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동양철학을 말한다> 창가학회를 엿보다.


 이케다 다이사쿠라는 저자가 누구인 줄 몰랐고 뭐 인도 사람이 총괄적인 동양사상에 해 이야기하는 줄 알았는데 창가학회 사람인데 국제적인 위상이 대단하고 인도와의 인연이나 영향력도 상당하다.

창가학회는 어릴 때" 남녀호랭갱교'를 외우시는 아주머니를 통해 알게 되었고 주변 친구들이 몇 믿었는데 괜찮은 사람들이었고 그들을 비판하는 기독교인이 사파같았다. 법화경을 주요 경전으로 삼는다.

*법화경(法華經)은 정식 명칭이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인 대표적인 대승불교 경전입니다. 산스크리트어로는 Saddharma Puṇḍarīka Sūtra, 흔히 영어로 Lotus Sutra라고 한다.

핵심 사상은 모든 중생이 궁극적으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특히 여러 방편으로 설해진 가르침들이 결국 하나의 깨달음으로 향한다는 일불승(一佛乘), 중생의 능력에 맞추어 가르치는 방편(方便), 그리고 부처의 존재와 깨달음을 깊이 있게 설명하는 내용이 중요다.

한국 불교에서도 매우 중요한 경전이며,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처럼 독립적으로 널리 독송 되는 부분도 법화경에 들어 있습니다.

 
그들이 모이는 곳을 회관이라고 연희동에 크게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대담하신 로케시 찬드라라는 분은 22개 언어에 능통하신 불교, 인도 예술분야에 조예가 깊다고 한다.

일본 종교 지도자가 방대한 인맥을 가지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천태대사의 《마하지관(摩訶止觀)에 종랑이청從藍而靑을 예로 들어 후학이 노력해 스승을 능가하는 이야기는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하선(2002)>에서 보았는데 여기서도 인용된다.

법화경을 한역한 구마라습 언급

네루 인도 초대 총리는 "석존의 신격화" 불교의 쇠퇴를 초래했다고 한다.

브라질 상파울로에 '제 2대 회장 도다 조세이 공원'이 있다.  일본계 이민 사회 특징

중국에 불교가 들어온 시기는 1세기 경인데 초창기 중국인은 인도 승의 검소한 옷차림을 보며 당시 중국학자나 관료에 견주어 화려한 옷을 입지 않는 것에 의아해했다. 200여 년이 지나며 불교 미술을 통해 불교를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니치렌 교주가 가사가숲에서 태평양의 뜨는 해를 보며 '남녀호랭갱교'라고 부르신 모습을 상상

*니치렌(日蓮, 니치 태양+렌 연꽃 ;1222~1282)은 일본 가마쿠라 시대의 승려로, 법화경을 가장 중심적인 경전으로 삼은 인물입니다. 한국에서는 흔히 일련(日蓮)이라고 한자로 읽기도 한다.

니치렌의 핵심은 아주 분명합니다. 그는 여러 불교 경전 가운데 법화경이 석가모니 가르침의 궁극적인 완성이라고 보았고, 특히 「나무묘법연화경(南無妙法蓮華經)」을 염송하는 수행을 강조했다. 

일본어로는 나무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経, Nam-myoho-renge-kyo)라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니치렌이 단순히 법화경을 연구한 학승에 그치지 않았다. 당시 일본 사회의 전쟁·기근·재난과 정치적 혼란을 불교의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비판했고, 1260년에는 《입정안국론(立正安國論)》을 제출해 국가와 사회가 올바른 불법에 기초해야 평안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막부와 충돌하여 유배와 박해를 여러 차례 겪었다.

하지만 1274,1281년 여몽연합국의 침략을 종교 안에서 예측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니치렌 사후에는 그의 가르침에서 여러 종파가 갈라져 일련종(日蓮宗) 계통이 형성되었다. 현대 일본의 창가학회(Soka Gakkai) 역시 역사적으로 니치렌 불교에서 나온 계통이지만, 

오늘날 일련종과 창가학회는 같은 조직이나 종파가 아니다.


일본 문화를 인도에 전한 오카쿠라 덴신은 인도의 반영 운동을 지지했다. 일본의 한국 침략에는 침묵하였다.

찬드라의 부친은 인도에서 일본어를 가르쳤다고 영국 당국에서 일본 스파이로 의심받고 , 러시아를 가르쳤다고 러시아 스파이로 의심받아 투옥되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인도 독립투사. 4형제가 2차 대전 당시 참전. 큰형이 미얀마에서 사망

간디도 법화경에 대해 나름대 소양이 있었음. 일본을 통해 불교를 재접견하고 산스트리스트어가 원본이라는 것에 좋아했다고 하는데, 한국불교에 대한 언급은 없다. 간디는 비폭력은 불교에서 영향받은 것.

간디는 일본의 불교 관계자가 인도에 종을 기증하고 인도에 불탑을 세우려는 계획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일본에서 널리 알려진 "이로하의 노래"도 알고 불교의 깊은 뜻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로하 노래(いろは歌, 이로하우타)」

꽃은 아름답게 피어도 결국 지고 만다.
이 세상에서 누가 영원할 수 있으랴.
덧없는 삶의 깊은 산을 오늘 넘어,
헛된 꿈도 꾸지 않고 취하지도 않으리.

여기에는「제행무상(諸行無常)·시생멸법(是生滅法)·생멸멸이(生滅滅已)·적멸위락(寂滅爲樂)」이라는 불교 게송의 의미가 대응다고 전통적으로 설명합니다. 
즉 “모든 것은 변하고 사라진다 → 생멸에 대한 집착을 넘어가면 열반의 평안에 이른다”는 흐름이다.

이로하 노래는 법화경 자체에서 나온 노래가 아니고 《열반경》과 연결된다. 

일본에서 글을 처음 배울 때 학습한다고 한다.

그런데 왜 전쟁을 했을까?

당시 일본에서는 남성만 참석하는 보통선거제가 있었으나 

전쟁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

중국의 저우라이가 전후 일본에 배상금을 청구하지 않은 복잡한 대만과의 정치적 속내는 설명하지 않고 있다.


"불교를 통한 아시아의 문화적 네트워크 구상"

중국은 한자를 폐지하고 로마자를 쓰려는 구상을 한 적이 있었다. 

네루와 저우언라이의 중재로 찬드라의 부친은 중국을 방문하여 인도의 불교 유산 석 달간 연구, 

인도의 현장(玄奘, 602~664)칭호를 들음

법화경은 <겐지 이야기>등에 큰 영향

구마라습의 번역이 인도-중국의 불교 경전에 지대한 영향을 줌

74부 384권이라는 방대한 번역 사업


생명은 모두 동포-대동사상, 캉유웨이의 <대동서>


 1257 지진, 기근,역병

→1260 니치렌의 《입정안국론(立正安國論)》외침 경고 ,

→ 1268 쿠빌라이의 고려 통해 국서 전

→ 1274 제1차 일본 원정

 → 1281 제2차 일본 원정 

→ 1282 니치렌 사망

구마라집이 **406년 중국에서 번역한 《妙法蓮華經》을 바탕으로 13세기 고려에서는 같은 《묘법연화경》을 포함한 대장경을 목판에 새기고 있었고, 바다 건너 일본에서는 니치렌이 그 《묘법연화경》을 중심으로 새로운 불교운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묘법연화경은 이미 고려대장경에 있다. 

묘법연화경을 중심으로 한 창가학회가 한국에 처한 현실은 일제강기의 상처와 해방 후 재가불교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이 크게 부정적으로 작용하였고, 1964년에는 창가학회의 집회와 포교를 금하는 행정처분도 내려졌다.


👆한국불교도 려 시대 대장경에 묘법연화경을 새기고 있었고, 
동시대 일본에서 묘볍연화경을 중심으로 한 일본 창가학회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

👆모텔건물을 매입해 관음전으로 쓰고 있다.
👆반야심경이 쓰여 있다.
👆노스님의 전언으로 이곳이 망나니 살던 곳이고 사형도 벌어진 곳이라 한다. 밤길 조심하셈





👆일본의 위안부 사과가 이루어지지 않아 소녀상이 예상 일본대사관 정문 앞을 바라보고 있다.

일본대사관 부지


Comments

Popular posts from this blog

서울 구석구석- 야구연습장 탐방기-남영역,강남역,신촌,홍대,철산, 수원, 목포 등

LG U+ 우리집 지킴이 Easy 사용 유감 (요금폭탄)“LG U+ Easy Service in Korea – A Real User Experience and a Call for Consumer Righ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