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
👉이 화 아침이슬
👉이태호 화백
그림 한 장에 여러 이야기를 담고 있다.
👉최호철 지하철 1호선의 기억
👉임 옥상 신문-땅굴
노래 때문에 더 알려지고 연극연출로 더 유명해졌지만,
원래는 그림에 재능을 보였고
서울대 음대에 재학한 누나 덕에 음악에 눈을 떠서
클래식기타를 독학으로 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서울대 미대에 입학했지만 별로 흥미를 못느끼고
연주에 열중한 그가 시대의 아이콘이 될 줄
그 당시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아버지가 의사셨는데 공산군에 돌아가시고
아마도 간호사인 어머니가 10남매?를 낳으셔서
김민기는 유복자로 태어난다.
하지만 그는 작품 어디에서 공산당을 원망하는
이야기는 없다.
그의 자신의 불행을 시대의 아픔으로 받아들였다.
아마도 그 당시 시대가
그를 민중가수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지금 같으면
"이날치"가 되었으라나
👉홍성담-야간 작업 2
전시회에 아침이슬이 울려 퍼지는데 감회가 새롭다.
전시장에 흘러나오는 여러 버전의 아침이슬이 상록수와 더불어 언젠가는 국가로 논의될 날을 내가 볼 수 있을까?
친필로 쓴 편지에는 "구속 수감" 등의 당시 살벌한 상황이 적혀 있는데 나름대로 글씨도 잘 쓰신분이시다.
김민기 샘에 대해서는 강헌샘의 <한국의 대중문화사 1, 2 >나 정혜신샘의 사람 vs. 사람 (개마고원)에서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주변 운동권 동지들이 정치적 발언이나 야심으로 패가망신한 경우가 많은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간 처신의 문제도 모범이 되시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김민기라는 이름만으로 금기시 되던 시대에서 민중가요의 대부로, 띤따라라고 천시받던 영역에서 시대의 아이콘으로, 활동규제로 인해 광부로 농부로 공장으로 다니던 일들이 하나하나 예술로 승화시켜 민중의 대변자로 거듭나던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음미해 볼 귀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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