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April 01, 2018

명재 윤증(1629~1714) 전시회 Yun Jeung



 조선후기 대단한 논객이었던 듯
지금 인터넷 시대에는 여기저기 글도 많이 올리거나 아니면 학자들 간의 논문으로 상대편글을 잡서니 잡글로 깔아 뭉개지 않았을까,,,


 삭탈과 복권의 반복된 삶 요즘으로 치도 질풍노도와 같은 삶을 사시다.


 옆에 것이 간찰을 넣은 봉투인듯
송시열은 윤증을 자신의 제자중 넘버원No.1이라고 기대를 많이 했던 듯하나 결국 갈등의 골은 깊어 가고 나중에 결별하는 정적의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노론과 소론으로 갈리게 된 신유의서 초본

여기저기 고심하며 수정한 흔적이 보인다.














부친과 윤증은 서인 온건파라 남인(윤휴)과 친했는데 이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서인 강경파 송시열이 부친의 묘갈명에 병자호란 당시 자결한 모친을 버리고 피난간 부친을 야유하는 글을 실어 감정이 상했고 이후 정권을 잡은 송시열계 강경파가 남인 윤휴를  사문난적으로 몰아 죽이자 이에 대한 비판으로 윤증의 회니시비가 점화되어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분파된다.

사문난적과 윤휴,송시열에 관한 상세한 내용

https://namu.wiki/w/%EC%82%AC%EB%AC%B8%EB%82%9C%EC%A0%81

송시열이 속리산 복천사에서 10세 아래 19세 윤휴와 사흘을 토론한뒤 자신의 30년 독서가 가소로왔다고 술회한 것으로 보아 윤휴는 인물이었듯 하다.윤휴는 북벌에 대해 찬성하였지만 예송논쟁으로 서인과 소원해졌다고 한다.(조선성리학의 세계-사유와 실천,국립중앙박물관,2003 발췌)



교육방송?불교방송 강의로 동국대?교수님이 정리해주신 내용

임진왜란으로 중국,일본이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는데 우리만 조선이 계속 유지된 듯하지만 이를 중심으로 하는 퇴계학파가 기를 중심으로 하는 율곡학파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고 주장


주자의 해석논쟁에서 정적을 살해하는 빌미를 만들어가는 정국이 현대정치사와 별반 틀리지 않다.





회니시비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76461

관람자중 연고전이나 고연전이냐 논쟁이었다고 하는데 잘모르겠다.















 노비에 관련된 문서




윤창중이 후손이라니 의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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