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려다 책장을 넘겼는데 한 할아버지(김동현 전 굴립문화재 연구소장)이 경주 황룡사터 목탑 터에서 심초석 위에 놓인 박음돌을 가르키는 사진을 보고 호기심이 발동하여 읽게 되었다. 몽골군이 쳐들어와 황룡사 목탑에 불을 지르니 고려인 중 누군가 황룡사 심초석 위의 사리를 보호하기 위해 이 큰 돌을 옮겨 덮은 것이다. 세월이 흘러 몽골군은 사라지고 1978년 크레인으로 박음돌을 들어 올려진 자리에서 그 자리에서 3,000여 점의 유물이 발굴되었다. 과거가 현재와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용꿈을 꾸고 찾아 낸 백제금동향로, ☝경주 월지에 전시된 김해 대성동 88호 무덤에서 발굴된 가야 바람개비모양 동기 학창시절부터 금관가야를 꼭 찾아내겠다는 야심을 품어 김해 대성동 유적을 발굴한 학자 이야기,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금일봉 정치 후일담, ☝ 강병기 교수 기증 유물특별전 <어느 도시학자가 꿈 꾼 서울>, 서울역사박물관, ( 2021-10-29 ~ 2022-03-06), 1970년대 주한미군의 일본 관광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경주 종합 관광 개발계획을 세웠다. 통일신라우물 발굴시 폭이 좁아 캄캄한 우물에 몸집이 작은 여 조사원(학예연구사 장은혜) 혼자 약 7 미터 아래 내려가 조사한 사실, ☝경주 월지에 있는 축소판 월지미니어쳐 경주 월지 발굴 당시 붕어로 회 쳐서 먹다가 간디스토마에 감염돼 고생한 일, ☝위용을 자랑하는 익산 미륵사지탑 ☝익산미륵사지탑 복원미니어쳐 국립익산박물관 ☝익산미륵사 터에서 발견된 사리봉영기 ☝ 전북 익산의 미륵사지 서탑에서 나온 사리봉안기. 639년 백제 귀족 가문 사택적덕의 딸이 백제 무왕을 위해 사리를 봉안했다는 기록이 적혀 있다. 전설로 내려온 <삼국유사> 속의 서동요와 선화공주 이야기와 실제 익산 미륵사지탑의 주인공 논쟁 일본 유학파가 주류였던 과거 학계 등등 고고학이 아니더라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