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April 27, 2021

검푸른 해협-이노우에 야스시/소화/2001-고려는 일본을 알지 못하고, 일본도 고려를 잘 모른다. 지금도 같다

 개인적으로 고등학교 3학년 때 호기심이 발동하여 점심을 굶으며 학교 앞 대형서점에서 어려운 한자를 찾으며 대학서적을 뒤져 탐독한 여몽 연합군의 일본원정에 대한 소설이다.

쿠빌라이가 일본 원정을 불가하다는 핑계거리로 풍도험조風濤險阻를 논하지 말라는 조서에서

 <풍도>라는 원소설 제목이 나오고 한글 번역과정에서 검푸른 해협이라고 제목 지었다.


가끔 생각나면 관련 책을 찾아봤지만, 전공한 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없어서인지  고교당시 교과서 수준 이상의 내용을 찾지 못하고 있다가 <칭기스 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 잭 웨더포드/2005>에 그래도 기존 자료보다는 진일보한 기록이 나오고 <도쿠가와가 사랑한 책/고운기/현암사/2009>에서 새로운 시각이 소개되었다. <여몽연합군의 일본정벌/정순태/김영사/2007>도 화보와 함께 재미있게 보았다. <몽고습래>를 연재한 야마다 도미히코의 말을 인용해 삼별초의 항쟁이 일본원정을 늦추는 효과가 있었다고 지적해 "태풍" 기후변수의 대해 부정적 가정을 했다. 고려말 왜구의 극심한 노략행위와 민간에 대한 학살의 원인이 여몽연합군의 이키섬 학살에 대한 일본인의 보복성격이 강하다고 주장한다.

서인범<통신사의 길을 가다/한길사/2018>에 보면 이키시마에는 고려, 원 연합국이 1,000명을 살해한 천인총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https://dankunjosun.blogspot.com/2013/12/blog-post_25.html

https://dankunjosun.blogspot.com/2018/03/blog-post_24.html

일본 만화중 타카키 나나히코 <원구합전기>라는 만화도 보았다.

단편적인 생각이지만 자료를 찾고 공부를 할수록 내가 알던 일본보다 크고 복잡했으며 

일본 또한 우리에 대한 지식이 상당히 단편적인 조각뿐이었다.

몽고인은 자신들의 정복영토가 하늘의 뜻이요, 

그에 부수한 여러 부작용도 역시 신의 뜻이니 수용해야 한다고 자부심을 드러낸다.


국방TV<토크멘터리 전쟁사>에서 상세한 내용이 나오고, 정하미교수님의 팟캐스트에서 고려첩장불심조조(삼별초의 고려-일본 연합제의 국서)가 소개되면서 당시 국제 정서가 상당히 복잡하고 역동적으로 전개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었다.

쿠빌라이를 만난 고려 태자가 부마국으로 승격되며 항몽에서 친몽이 되었지만, 용병으로 대리전의 선두에 서는 전투함과 전비를 부담해야 하는 고려 왕실의 고뇌가 <고려사>와 <원사>를 바탕으로 소설가의 상상을 동원해 써 내려갔다.

일본의 외교 대응이나 전쟁에 승리한 자부심에 대한  언급이 없고 납작 엎드려 살길을 도모하는 정치인의 외로움을 표현하였는데 <돈황(1960)>을 재미있게 읽은 바에 의하면  <돈황>에 비해 약간 건조하고 사료를 나열하는 느낌이다.

한국을 방문한 후기에 거리의 노인들이 큰소리치는 모습을 보며 한국인의 강인함을 느꼈다는 흥미로운 분석을 남겼다. 1978년 발견된 삼별초의 밀서(고려첩장불심조조 내용)를 알았더라면 1963년 발표한 소설의 내용도 달라졌을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진도 용장산성에서 발견된 연꽃무늬 수막새

KBS 역사 저널 그날<삼별초는 오키나와로 갔는가>와 국립제주박물관<탐라와 유구왕국>, <삼별초/윤용혁/혜안/2014>에서 제주항쟁 후 잔여 삼별초가 오키나와 유구에 정착한 듯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계유연 고려장인이라 기와 글자와 비슷한 연꽃무늬 수막새를 근거로 추정하고 있다.



 원나라가 고려에 공녀를 바치라고 하여 생이별한 내용을 기록한 비석

👉2018년 국립중앙박물관 고려건국1100주년 기념 전시

Friday, April 23, 2021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탐방기 Kimdaljin Art Archives and Museum

홍제천에 봄이 왔다.
비로자나불 국제선원 뒤 공원에도 봄이 왔다.

홍제천을 쭉 따라 걸어가다 보면 옥천암에 이르고(사실 걷기 멀어서 자전거로 유진상가 지하를 통과해 홍은교까지 타고 간다.)



옥천암 앞 기와

포방교 아래



탕춘대성


주변을 검색하니 쉼박물관과 김달진 박물관이 나온다.
어? 이런 곳에 박물관이?





월요일은 휴관 

방문예약을 전날해야 한다.

약간 언덕이라 숨이차다.



상명대학교 기숙사를 지나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도착












이응노 샘
오토 큄멜이 적시한 고구려벽화


사진을 그렇게 찍어서인지 영화나 드라마에서 각색해서인지 선구자적인 지식인들일텐데 한국인도 서양인도 남루하다. 지금 사진도 100년 지나면 그렇겠지,,,


한국사람이라고 소설도 나왔는데 최근기사로는 명나라 상인👉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052270&code=13160000




Wednesday, April 14, 2021

책 리뷰 < 문순득 표류 연구(2012)/최성환/민속원 >

 영화 <자산어보>를 보고 문순득의 이야기를 담은 <표해시말>에 대해 알게 되다.

👉https://dankunjosun.blogspot.com/2021/04/blog-post.html 

표해시말이라는 말뜻은 대충 바다를 표류한 처음과 끝이야기란 뜻.

문순득이라는 홍어장수가 굉장히 비상한 어학능력과 기억력을 가진 소유자였고 덕분에 정약전샘이 그의 이야기를 글로 남겼고, 이강회가- 영화 <자산어보>에서 편지 배달하는 유생(강기영 분)- 후에 우이도로 가서 문순득을 만나 <유암총서>, <운곡선설>에 보다 구체적인 기록을 남긴다.

나중에 필리핀에서 제주도로 온 표류민은 9년 동안 있으면서 한국어를 못익혔는데-막가외~막가외만 외쳤다는데 마카오였다- 문순득은 8개월 필리핀 생활로 이들의 통역을 했다는 기록이 있으니 어학의 천재가 아닌가 싶다.

일본학자가 오키나와 유우국 고대 일본어를 알 수 있는 자료로 높이 평가해 번역해 출간했다.


문순득이 필리핀(성 바오로 성당)이나 마카오에서 본 성당이 아직도 있다하니 놀랍다.


<홍어장수 문순득, 조선을 깨우다/서미경/북스토리/2010>에서는 
삼별초가 1273년 패하고 유구로 갔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진도 용장산성의 기와와 비슷한 기와가 출토된 것을 근거로 한다.


영화<남산의 부장들(2020)The Man Standing Next>-이병헌,이성민 연기가 돋보인 작품

 10.26 사건에 대한 나무위키 글을 읽다가 우연히 보게 되었다. 

어렸을 때 자다가 아버지가 깨워서  창문밖에서 본  탱크가 시기적으로 맞지는 않지만, 차지철이 동원한 충성강조 탱크였던가도 싶었다.



출연한 배우들의 연기가 출중하다. 이병헌 님이 참 연기를 잘하는구나 싶었다. 감정을 억누르는 미묘하고 서툴러 보이는 연기를 연기 아닌 것처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박정희의 본 모습도 이성민 님이 독기 어리게 잘 묘사했다. 유튜브에서 김영삼이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그전 세대야 그 당시 일본문화에 더 익숙했을 나이 때다. 그런 부분을 잘 살렸다. 작고하신 일본 유학파 교수님도 사석에서 일본 시를 읽으며 참 좋다고 감탄하시며 탄복하신 일화를 선배들이 전했다.

<마약왕>https://dankunjosun.blogspot.com/2018/12/blog-post_26.html에서 어수선한 편집을 하신 우민호 감독 작품이라 이게 그분 작품 맞나도 싶고 편집도 깔끔하고 외경으로 보이는 한 컷 한ㅠ컷도 의미심장하다. 궁정동 안가는 2층 건물이었나?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때 현장 고증을 미술 감독인의 조화성, 박규빈 두 분이 최대한 살린 것은 분명하다.


아쉬운 것은 경호팀 중 안재송 님이 0.7초에 총을 뽑아 25m 거리 박카스병을 쏘아 맞추는 속사 명사수인데 이분 에피소드가 생략된 것이다.  영화내용상 여러 인물을 다 표현할 수 없어서 그런 듯하다. 영화상으로는 어떻게 표현되었을까 궁금했다.

이성민이 분한 박정희 연기는 독기를 제대로 표현했으면 정치인의 다중인격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실제로 만나 본 분의 증언에 의하면 박정희가 집중할 때는 눈빛이 청동색으로 변한다고 했는데 고낙선 촬영감독과 눈빛을 살린 이승빈 조명감독의 작품이다. 

곽도원과 김소진이 격분할 때 TV 안에 있는 것 같은 앵글은 참신하고 멋진 앵글이었다.

Sunday, April 11, 2021

영화 < 동주 (2016) >-영상으로 쓴 시(詩)

 영화<자산어보>를 본 후 이 영화 역시 흑백영화로 찍었다고 하여 보게 되다.

문학으로 내적 변화를 일으켜 세상을 점진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소극적인 혁명을 꿈꾼 만 년 이인자 윤동주가 현실의 가혹함 앞에 자신의 노선을 부정하고 송몽규의 무장투쟁을 지지하는 변화를 보여준 내용인데 <자산어보>처럼 뒤로 가면서 급격히 호흡이 가빠진다.

개인적으로 영화 제목은 <동주>인데 송몽규 역을 한 박정민이 적극적인 성격을 연기했기 때문인지 송몽규가 주인공으로 보인다. 샌님 이미지가 강한 윤동주가 황해도 사투리를 쓰는 것도 사료상 맞는데도 신기했다.

저예산 5억 원 정도로 제작하여 100만 관객을 동원해 가성비도 좋고 예술성과 독립영화 같은 실험적 제작의 성공모델이 될 듯하다.


영화를 통해 송몽규의 삶을 알게 되었고 이인자였던 윤동주의 그 당시 삶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천하의 윤동주가 교토 제국대에 낙방해서 릿코대학에 갔다니,,


덕분에 <문익환 평전>도 다시 찾아 보았다. (영화상 나온 인민학교 때부터 러시아와 지리적으로 가까워 극심한 좌우대립이 있었다고 한다.)

영화상으로는 연희전문을 다니며 친구들과 환하게 웃는 모습이 가장 보기 좋아 보였다.

 1941년 12월 7일이 진주만 기습 일이고 윤동주가 12월 27일 연희전문을 졸업했으니  학교 분위기를 흉흉했을 것이다.

교내 언더우드 동상을 전쟁물자로 가져다 쓰고 아래 기념비를 세울 정도였으니,,,



👉흥아유신기념탑https://dankunjosun.blogspot.com/2016/06/blog-post_16.html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사실은 윤동주가 이렇게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다름 아니 마광수 교수님의 연구 덕이었다는 것인데 그분의 책 중 윤동주의 죽음에 대해 긍적적인 글은 그 때 죽지 않고 살아 남아 문단 원로로 파벌싸움이나 하는 추한 선배가 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는 글이었다.

윤동주가 머물던 기숙사를 보전하고 있는 연세대학교도 한 번 다시 가보고 싶다. 





영화 < 이누가미 일족 (1976) > -옛날 영화인데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

 일본대사관의 홍보 메일을 받아 확인해 보니 상암동 영상자료원에서 하고 있었다. 예약을 못 하고 현장 발권했는데 예약만 하고 오지 않으신 분들이 많아서 빈자리가 많았다. 카토카와회사의 상징인 봉황이 나오는데 고구려 봉황과 비슷하다. 1950년 요쿄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