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불교중앙박물관:모악산 금산사 -도솔천에서 빛을 밝히다

 조계사 뒤쪽으로 돌아들어가다.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인쇄하던 곳이었다.


👆김지하의 <사상기행>, 조용헌의 <사찰기행>에서 김제 금산사에 대해 알게 되다.






 견훤에 대한 이야기가 제일 먼저 나온다. 그가 창건하고 그가 말년을 보낸 곳이다.

 


      👉진표율사와 금산사에 관하여 재미있게 읽었는데 금산사와 내게 인연이 있나보다.

백제부흥군과 견훤,이씨 왕조의 목木과 상극인 금金을 회피하여는 
"김"으로 발음 등이 서술되어 있다. 
(반론 송나라 때 이미 김으로 발음하기 시작,한국 김씨 성 족보 어디에도 이에 관한 언급이 1도 없다.)


 


 
 













👉 동래임진왜란역사관
1598년 8월18일 조헌의 700의사에 영규스님은 의리와 수행자로의 귀감을 보여주었다.
말만 앞서고 행동은 하지 않는 자가 세상에 넘치는데 영규스님의 최후는 숙연함을 보여준다.


     👆의병을 일으킨 영규대사, 중노라는 설이 있다. 천한 신분에서 나라를 위해 큰일을 했으니 대단하다고 할 수 있고 조선시대의 사회상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칠백의총에 영규대사 이하 800 여명 인원이 빠쪘다며 전쟁에서 도주한 사대부의 야비함이 사후에도 판을 치고 있다. 금산 전투에서 패하고 부상을 입고 창자를 쥐고 60라를 걸어가다 절명했다고 하니 안타가운 마음이다.




 사람의 간절한 소망이 느껴진다.누군가 병마와 싸우는 손녀,손자가 있었던 것인가?

권력과 부를 가져도 부처님에 간절한 소망을 빌던 현실의 장벽은 무엇이었을까?

 


대부분의 나한상이 익살스러운데 약간 근엄하다,,,입술모양도 특이하다.

 





 




























👆김제 금산사에서 본 미륵불 새벽과 낮에 본 느김이나 모습이 다르다.






 
간절함,소망,인간의 욕망과 의리

이루지 못한 꿈

견훤,김시습

세상을 치유하려던 진표율사와

세상에 맞선 영규대사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운채 나한처럼 은둔하며 

살아야 할까?

아니면 영규대사나 진표율사처럼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해

산화해야 할까?

위기의 시대

변화의 시대

어떤 선택을 내가 스스로 해야 할까?

여기있는 사람들의 흔적은

다 자기 스스로의 선택으로

자기 운명을 

결정했다.

















👆금산사 옆에 박물관 건물을 신축했는데 학예사 파견문제로 당분간 개관하지 못할 듯하다고 들었다. 국보급 유물을 보관한 박물관을 개관하려면 박사급 인원, 학예사 연구 인원이 필요한데 여기까지 자원하시는 분이 없어 개관이 요원하다고 한다. 지방소멸이 피부로 와 닿는다. 불교중앙박물관에서 보지 못했으면 앞으로 보지 못할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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