고 백제,신라 역시 한반도 남단으로 밀려와 가야를 멸망시켰다는 구도이다.
유목민이 중국을 강타한 이유를 기원전29년부터 시작한 기후변화로 한냉전선이 퍼지자
목초지부족으로 유목세력인 흉노가 중국본토로 침략하게 되고 이걸 민족대이동으로 표현한 기술도 참신하다.
<이진아 지구위 인류사> 온란기에는 바다,한랭기에는 육지를 주무대로 하는 민족이 융기한 글 ☞http://www.sisapress.com/journal/article/172882
☞http://www.sisapress.com/journal/article/169652
☞http://www.sisapress.com/journal/article/165213
중국을 통일한 진,한이 흉노문제로 항상 골치를 썩었는데 항상 중국입장에서 야만인의 침략으로만 보아왔던 흉노가 어쩌면 우리의 먼 조상일 수 있다는 생각이 여러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아쉬운건 흑백사진과 현대박물관벽화를 찍어 올린것인데 화려한 칼러로 고대유물이나 봉분도 잘 찍어 올리고 지도도 적절하게 섞어 화보화 했으면 하는 것이다.
최근에 본 가야토기 전시 ☞부여도래설 |
국립중앙박물관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