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April 29, 2018

임진각에서 맞이한 2018남북정상회담Imjingak at 2018 Inter-Korean Summit

역사적인 날 해가 뜬다.

YTN 뉴스 부스  고소공포증 덜덜,,


어 추워 덜덜 아침엔 파커를...
멀리 자유의 다리가 보인다.



일본의 진보매체라 할 아사히AsahiTV  인터뷰,촬영감독 복장과 헤어가 특이하다



임창열 경기지사는 지금 어디에...??
뉴스중 자유의 다리가 보이도록 배치
채널A

한국전쟁으로 끊어진 철도 위에서 무언가 낑낑 대는 아가씨


















이중에 누군가는 훗날 임종석이 되고 임수경이 되리라

War is over


대학때 임진각에 방문하려던 학생회단체가 "우리의 소원"을 부르러 가려는 목적때문에 서울역앞에서 전경에 강제해산당하고 군화발로 옆구리 걷어 차이고 경찰 조서 쓰던 옛일이 아스라이 스쳐간다.이제 저기 앉아있는 아들,딸을 둔 아버지가 되었겠다,,,,

서울 구석구석-종로에 선 전봉준 동상 Statue of Jeon Bongjun( leader of the Donghak Peasant Revolution in1894)






그가 꿈꾸던 세상이 이루어졌을까?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종각앞에서는 외국인 노동자 집회가 한창이다.

사람이 하늘이라는 생각에 외국인 노동자도 예외일 수 없다.

통일이 되고 남북통합국가에서 아니 그 이전에라도 화폐에 등장 할 날을 꿈꿔본다.

우리는 개돼지가 아니다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좀 더 나은 세상, 사람이 사람답게 대접받기 위해 일어선 높은 기상이 대대손손 전해지리라


전봉준의 재판에 관한 이기환 기고  경향신문 관련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0260957001&code=960100

Sunday, April 22, 2018

반 고흐Vincent -고흐에 관한 따뜻한 마음씨/바바라 스톡Barbara Stok 지음;이예원 옮김 미메시스 출판사

소박한 고흐의 일상을 잘 표현하였다.

격한 성격,불안정한 정서,생활고,,

단순한 그림체마저 그의 심성을 잘표현했다 할 수있다.

그의 조국이 네덜란드고 일본과 교역하면서  접한 도자기,공예품,우키요에을 통해 일본풍에 눈뜨고 파리에 와서 인상주의 화풍이 일본화풍을 흡수한 것이라 본격적으로  동서문화의 융화에 나름 기여한 부분이 생략되어 아쉽다.

<유혹하는 그림,우키요에,이연식,아트북스,2009>에서 언급

추측컨대 우키요에를 먼저 접했을 미와자키 하야오가 이후 인상파 그림에 심취한것도 일종의 유사성이라 생각한다.



강헌의 <명리-심화편,돌베게,2016,151쪽>을 보면 그의 원국이 병화인데 대운상 기구신인 수관성이 30년간 따라다면 결룩 못견디고 정신도 불안해지고 불운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고 언급한다.

박창범의 <하늘에 새긴 우리역사,김영사,2002,93쪽>에 보면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작품에서 나타난 천문현상은 그의 불안한 정신상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함안 도항리 도동 고인돌에 새겨진 동심원 암각화처럼 실제 일어난 현상으로 주장한다.

영화 <러빙 빈센트>에서는 그의 편지를 근거로 사람이 죽으면 별까지 걸어서 간다는 표현을 썼는데 죽음과 영원한 삶,별,영혼은 동서양이 같이 공유하는 정서인 듯하다.

Monday, April 16, 2018

영국사寧國士와 도봉서원 전 Yeongguk-sa Temple and Dobong-seowon Confuncian Academy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올림픽? 전에 덜덜 떨며 겨울에 와본 기억이 난다.

그땐 허허벌판에 아무것도 없었고 삼촌이 몇년을 준비한게 고작 이거냐고 분통을 터뜨린 추억

몇몇 조각상과 평화의 문이 아직도 그대로 서있다.



 입장료 무료다

 당나라 작품,생생하게 살아 있는 듯






금강저를 볼때 마다 일본 만화영화 그랜다이저의 무기가 떠오른다.원래 인도 무기모양을 본든 것이라는 설명이 있다.우리도 박물관이나 역사자료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으면 그랜다이저보다 먼저 만화영화에 활용되도록 영감을 주었을 텐데 안타깝다.
불교 밀교의 영향이 아직도 일본에는 민간신앙과 함께 남아있어 전승되고 있는데 왕오천축국전을 쓴 혜초가 권위자였으나 귀국하지 않고 고려말 원나라 영향으로 궁중에서 번성했으나 조선개국으로 단절된 듯하다.

동서남북중앙에 신이 하나씩 있어 각 방위를 지키게 한 것은  동양 명리학에서 오행과 비슷한게 아닌가 싶다.

태산
화산
형산
항산
중앙
숭산
오악(다섯산)
구망
소호 아들1
욕수
소호 아들2
축융
현명
소호 아들3
후토
고려불화초록
오방신(다섯방위신)
통일신라 보천왕자 오대산사상 초록
태호 복희
소호 금천
동이족
염제 신농
전욱 고양
황제 헌원
오제(다섯황제)

맹자<이루>에 순임금이 동이족으로 밝혀 동이족의 고유토속사상이 전래된것

<고려불화 실크로드를 품다/김영재/운주사/2004/79쪽>참고



 하단부분에 을유乙酉라고 씌여있다.



 옆면 조각이 섬세하다.





위 교본을 돌에다 일치하게 새겼다.중국(1109년경)에는 있는데 
우리나라는 최초로 돌에 새긴 천자문(석각천자문)이라 한다.

治자 아래변이 없는 것은 고려왕 본 이름 중 치자가 들어가는 사람을 피하기 위해 그랬을 것으로 추정되어 제작연대가 추정된다.즉 이름에 치治자가 들어가는 고려왕은 성종(재위981~997)으로 그이후로(981년) 제작연대가 추정된다.


 원본은 없고 탁본만 있다.
 조선초기 세종의 둘째형인 효령대군의 후원으로 크게 부흥한 도봉산 영국사 절터에 유교서원이 들어서 당대주도권을 쥔  정치세력에 따라  동일한 장소에 불교/유교 전환이 나타나니 흥미롭다.지금은 교회가 자리바꿈을 하고 있다.


서초동 청권사에 있는 효령대군의 제사를 지내는 모련재
 왕자가 특이 하다.
 뾰족한 탑이 예술이다.

 당시의 고려인의 얼굴 모습을 상상 할 수 있다.



 풍납토성
 몽촌토성터
 풍납토성을 이렇게 모형으로 만들어 놓으니 현실감이 온다.

곳곳의 영상자료도 백제위주로 보여줘 서울이 한성백제가 먼저 몇백년간 삶의 터전을 잡았던 곳이라는 것이 느껴진다.서울= 백제땅







아이들을 보면 행복하다

영화 < 이누가미 일족 (1976) > -옛날 영화인데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

 일본대사관의 홍보 메일을 받아 확인해 보니 상암동 영상자료원에서 하고 있었다. 예약을 못 하고 현장 발권했는데 예약만 하고 오지 않으신 분들이 많아서 빈자리가 많았다. 카토카와회사의 상징인 봉황이 나오는데 고구려 봉황과 비슷하다. 1950년 요쿄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