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8.15 남북학생회담 연세대학교 집회 스케치


An old protest sketch drawn in 1988, preserved for decades and finally released from my archive.
A glimpse of the atmosphere, emotions, and street culture of that era.


 당시 뉴스보도👉https://imnews.imbc.com/replay/1988/nwdesk/article/1812773_30371.html

당시 아카이브 사진👉https://archives.kdemo.or.kr/photo-archives/view/00755340

무더운 여름 1988년 연세대학교에서 8.15남북학생회담이 열렸다. 작년 1987년 6.29 이후 학생운동 노선의 알력(?)으로 갑자기 통일운동으로 방향을 바꿔 분단의 고착화를 막으려는 노력이었는데 지금도 남북통일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1989년 임수경 방북으로 학생운동 간 교수 간 설전을 벌였고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강하게 어필한 교수님은 그 이후 한나라당 쪽 박근혜 노선을 따라 한자리하고 계신다.

그 활동을 주도한 학생들도 반대쪽에서 한자리씩 하고 있다.

당시 현장에서 스케치 한 것인데 보관하고 있다가 공개한다.


👆당시 테니스코트 현재 연세대 정문 공학원  자리에서 시위대에 참가한 분이 전경에 잡혀 전경들이 고의로 머리를 돌로 치고 돌려보냈다고 하는 소문이 돌았는데 의식이 있어 손을 부들부들 떨며 이마에서 피가 꿀렁꿀렁 솟아 흘렀다.

👆정문에서 연세의료원 쪽 난간을 뜯어내고 앉아 대치하는 시위대
교문 뒤에서 몇 명이 앞에 백골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긴장하며 이야기했는데
갑자기 정문 수위실 위로 올라가 누군가 호루라기를 불자 뛰어나가 철수하는 전경을 쇠 파이프로 내리치고 전경 모자와 물통을 뺏어서 내게 넘겨주라고 건넸다. 

길거리에 쓰러진 20대 초반의 전경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프레스라는 완장을 차고 헬멧과 방독면을 챙기고 다니는 사진 기자들
                          연세대 정문 앞 굴다리 철길 위에 가득 사진기자들이 앉아 있었다.

                                  👆날씨가 무더워 상의는 진압복을 벗고 하의만 입고 이동하는 전경이 많았다.
                                   지나가면 땀내 최류탄 냄새가 진동했다.
👆사진기자들과 검문하는 전경들
                         👆연설하는 대학생, 마이크를 잡고 연설하는 대학생이 멋있어 보였다.
👆외국인? 기록사진에 있는 분인가 확실치 않다.
👆카메라를 어개에 멘 카메라맨

👆저 농악대의 울림을 들으라. 우리의 통일은 반드시 이룩된다. 
주민, 할아버지 들이 있었고 깡통을 두드리며 환호했다. 의외로 많은 주민이 하교 안에 있었고
교문 앞에서 트레이닝 복을 입은 건장한 아저씨는 학생은 아닌 듯한데 오고가는 사람 중 프락치가 아닌지 어느 신문사 기자는 들어 오지 말라고 싸우고 계셨다.

👆사진 기자들이 헬멧을 평소에는 벗어 등에 덜렁덜렁 거렸다.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통일선봉대라는 학생은 몸에 천으로 칭칭 감고 교문 밖으로 나갔는데 페퍼포그 차에서 지랄탄을 쐈고 모두 잡아가며 백골단이 우르르 몰려왔다.
👆페퍼포그에서 지랄탄이라는 땅에 닿으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최루탄이 피융 피융 백주년기념관 앞까지 날아 왔다.
👆빡빡 머리를 깍고 마이크를 잡은 분이 앞에 테극기를 두루고 나간 선발대가 다 잡혀가고 무력하게 당하자, 우리도 싸우자고 주위에서 강하게 주문하고 있다. 이후 서로 투석전, 화염병이 날아다녔다.
깃발들
상인들이 꽹과리, 징을 치며 같이 동참했는데 
시위 직전에는 민주 마스크라고 쓰인 마스크를 팔거나 김밥을 팔았다.
👆땅에 떨어진 지랄탄 껍데기

시위대가 나가기 전  태극기에 혈서를 썼다.

장내 방송하면서 여학생이 유창한 영어로 번역 방송했는데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모두 피곤해 바닥에 종이상자를 깔고 남학생 여학생 할 것 없이 누워서 쓰러져 잤다.

나는 백양로에서 도망가다 넘어져 안경이 깨지고 이마가 찢어져 바지도 찢어졌다. 주변에서 백주년기념관에 가서 치료받으라고 권고해 의료 처방을 받았다. 안경이 깨져 앞을 못 보니 더듬더듬 안산으로 가서 아파트 쪽으로 나가려 했는데 그곳에도 전경이 있어 주변 아저씨에게 사정에 같이 동행해 빠져 나갔다.

그 뒤로 대학에 가서 <오!한강>이라는 허영만 만화를 보았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독재타도 후 통일운동을 하라는 친구의 유언 장면이 있는데 운동권 내에서 노선갈등이 통일운동쪽으로 기우며 88년 8.15남북학생회담을 추진한게 아닌가 싶다. 

아마도 4.19 이후에도 비슷한 시도를 하였는데 5.16 군사쿠데타로 무산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때 분위기는 이승만 정권 붕괴 뒤 잠시 언론·집회 자유가 열리자 대학생들은 단순한 “독재 타도”를 넘어서:

  • 남북 학생회담
  • 평화통일
  • 외세 의존 탈피
  • 민족 자주

같은 의제를 공개적으로 말하기 시작

특히 1960~61년엔:

  • 서울대
  • 고려대
  • 연세대
  • 경북대

등 주요 대학 학생회가 적극적이었다.

당시 분위기는 “4.19로 독재를 무너뜨렸으니 이제 분단도 극복하자”에 가까웠다.

대표 사건이:

  •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민통련 계열 초기 형태)
  • 남북학생회담 추진
  •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구호👉이수병 열사가 만든 구호이다.
  • 이수병 열사 평전👉https://dankunjosun.blogspot.com/2022/01/2008.html

맨마지막 구호는 88년 8.15남북학생회담 현장에서도 떼창되었다.

이날 시위는 철저한 패배였지만 6.29이후 8월 노동자투쟁, 김현희 대한항공 폭파사건, 12월 대선 패배 이후 통일운동을 전환하여 89년 문익환, 임수경 방북, 12년 후 2000년 남북정상회담까지 남북통일과 신뢰 회복, 상호인지에 어느 정도 발판 마련한 여론을 형성했다는 것에 역사적 평가를 달라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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