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May 20, 2023

일본에서 돌아 온 <대동여지도> 특별전 김정호의 진면목-국립고궁박물관

 4월에 기사를 접하고 기다리다가 전시공개를 인스타그램에서 확인하고 찾아갔다.

4월기사👉http://www.culturelamp.kr/news/articleView.html?idxno=354

경향신문 기사가 심도있고 디지털데일리의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https://m.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305160900001

👉http://www.ddaily.co.kr/page/view/2023051702381310997

5월16일 화요일 서울공예박물관과 같이 전시했는데 늦게 알아 그냥 집에 오고 지나며 왔는데 걸어갔으면 아마도 구찌 패션쇼 때문에 경복궁 통과를 못 했을 듯 한다.

















크기도 어마어마 하지만, 개성이 한양보다 더 크게 나와 서글픈 분단의 현실을 느낀다.
북한의 동해와 서해의 여러 섬도 상세히 나와 눈여겨 보다.







작년에 우연히 인사동 무우수아카데미에서 
이기봉 박사님 강의를 듣게 되어 같이 적기로 한다.
 

김정호가 살던 시대 조선 양반들은 지방에 칩거했고 상업 발달이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건너편 일본은 에도시대에 엄청난 상업 발달이 이루어진 것과 대비된다.

김정호가 그린 지도은 6.6m 정도 되는데 
지금은 전시 기술이 발달하여 가끔 전시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조선이 다 뒤처진 것은 아니고 
경국대전 같은 
국가조직 시시템은 
조선이 월등히 일본보다 
잘 정비되어 있었다.

김정호의 지도를 보고 후세사람들이 추측하길
적국에 군사기밀을 유출할 우려가 있어 문초를 받았다는 둥
2009년 소설 <고산자>와 
이를 바탕으로 한 2016년 영화<고산자, 대동여지도>에서는 
홍경래의 난과 관련해서 아버지의 죽음으로 
정확한 지도를 만들기로 했다는 동기 등이 
나오는데 다 맞지 않는다.

김정호의 책은 지금까지 발견된 것보다 2권이 더 있고 
앞으로 계속 나올 것이다.
특이한 것은 미완성작품이 있다는 것인데 
김정호는 퇴직 이후를 걱정하지 않고 
끝까지 현역으로 살다 죽었다.

공무로 신경준이 1770년 6m 크기 지도를 제작했고 금박으로 만들었다. 
공무원인 화공이 그걸 그려서 
위작이 민간에 유통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정상기가 1740년대 만들었고 
복사본이 많이 있었다.

세종이 4군 6진을 개척할 당시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1463년 지도에는 북측 정보가 없었다.
4군 6진에 정착하고 주민을 양성하려고 했다.

대동여지도는 군사지도일까?

이전의 지도에도 늘 표기되었고,
  당시 관리가 되려는 지식인은 
누구나 알아야 할 필수 교양 수준이었다.

조선총독부에서 수집해 규장각에 두었다.

역사는 무궁무진한 신화가 있어 
김정호를 보는 애국자 신화가 특이하지 않다. 
하지만 이제는 시각을 달리해서 보아야 한다.

지도 분야에서 전국 답사 후 
경위도를 측정해 <일본여지전도>를  만든 
이노 다다타가(1745~1818)를 
조선에 대대적으로 홍보했고 
이에 대한 반박으로 
1925년 10월<동아일보>에 김정호 신화가 시작되었다.

이전부터 위도 측정, 삼각측량을 할 수 있는 
천문학적, 수학적 지식은 조선뿐만 아니라 
세계 대부분은 지역은 
고대로부터 전래한 지식 축적을 하고 있었지만  
수요도 없었고 
그래서 개발도 하지 않았다.

90년대 나의문화유산답사기를 읽고 
지도 없이 길을 나서도 
 길을 잃지 않는다.
길잡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르코폴로는 지도를 보고 여행하지 않았다.

고조선-고구려-신라-조선 길은 같다.

수요가 많아지니 지도 제작을 시작했다.

경주 지도나 전주 지도는 없는데 
서울 한양 지도(수선전도)나 전국 지도는 많다.
 수요가 많으니 공급도 많아 진다.

김정호는 오늘날 출판사 사장으로 볼 수 있다.

김정호는 초창기 목판을 파는 "각수"였다.
당시에는 최하층 계급이었다.
딱히 족보에도 기록이 없는 것을 
보면 평민이었다.

혼란기에 신분제가 재편된다.
신숭겸이나 왕건은 호족인데 
신라 후기 혼란기에 중앙에 올라 간다.
고려시대 사대부는 무지랭이었다. 
영, 정조 시대에는 
김정호 같은 인물이 출현하지 않는다.

김정호가 살았던 18세기 혼란기를 다시 봐야 한다.


신경준이 쓴 책을 업그레이드하기 시작했다. 
신경준이 알았던 잘라서 책 만들기 시도
300매가 되는 책을 찾아보기(색인)를 추가하여 
찾아보기 쉬운 <청구도> 완성

접어서 보는 이어보기 지도는 편리하지만, 영역표시나 축적, 찾아보기가 안된다.
피나무 목판으로 김정호급 정도의 전문가는 3~5달이면 판다.

미완성작이 있다는 것은 
꿈을 가진 자의 특권이다.

김정호는 자존심이 강해 후원을 받지 않았고 친구인 최한기의 부탁으로 
세계지도인 <지구전후도>를 만들었지만, 당시 수요가 없어 잘 팔리지 않았다.










항상 신제품개발을 위해 평생을 살았다.
전문출판인, 경영인, 진정한 학자였다. 
한문도 독학으로 깨우침

질문> 대동여지도에 독도가 없기 때문에 
한일합방 이후 독도를 일본이 찾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답> 당시 한양 지도는 많은 데 전주나 경주 지도는 없다.
당시 일반 조선인들 사이에 독도는 관심외 사항이었다.
대중적인 출판업자인 김정호는 
이에 따라 표시하지 않았다.

(개인 생각 👉아편전쟁 당시의 홍콩과 
지금의 홍콩을 같이 봐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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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인연이 되어 <서울역사박물관>에 
지구전후도 전시를 요청하는 이벤트에 당첨되어 
경품도 받고 마.침.내 지구전후도를 보았다.




<서울역사박물관>2024년 지구전후도 전시안내 (2024. 3. 26~6. 30) 👉https://museum.seoul.go.kr/chd/board/NR_boardView.do?bbsCd=1014&seq=20240326160333194




Wednesday, May 17, 2023

홀로 떠나는 봄날여행2023- 경주 금관총, 국립경주박물관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진주성을 거쳐 드디어 경주로 왔다. 이게 마지막 여정이다.

👆따뜻한 봄볕에 소풍을 즐기고 낮잠을 자고 있다. 호우총 주변

작년에 갔을 때는 공사 중이었는데 금관총이 개관했다.👉https://dankunjosun.blogspot.com/2022/03/blog-post_28.html


국립중앙박물관의 발해관에서도 저것 비슷한 물고기를 보았는데 당시 여러 나라가 공유한 상징물이었나 보다. 그런데 자세히 비교하니 다르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국립대구박물관 같은 입체적인 전시가 아쉽다.👉+https://dankunjosun.blogspot.com/2023/04/blog-post_9.html



밖에서 봉황대를 배경으로 반려견을 앉혀 놓고 사진을 찍고 있다.
언제나 볼 때마다 신비로운 봉황대


☝황오동 고분군

☝특이한 상호
☝동국대학교로 가는 버스 탑승, 건너편 시장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정문
☝감은사지 탑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도착신호가 없다. 
옆에 기다리는 분께 여쭤보니 기다리면 온다고 하신다. ㅠㅠ 

예전에 화순 고인돌 구경 갔다가 관리자가 기다리면 차 온다고 하시고 가버려서 
40분을 기다린 경험으로 행선지를 바꾸다.


아이들이 눈을 빼꼼 내놓고 있는 듯하다.




경주 사라리 유적 갑옷



☝이렇게 무장하지 않았을까?











              ☝아이들을 보면 즐겁다.

                        ☝김유신 장군 무덤에서 출토된 것으로 추정되는 십이지신상

                   중앙박물관에 두 개 있는데 여기도 하나 있다. 남북국시대의 양식을 알 수 있다.




☝언제나 봐도 묵직하고 근엄하고 단단하다. 비결이 무엇일까?











👆중앙박물관에 있는 사천왕.


하루해가 진다. 박물관 옆 버스정류장에 가니 
KTX를 타려는 외국인들이 캐리어를 들고 서 있다.

제주도에서도 느낀 건데 차가 없으면 대중교통으로 여행하기 너무 힘들다.
익산 미륵사지에서 전주박물관 대중교통으로 3시간, 택시로 30분
공주박물관에서 부여박물관 대중교통으로 3시간, 택시로 30분

김천에서 온 후배가 잠실야구장에 야구보러 가면서 
"김천에서 대구에 야구보러가려면 힘든데 
서울은 지하철만 타면 다 가니 부럽네요"라고 
한 말이 떠오른다.



영화 < 이누가미 일족 (1976) > -옛날 영화인데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

 일본대사관의 홍보 메일을 받아 확인해 보니 상암동 영상자료원에서 하고 있었다. 예약을 못 하고 현장 발권했는데 예약만 하고 오지 않으신 분들이 많아서 빈자리가 많았다. 카토카와회사의 상징인 봉황이 나오는데 고구려 봉황과 비슷하다. 1950년 요쿄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