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4월 27일 동학농민군은 이곳으로부터
전주성 서문으로 진입하여 전주성을 접수하게 된다.
동학교도는 자치조직 집강소에서 맞절로 신입교도를 맞아 들여
어린이, 여성에게 평등사상을 실천하였다.
일제강점기로 인해 조선의 계급사회가 없어졌다는 주장은 맞지 않다.
👆천도교신문206호 (2023.1.31 발행)
지금도 맞절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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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신사참배 장소의 석등이다.
동학군이 혁명을 꿈꾸며 지났고 이후 3.1운동,
광주학생운동, 신사참배 반대, 기독교 전파 등
수많은 근대사의 역동적인 역사가 이 주변에서 일어 났다.
신흥중학교 버스정류장을 지날 때
전주성을 표현할 예쁘고 전통을 잘 살린 버스정류장 주변을 지나는 학생 무리가 중국어를 하고 있어,
관광객인지 주변 학교 학생인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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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혁명이 3.1운동과 4.19혁명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img/b/R29vZ2xl/AVvXsEjhyzr0-nGqg9KJZdOYUs5N7r0DzGRdXEZk5ch4QFWfJxvpmZB8GDOi-pN2QXe8uifKNX-whv3oYscZf0XYwqm74-XJQP8nYnlY3bX8nrwNmr2O2ks1TKML_3NZOocbAI_K1KsvlganmMc9-4bLSiE2XBrh0AnSOZtLi5o8f0ijeQ7nvrXgVg/w640-h480/IMG_8148.jpg)
전봉준과 김개남 등 동학군은 여기서 잔여 관군과 합의를 하고 전주성 임시 자치를 시행한다.
조선왕실에서 경기전 등 선왕의 유품에 우려를 보였지만
동학군은 높은 정치력과 군율로 안전하게 보전한다.
아마도 흥선대원군의 밀사도 왔지 않았을까?
대하 소설 <토지>의 박경리 작가는 김개남이 혁명가로 재평가될 것으로 예견하고 작품 속에 녹여 놓았다.☝<개남, 새 세상을 열다/김삼웅/도서 출판 모시는 사람들/2020>에 보면 김개남은 체포되어 열 손가락에 대못이 박혀 소달구지에 실려 전주 숲정이 일원에서 참수당했다.👉http://m.sisajb.com/view.php?idx=36283
동학혁명은 일제강점기로 실패한 것인가? 청일전쟁의 기폭제가 되어 일제 침략의 빌미를 준 것인가? 전봉준과 김개남은 청일양국 전쟁의 승패가 나기 전 혁명을 완수하길 계획했고 청일 양국 모두 동학혁명 전부터 무력 개입을 준비하고 있었다.
프랑스 혁명은 성공한 것이고 동학혁명은 실패한 것인가?
프랑스 혁명도 현재진행형이고 동학혁명도 현재진행형이다. 프랑스의 연금 개혁 시위나 3.1운동, 4.19, 5.18 민주항쟁, 87년 호헌 철폐, 촛불 운동,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 선언 등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명제에 근접하기 위해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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