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개인적으로 우울하고 힘들고 스트레스 받는데 마음이 무거워질 영화를 보려니 영 내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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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종영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뉴스펀딩후원자로서 티켓까지 받아놓고 안보기도 그래서 내키지 않은 발걸음을 하다
무거운 마음으로,,,비극적 장면이 나오면 눈을 감고 싶다..
극장앞에 의외로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길래 뭔줄? 했더니 대부분 <귀향>관람객이었다.
에스케이텔레콤은 요예매권에 100MB데이터쿠폰을 안주나보다...
(쩝..CGV갈려다 메가박스왔는데)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라는 영화를 예전에 보고,독고영재님이 나오시는 것 머 그런 ..격이어서 알고있는 이야기를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갈까 걱정반 두려움반으로 보다.
과거와 현대를 오가며 기억을 연결짓는 연출이 돋보였다.
나름대로 복선과 반전도 알고 있는 이야기에서 꽤 선방했다.
고조선,단군,고구려의 광대한 영토주의는 알지만 19세기를 통과하지 않는 것을 경계한 김지하샘의 경고,,,옛날로 들어가 새롭게로 나온다는 개념(入古出新)
신영복샘이 시간의 강물은 과거로부터 흘러나와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흘러간다는 오래된 미래(ancient future)개념이 영화상 참혹한 과거가 현재와 떨어질 수 없음을 새록새록 가슴에 새기게 한다..
영화<암살>에서도 지적되었듯이 친일파척결문제가 판타지로 끝나고,위안부문제가 만신을 통한 해원解寃으로 밖에 해결이 안되는것은 현실적으로 가해자는 사과하지 않고,강제성도 부정하며 정부 또한 굽신대기 때문이다.
친일파가 대통령이 되어서 일제만행을 사과하라고 하니 일본정부의 비웃음만 살뿐이다..
임종국의<정신대실록>이 80년대 중반까지 대한민국 금서로 지목되었다 하니 믿어지지 않는다.-조영환 저 (원자폭탄보다 더한 금융폭격)2001년판179쪽
오버하지 않는 연출이 돋보였고,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일본 젊은 군인들과의 화해도 나름 의미있었다.흰옷의 선명함이 여배우 최리의 서늘한 눈망울과 함께 사람이 저지른 더러운 일을 깨끗하게 정화시키는 의미로 보였다.
<에미이름은 조센삐였다>에서는 자신을 이지경으로 몰아세운 무능한 조선의 정치권력자를 원망하는 이야기도 있지만 <귀향>은 서정적으로 풀어가며, 동사무소직원만 대통 혼난다.우리의 무관심이 이지경이다...
들판의 바람소리,농토의 바람소리가 스산하게 들렸다.
봄이되서 나비가 날아다니면 무심코 보지 않을 듯하다.
옆좌석의 여자는 계속 흐느껴서 착찹했다.
우리가 한국전이나 베트남전에서 한 수치스러운 일도 복잡하게 떠올랐다..
일제36년이 우리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대들며 명박이를 빨던 후배가 한번은 봤으면 좋겠고,,(안볼듯..)
국제사회는 이성이 아니라 힘이 지배하는 곳이니 우리도 힘을 키워야 한다.
지난 과거가 결코 치유되지 않고 현재와 상처로 얽혀있다면 다가오는 미래도 밝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빌리브란트 얘기를 해보자..
1970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나찌에 희생된 무명용사묘에 나치치하 당시에서 공산당원으로 핍박받으며 저항했던 빌리브란트 사민당 서독수상이 무릎꿇고 있다.
폴란드 키란키예피츠 총리는 -그 역시 강제수용소 마우트하우젠 생존자였다!- 다음날 아침 공항으로 가는 차안에서 나를 포옹했고 이렇게 말했다.
"그녀의 부인이 저녁에 빈에 있는 친구와 전화를 했는데 ,두 사람은 (아마) 몹시 울었을 것이라고.." -정경섭 번역 빌리브란트 동방정책과 독일의 재통합 1990년판 2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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