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April 03, 2020

도올 김용옥 샘의 요한복음강해 46강~60강 완결

46강> 하늘로부터 온 떡


s'emeion 징표;성찬에서 빵과 포도주를 먹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떡과 북어를 한국에서는 줘야 한다.

타복음서는 "최후의 만찬"부분에 언급된 내용을 특이하게 요한복음에서 인용

예수님은 제식성을 싫어하셔서 "피와 살"을 현장성을  살릴 수 있는 부분에서 언급

십자가전 성찬의 모습이 아닌 제자의 발을 씻기는 종의 모습,자신을 낮추는 모습을 강조함



29장 "Work"의 의미 진리를 믿는 "행위"=로고스=하나님의 말씀

외형적 성장을 과시하는 사역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내가 먹고 마심으로써 그것이 나의 살과 피가 된다.

숭산스님 예일대에서 최면을 시현하셔서 대중의 주목을 받음

예수님에게 이적을 보여줘야 믿겠다는 인간의 요구는 어리석은 것

하나님->중개자(구약)->모세(구약)

모세의 이적은 모세가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이루어진 것

현세적인 잣대로 하나님을 평가해서는 안된다.유대인의 현세구복적 미신을 통렬히 비판

고등한 헬레니즘 사유를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예수

47강> 영원한 생명


요한복음서을 읽으면 감동이 오고 암송한 이후 삶의 어려움이 오면그 내용이 생각난다.

이세상에 생명을 준다.위장을 채우는 떡이 아닌 생명의 떡

내가 바로 생명의 떡이다."I am~"이라는 표현은 단도직입적 표현. 당대 헬라이즘 지식인 표현

죽음,부활, 메타포 내포

배고프지 않겠다+(추가)목마르지 않게 하겠다.+(이후)피 + 살 암시 언어의 절묘함

교회에 모이는 것이 커뮤니티 기능을 무시할 수 없다.구복신앙적 기원도 그 안에 세상에 대한 도움을 주기 위한 방편이라는 큰발원이 있어야 한다.

은혜공동체교회는 장로교이지만 목사님이 무신론자 참여 반대하지 않는다.

예수님 타종교 다 받아들여"I will not cast out"

재림사상 언급한 건 초대교회사상 소개

하나도 남기없이 모두 구원하려는 예수님의 마음"lost nothing of all"

재림의 시기에 대해 초대교회나 사도 바울은 근래라고 하였은나 요한복음에서는 지금 예수님을 믿어 영생 얻으면 "죽더라도"최후의 심판 때 다시 구원받으리라 예정하여 오늘, 지금, 여기서의 영생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48강> 예수의 피와 살


요한복음은 상황묘사가 리얼하다.요한복음 저술에는 예수에 대한 묘사에 금기가 없다.

*be abide in me ~거한다.

예수는 로고스의 화신.피와 살 먹는다는 의미는 예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다는 뜻.그리하여 그 말씀이 우리에게 거하므로 예수안에 거하는 것이다.

동양에서는 고래로 역사의 신을 신봉하였다.즉 이름을 남긴다는 뜻이다.진리를 구현하면 역사에 영원히 남는다고 생각했다.

역사의 신=하늘나라에 영원히 남는다.

역사의 신=하늘의 신

초기 유학자들이 요한복음 사상을 받아들인 것은 이런 사상에 바탕한 것이었다.

49강> 영과 육


우리 사회 모세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만 예수님 말씀에 대해 신중

요한복음에서는 12제자이 숫자에 대해 중요시하지 않는다.유대 12지파와 연관되어있지만 유대교적 전통에 관심이 없다.요한복음에서는 이에 관련한 내용을 대폭 생략하고 있다.

과거 동양철학은 일원론,서양철학은 이원론이라는 분류법이 있었으나 지금에 와서는 말장난 같다.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에 의미가 없는 것들.

맑스,칸트가 그 당시 체제,사유체계에 가치,각성,사회변화를 주었느냐는 그 당시 관점이 중요

요한복음의 시스템은 영(spirit)/육(flesh)을 철저히 이원화하여 인간의 육체적 욕망을 제한할 유대인 율법에 충실(강간,근친상간 등)

육체적 욕망을 극복하기 위해 영적으로 다시 태어남.해탈, 같은 이야기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였는데 그안에 불교가 있다면 불교 속에 하나님의 말씀 헤아려야

신학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내고 담론을 제시할 수 있도록 열린자세로 격려해야 신학이 학문적으로 발전한다.논쟁의 자유 보장해야 한다.그래야 우리 민족이 기독교로 융성할 수 있다.

말씀=영=생명

한의학에서 침은 육체 뿐만 아니라 정신도 콘트롤한다.
말씀=생명----->몸이 좋아진다.

영+육  인간=하늘+땅

인간의 토탈상태에서 논의해야 한다.

교회가 융통성없이 교리만 이야기하고 성서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젊은이들이 교회를 오지 않게 된다.사회적 영향력 또한 없어지게 된다.서구 교회들 텅텅 비어 있다.

50강> 가룟 유다


64절 처음 유다 언급

 유다복음이 초대교회시절 내용이 최근 발굴 주목받고 있다.이단이 아니라 초대교회가 "가룟유다"를 어떻게 이해했느냐에 대한 다양한 관점으로 이해.유다복음이 4복음서에는 채택되지 않았지만 유다복음의 발굴이 오히려 4복음서를 돋보이게 하고 있다.

유다복음에 대한 개인 블로그 포스팅👉https://dankunjosun.blogspot.com/2008/11/blog-post_13.html

기독교인들은 이에 대해 여유홉고, 개방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엄밀히 보면 유다복음의 내용은 이미 요한복음에 다 있는 내용이다.

"some of you"

예수님의 제자 숫자를 알 수 없다.제자가 많이 있었을 텐데 요한복음은 12제자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다.

<유다복음>은 예수와 유다의 밀약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 하지만 <요한복음>은 예수가 처음부터 다 알고 있다,,하지만 그렇다고 유다를 설복시키려 하지 않는다.결국 예수자신이 부활하여 하늘나라로 갈 것이라는 결과를 알고 있고,그의 제자들도 자신의 가르침을 따르게 되리라는 결말에 대해 예수의 표현이 장황하게 나온다.

결국 요한복음과 유다복음의 내용은 같은 내용이다.

너의 배반,부홀의 매개, 그것이 크나큰 은총,,,요한복음에서도 같은 내용 예수는 그가 배신한 것을 알고 있다.하지만 배반하도록 맡겨 둔다.유다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자신을 배신할 자가 나올 것으로 예견.자신의 죽음에 대한 신념 있었다.

예수는 이전에 율법과의 전쟁, 인간해방 선언, 하나님의 나라 선포 했을 때부터 이미 죽음 각오

내가 죽음과 부활 암흑속에 던져진 참다운 빛이라는 것

너희가 깨닫고 증언하게 하는 것을 허락하게 한 것이 바로 은총

하지만 그의 가르침을 따르기 어렵다.하나도 남김없이 구원할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구원의 길이 어렵다고 이야기

불교에서도 인간의 구원이 "나무아미타불"만 외치면 다 된다고 쉽다고 이야기 하는 반면(아미타불 사상), 선종에서는 부지런히 정진하고 공부해야 하는 어려운 것으로 다르게 주장

양면이 항상 겹쳐져 있다.예수도 어렵다고 말하니 주변 제자들이 다 겁먹고 떠난다.

나의 자의적 결단이 아닌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

다 떠남

"twelve" 12제자를 특정.이 외에도 여러 제자가 있었다.

요한복음 저자는 베드로계열의 사람들 이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베드로의 언급이 기록

"the Holy One of God" 유대교적 표현이 아닌 헬라이즘 표현,보편적 표현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했다.

"One of you..Devil"굉장히 독한 표현, 악마의 역을 할 "악역" 가룟 유다 점지

Judas 유대인 유대인 잔혹사의 빌미를 제공

유대교인은 구약을 신봉하지만 신약은 끔찍하게 여긴다.유다에 대한 표현에 혐오태워버리라고도 한다.

기독교인은 그럼에도 구약을 중시한다.

김용옥샘은 구약폐기를 주장해본 적 없다.


예수는 갈리리 지역에서 이적과 선도를 하셨다.유대지역에서는 예수님을 적대시하여 험악한 분위기 였다.드라마적 긴장감이 있다.

유대명절관습인 초막절 다가 옴

51강> 초막절 해프닝


모든 문명은 축제적 요소가 있다. 영고 하나님 맞이 북을 때리는 행사.춤,음식

구약에서 예수님까지는 성전중심,현재 성전이 없는 유대교

봄 유월절(재앙이 지나간다)이 지나고 50여일 지나 오순절(초식절)

니산절 14일 첫 나락 거두는 시기 

가나안 전통 농사절기(팔레스타인)가 여호와 종교화.

유대인 명절,출애굽기 35:22 최초 나락 거둘 때

가나안 전통 농사절기를 여호와 측에 종교화,팔레스타인 쪽 행사가 유대인 명절

수장절(초막절)유태인 이동시 초막에서 보호해 준 일화,솔로몬 성전 초막절에 복원

전세계 유대인이 다 모임

유대인 3대 명절-유월절,초식절,초막절

예수님은 남동생 4,여동생 2이 있었다.요한복음은 동종녀 마리아 기록을 넣지 않았다.

6절"My time has not yet come,but your time is always here."예수님은 하늘,형제들은 땅의 존재

요한복음 7장 12절에서 대중이 생각하는 예수님에 대한 이중적 평가는 헬라사람들이 소크라테스에 대해 품었던 이미지가 투영되어 있다.


52강> 예수는 거짓이 없다.


유대의 최대명절(우리 한가위)에 예수 형제가 예수의 이적을 과시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려 했으나 예수는 거부.

군중이 지난 예수가 또 나타나지 않을까 수근 거리는 사이 

예수가 성전에 나타나 말씀을 전하다.

이적보다 말씀 전하는 랍비 같은 존재

예수의 모습은 초라했고 일자무식한 사람으로 취급되었으나 그의 말씀의 내용은 꽤 박학다식하였다.

하나님 뜻을 행하려 한다면 나의 진의 구별 할 수 있다.

구약의 무서운 하나님은 상기하여 목사들이 신도를 협박한다.

예수님은 십일조가 가난한 민중에게 부담이 된다고 하여 부정하였으나 현대 교회운영을 위해 구약내용 악용인용

Do의 명사형 deed

잘 걷지 못하는 사람을 걷게 만든 일을 율법으로 단죄하려고 하고 있다.

circumcisim할례 생후 8일 할례풍습을 지켜려면 인구의 1/7은 안식일 율법을 어기게 된다.

율법이 율법을 해친다.중국 고사 상앙의 폐해

유대인 재단 병원이 많은 미국 방대하게 행하여 졌으나 최근에는 위생상 건강상 다른 의견이 많아 또 다르게 판단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창세기(17장 4절)에 하나님과의 약속으로 행한 것

율법을 준수하면서 덕을 쌓여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예배하며 즉시 구원된다.

요한복음 저자는 당시 논쟁되었던 문제를 예수의 입을 통해 날카로운 비판을 하고 있다.

당시 헬라사람들도 할례라는 율법을 따라야 하는 가에 대한 모순,논쟁 표현

할례라는 율법 준수를 통헤 인간의 몸이 온전해지는 것과 불편한 몸을 온전하게 한 것 중 후자의 것을 율법 위반이라고 공격하고 예수 자신을 죽이려는 것 비판

율법은 율법 자체에 내부 모순으로 율법을 해진다.이를 극복하기 위해 "사랑"이 필요한 것이고 하나님을 보듯 모든 인간을 바라봐야 한다.

53강> 외모로 판단하지 마라

요한복음 저자는 당시 논란이 되었던 안식일 문제를 재차 언급한다.

7장 24절 "Do not judge by appearances, but judge with right judgment."(외모로 판단치 말고,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

김용옥샘이 가장 좋아하는 문구.

초막절 유대인들이 모여 있는 상황에서 여론이 "저 분이 메시아가 아닐까?"하면 여론이 돌아 서기 시작했다.

24절 ~26절 메시아가 올때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그러나 예수는 어디서 왔는지 확실히 알고 있다.나사렛에서 왔다면 그는 메시아가 아니지 않는가 의심의 눈초리.

28절 You know me.나는 나사렛에서 왔다.하지만 내 자의로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나는 아버지께서 보내셨기 때문에 왔다. "True" =알레키노스alleikino?희랍어? 진실한 분,real

30장. 그의 때가 오지 않았다.->수난,죽음,부활

31장. 의심하면서도 그가 행한 일들을 회고하며 수긍하는 분위기.그리스도는 특정인물을 뜻하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일반명사.기름 부움 받은 사람,항상 일반대중은 이권에 사로잡로 잡히지 않고 진실에 쉽게 다가 간다.

32장. 바리새인 초조

이후 드라마적 전개.창 같은 전개.나는 너희와 좀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그에게로 갈 것이다.

34~35장.나를 찾아도 나를 만나지 못할 터이요,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니라. 군중들은 무슨 소리인지 어리둥절하나 하늘나라 암시.땅의 이야기로 전한다.해외유학이라도 가서 교수라도 할 것인가?해외 선교라도 갈 것인가?

Diaspora,Dispersion 요한복음 저자의 당시 알렉산더의 정복활동이후 건설된 소아시아에 유대인,헬라인이 상당히 흩어져 있는 국제적 감각을 알 수있다.

54강> 목마름


37절에서 초막절 (우리나라 한가위 같은 큰 명절) 예수님은 40년 시네 광야에서의 목마름을 상기킨다. 물리적이고 간절한 인간 욕구 드러내며 영생의 물이 자기 자신이라고 언급한다.

애굽시대 고통,신음 모세적 이미지 결합되어 있다.

출애굽 17장과 민수기 20장에서 모세가 바위를 내려친 이적으로 물이 흘러 나온 것 이미지 겹친다.강렬한 이미지

39절에서 부연 설명을 한다.(이것에 대해 요한복음 원본이 아닌 후세의 삽입구라는 비판이 있다.)"not yet glorified" 아직 영광을 받지 못했다.십자가에 못박히기 이전의 일

40절 the(특정인) prophet 선지자("모세"의미)

41절 Christ ➠다윗왕 

예수가 베들레헴 출생이 아니며 그럼에도 정통 그리스도가 될 수있다는 신념을 보여 준다.예수는 갈리리 출신이며 호구조사니 동방박사 같은 당시에 떠돌던 예수의 상충된 전승에 대해 정면으로 부인하며  복음간 불일치를 지적하며 역사적 인물로서의 예수 강조하는요한복음의 위대성을 보여 준다. 

갈리리 촌놈이라고 생각되는 이 분이 로고스의 화신이라고 새롭게 해석

선지자≠메시아(다윗과 같이 민족을 해방시켜 줄 정치적 존재)

30⁒는 모세라고 생각하고 30⁒는 그리스도라고 정치적 기대감이  대립되고 있는 상황

44절 군중은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기에 새로운 인물에 대한 쏠림 현상이 나올 수 있다.
기득권 세력은 이렇한 현상을 민중의 무지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55강> 저 여자를 돌로 치라

니고데모의 전격 등장,예루살렘의 당대 최고 존경받는 지식인이며 관료

성전주변을 쳐다보는 사람,일전에 예수가 성전을 뒤엎은 사건을 목격했을 수도 있다.

지켜보다가 나타날 수도 있다.

요한복음의 훌륭한 점은 예수의 제자가 아닌 제3자인 니고데모를 출연시키는 점이다.

니고데모가 이전에 예수를 만난 이후 그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다.
(도올샘도 자신을 개인적으로 만난 사람은 강의하는 모습과 딴판이라고 얘기한다.)

51절 "Does our law judge a man without first giving him a hearing and learning what he does?"

"사람에게 먼저 말의 기회를 주고 그 행한 것을 충분히 알아보기도 전에 판결내리는 것이 우리의 율법이뇨?"

니고데모는 신명기의 내용을 언급하며 절차적 정당성의 문제를 제기한다.신명기는 모세가 후세에게 당부한 유언이며 이로 인해 요한복음의 저자는 당대 상당한 지식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니고데모는 3번 등장한다.
  • 니고데모와 예수의 담화(렘브란트 삽화중 모자 쓴 사람)
  • 군중 속에서 예수 변호
  • 예수 사후 장례절차에서 선두에 모자 쓴 사람(렘브란트 삽화중 선두에 모자 쓴 사람)고가의 유약 등 비싼 장례의식에 필요한 비용 지불

52절과 8장 12절은 이탤릭체로 표현.고대 요한복음 원본에는 없는 부분이고 후세 삽입된 것이 확실하나 내용이 너무 좋고 그 당시 분명한 예수의 전승을 담은 것이라 넣었다.

예수 감람산 올라감.새벽, 먼동 틀 때 장면전환을 고심한 흔적 드러난다.

예수가 제자들 옆에 앉아서 가르친다는 기록은 이전과 분위기가 달라 전승된 이야기이지 요한복음 분위기와 다르다.

예수에게 랍니니 선생이라고 칭하는 것은 자신이 랍비이면서 예수를 경멸하거나 비꼬는 칭호이다.

"act"라는 표현은 간음한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체포했다는 것인데 같이 있던 남자는 어디 갔으며 과연 그런 현장을 급습하며 체포하기가 쉬운가? 무언가 앞뒤가 안맞다.

신명기에 의하면 약혼녀가 결혼전 다른 남자와 정을 통하면 상간남자와 같이 돌로 쳐 죽이는 관습이 있고, 여자가 처녀가 아닌데 속여서 결혼한다면 첫날밤에 처녀막 혈흔으로 증거 삼아 부정한 여자를 고발하여 상간남을 찾아 처벌하는바 이부분은 뭔가가 이상하다.

단, 여자가 사막같은데 지나다가 겁탑을 당한다면 처벌하지 않는다.

여러 상황이 애매하다.이 여자가 약혼자인지 매춘녀인지 결혼한 여자인지 불분명하다.그렇다면 같이 있던 남자는 도망을 갔다는 것인가?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자를 천시하는 기록이다.

예수를 곤란한 상황에 빠지게 하여 골탕먹이려는 수작이다.

만약 율법대로 처벌한다면 평소에 사랑, 용서의 가르침에 반하고, 이들을 용서한다면 율법도 모르는 무지한 자라고 비난 받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시험에 빠진 예수는 땅바닥에 무언가 글을 쓰는데 이것으로 예수가 글을 아는 사람이라는 유일한 증거가 된다.

예수는 시간을 벌며 바리세인이 두려워 할 무엇인가를 썼을 것이다.

율법을 초월하는 인간의 양심에 호소하는 예수님

예수가 쓴 무엇인가를 보고 늙은 사람부터 뒤로 빠진다.

여자에게 재범하지 말라하는 걸 보면 매춘부가 아닐까 추측

아름다운 장면이며 드라마틱한 장면.

우리가 스스로 자신을 되돌아 보도록 하는 장면

56강> 나는 세상의 빛

나이 많은 사람 먼저 사라진다. 인간은 늙어 갈수록 죄가 쌓인다는 뜻.

예수는 여인과의 일화에서도 일체 인간적인 과시가 없다.

얼마나 훌륭한가!!

하나님이 뜻하는 모든 것은 인간의 사특한 감정 개입이 있어서는 안된다. 지상의 공과 논해서는 안 된다.

역사상 유대인의 고난과 우리의 식민지 시대는 암흑에 비견될 만하다. 생명의 빛의 세계로 걸어가고 있다. 북한의 동포들도 어떤 측면에서는 어둠 속에 있는 면이 있는 바 같이 빛으로 걸어가 남북통일이 이루어 복음을 실현했으면 한다.

논리적으로 당대 유대 법을 다 통달하고 있다.

예수와 하나님  두사람 (함께 존재한다는 측면에서)의 증언은 참되다.

요한복음은 긴장감 잘 표현.

예수의 삶이 단지 그분뿐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대면하는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




예수님이 말하는 죽음과 부활은 평범한 부모님이 자식들에게 권하는 조언과도 일맥상통한다.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그 자식들이 부모가 되었을 때야만 부모의 심정을 이해하는 일반적인 측면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서는 일상의 삶에 의미가 있다.


57강>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초막절 축제는 계속되고 있다. 예수의 논리에 바리세인들이 동요하며 설득(회심)되어 가고 있다.

31절 재차 예수님 말씀이 거한다. 그러면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

과학에 거하면 과학자

석가모니 말씀에 거하면 불교도

32절 ~and the truth will make you(목적어) free(목적보어)  5형식 문장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기독대학 교정에서 볼 수 있고 교회 행사, 기독교 학교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희랍인 그리스에서는 "진리(알레테이아)"는 순수, 성실, 거짓이 없는, 진실한 이라는 형용사다.

도덕적 덕성의 의미는 원래 없었다.

다드(Doodd)라는 신학자가 이것은 플라톤이즘이라고 지적

오감에 이해 인식할 수있는 것은 시간의 변화에 따라 변한다.깨지거나 삭거나 사라진다.

그래서 그것은 환상(phantasy)라고 생각했고, 실재(reality)하지 않는 것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오감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이라도 실재한다고 했으나 파르메르데스는 개체적 사물(indivisuality things)은 실존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감각을 초월하는 그 어떤 것이 영원히 실재하는 것이라고 생각. 영적인 것

감각의 대상이 대체로 육체적이고,  과학 역시 이것을 탐구하는 것이다.

진리는 감각의 대상을 넘어서는 영적인 진리를 의미한다.

예지계

관념 idea

영혼

실재

하늘

감각계

개별사물

육체

허상


플라톤니즘의 과도한 틀에서 벗어나자는 젊은 기독인 운동이 있다.

육체에서 죄가 온다.

불교적 맥락과 같다.육체의 탐욕과 집착에서 벗어 날 때 해탈, 자유

free <----->속박

불교에서 열반을 논하면서 유여有餘 열반/무여無餘열반을 이야기한다.

육체가 있고 없냐의 기준이다.

영욕이원론, 플라토이즘적 이원론의 이론적 도용이 아닌가?

도올샘은 과학적 이론을 깨달아도 자유로운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시 유대인은 육욕적 세계에 집착하였고, 육체적 속박이 팽배하였다.이러한 무질서한 사회상에 대한 제재가 초대교회에서 필요한 시기였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요한복음에 반영되었다.

사도바울 로마인서 8장 10절을 보면 플라토니즘을 따랐다.

유대인은 율법의 멍애에 빠지다.

당시 랍비 누후나 벤 하 카나(Nehunya b. ha-Kanah, AD70~130)는 당시 요한복음 저술 당시 살았던 사람이다.그는 율법의 멍에 즉, 율법을 엄격하게 준수할 것을 강조하였다.

요한과 예수는 율법의 멍애를 벗어 나서 영의 진실을 강조하여 당시로는 꽤 강렬한 메시지를 주장하였다.

율법을 부정하고 율법에 대해 무감각적으로 따른다면 길들여진 바보가 된다.

최소한 자유롭다는 것은 율법의 멍애로부터 자유로워 진다는 것이다.


58강> 죄의 종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이전 강의 내용과 다른 일반인의 삶 속에서 자유로운 해석 환영

자유는 自由 유는 말미암을 유

free from ? free는 형용사이고 명사형이 Freedom인데 이는 절대화 할 수는 있는 것은 아니다.

자유인의 반대 개념은 종이다.

33절에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유대인은 에굽,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시리아, 로마, 고대 희랍 무수히 많은 노예 상태 있었다.

정신적 자부심만 강조하고,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혈통적 자부심으로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

아브라함 자손이라면 하나님을 제대로 믿어야 하고 자신 앞 예수님의 말씀에 경청해야 한다.

아브라함 후손이라는 것이 할례를 했기 때문에 인정된다는 물리적 자부심 경계

사도 바울은 로마인서에서 대저 표면적 유대인을 부정하였다. 표면적 유대인의 할례가 아니라 이념적 마음의 할례로 영적으로 거듭나야 진짜 할례이다.

거짓된 자부심을 비판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영적으로 거듭나기를 애처롭게 초기 기독교 멤버였던 유대인에게 주장하지만 요한복음의 저자는 예수님의 죽음에 유대인이 개입한 정황이 객관화되었기에 사도 바울만큼 ( 유대인에게)  애착이 없다.

죄를 범하는 자 죄의 종이다.

아브라함의 물리적 자손이라는 근거로 자신(예수)을 죽이려 하는 것을 문제 삼고 있다.

왜 내 말씀이 너희 안에 있을 여지가 없느냐고 질책


너희가 추종하는 아브라함은 100세가 넘어 얻은 아들도 하나님이 바치라면 그에 따르는 순종을 보였는데 너희는 그렇지 않고 오히려 나를 죽이려 하고 있다.

육신의 욕망에 따른다면  종교지도자는 존경받지 못한다.

대형교회는 성장 과정에서 영적 능력이 있었지만, 대형화하며 물질적 욕망과 조직의 이해와 유지 등 세속적인 일에 탐닉하고 있다.

육체의 물욕적 세계에 탐닉한다면 영원히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다.

fornication 붕가붕가


59강> 비판과 비난

진리라는 것은 자유의 반대어이고 율법의 멍애로부터의 자유

진리는 (육제를  좇지 않고 ) 영, 진리, 하늘을 인식한다는 것

그렇다고 율법 폐지론자는 아니다.

기독교인 말하는 율법이란 법조문이나 토라, 모세 5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율법, 사랑의 율법을 의미한다.

자유롭다는 것은 진실로 내가 행하여야 할 바를 행할 때를 의미하며, 율법이라는 것은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도리가 마땅하다.

그렇다고 율법을 부정하거나 방종을 의미하지 않는다.

규율을 지키되 나를 자유롭게 한다. 나를 지키며 구속하는 것

성서에는 어려운 말이 하나도 없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내면적 귀조차 갖지 못했다.

내면적인 기독교인이 중요하지 외면적인 기독교인이 중요하지  않다.


"악마의 욕망"에서 악마는 구체제를 의미

육체, 욕망에 대한 유대인의 나이브한 신화에 대해 도올샘은 다른 견해

헬리니즘 초대 교회의 "언어"라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성경적 오해 하지 말아야.

육체적 욕망이 우리의 영혼을 구속한다는 대체적 의미 

당시 육체적 죄악을 규제하는 일이 절박했었다.

"시대적 언어의 산물"

실락원, 복각원의 역사는 중동지역 신화의 전형, 신화적 세계관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를 터득해야지 성서 문자를 단순히 외우는 것은 의미 없다.

예수님이 갈리리 사람인데 당시 가장 천시하던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비난한다.

공적 비판이 없고 비반만 있다.

귀신, 신들린 사람 미친 사람 취급한다.

요한복음 저자는 성서에서 유일하게 예수님을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비하하는 전승을 기록하여 굉장한 드라마적 요소 삽입

진리만이 심판자 될 것이다. 나는 너희를 심판하지 않은 것이다.

벌교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순사를 폭행하는 일이 많아 벌교 가서 주먹 쓰지 말라는 와전된 이야기가 퍼짐.

60강 대단원> 눈뜬 자와 눈먼 자

원래는 120강 정도가 적당하다고 기획했다가  기자회견에서는 100강으로 하셨다가 60강으로 마감

나머지는 책을 읽으며 공부

예수의 나이를 50대로 표현, 요한복음 저자는 나이가 많은 것으로 추정한 흔적

유대인 사회에 팽배한 장자에 대한 권위 표현

단순한 나이 차이로 윽박지르려는 것을 표현, 우리 사회와 유사하다.

영어에 유대인 엄마(Jewish mother)라는 표현이 있는데 극성스러운 어머니의 표현인데 우리나라 어머니들과 유사하다. 한국인을 일컬어 동양의 유대인이라고도 하는데 우리는 굉장히 격하고 감정적인 성품이다.

마광수 교수님은 한국인의 보편적 기질이 '촌티와 심통' 이라고 하셨다.

9장>

장애인을 우리보다 못한 사람이라는 선입견, 죗값을 받는 것으로 오해하던 시대가 있었다.

예수는 이를 전면 부정하였고 이는 곧 인간 평등사상을 밝힌 것이다.

죄 때문이 아니라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역사하심을 보이기 위함이다.

인간 평등의 모습을 명료하게 보임으로 기독교의 위대한 모습을 보여준다.

문헌 속에 21세기적 인간의 이상 구현하고 있다.

불교는 지적인 담론이 많아 이해하기 어렵다. 

기독교는 쉬운 언어로 보여 준다.


"As long as I am in the world, I am the light of the world."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예수가 침을 뱉고 진흙을 이긴 것은 당시 풍속을 표현한 것임, 더 깊은 상징성이 있다.

실로암; 보냄을 받았다는 뜻

I'm the man. 굉장히 구체적인 상황 표현

안식일에 눈을 뜬 사건은 안식일을 위반한 사건

이적도 율법을 위반한 사건이므로 죽임을 당할 상황에 부닥치다.

하늘로부터 온 사람인 측면과 안식일을 위반한 사람이 하늘로부터 왔는가에 대한 의심이 상존한다.

인자人者라는 1인칭 표현을 쓴다.

이번 이적은 눈을 떴지만,  세상의 진리를 보지 못하는 소경임을 드러내었다.

자신은 소경이 아니라는 자만 드러낸다.

===========================================================

2007년 3월 이전 영어 공부 중에 후배의 권유로 하루 1강씩 들으려고 

시작하였는데 총 60강 2021년 1월14일에 마감합니다.

13년~14년 지났는데 강의를 들으며 준비하던 내 미래상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있고, 
당시에 대통령은 감옥에 갔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이제는 정치도 경제도 아닌  
또다른 코로나19라는 질병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10년 후에는 저는 어떻게 변해있을까요?

우리의 미래는 가만히 있어도 오지만 궁금합니다.

좋은 마음으로 만드는 오늘의 이 순간이 좋은 미래를 만든다는 믿음으로 

순간순간 온 마음을 담아 봅니다.

강의해 주신 김용옥 선생님께 

요한복음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기사에 보면 100회 강의를 기획했고, 자료조사를 위해 아마존에서 1만 달러 정도 책을 샀다고 한다.

유튜브에 강의를 올려 주신 분께도 감사드립니다.

No comments:

영화 < 이누가미 일족 (1976) > -옛날 영화인데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의 홍보 메일을 받아 확인해 보니 재팬파운데이션 무비페스티벌을 상암동 영상자료원에서 하고 있었다. 👉 https://www.koreafilm.or.kr/cinematheque/programs/PI_01578 예약을 못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