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하면 간디,불교,... 머 그런거 인구가 많고 거지도 많고,요가,라르니쉬,홍신자,헐리우드보다 많은 영화를 자체제작 자체소비한다는 영화의 나라...,한글의 기원에 나타난 인도문자,타지 마할,미국 실리콘 밸리의 1/4을 차지하는 IT파워,BBC를 통해 간간히 등장하는 정도
식민지 지배를 받았어도 나름대로 지배자와 우리보다 상생(?)하는 나라..
김동길교수님는 인도에 간디가 온전한 독립운동을 할 수있었던게 주인이었던 영국의 높은 품격이었다고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인도자체의 웅대한 숨결에 지배자인 영국이 도저히 자기들이 감당하기에 너무나 큰문명에 탄복하여, 스스로 알아서 긴게 아닌가 싶다.
영국이 인도를 파트너로 간주하며 자기나라에 인도유학생유치 및 상품수출 시장으로 중요성을 인식하여 생전 서로 불화했던 영국의회 앞 처칠동상옆에 간디동상을 세웠다.
독일,영국과 일본과의 전후대응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에 하나의 좋은 모델이다.
스티브잡스,비틀즈 등이 인도로 가고 <벤자민 버튼의 이상한 이야기>에도 인도로 간 모습이 결국 인도의 웅대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김용옥샘의 <나는 불교를 이렇게 본다>에서 잠깐 언급된 아슈라마Asrama란 인생4단계구분 설명도 깊은 인상을 준다.
인도라는 어원이 신두(=인더스강)을 흰두(페르시아,이란)과 인디아(그리스인)에 기원하다.
우선 인종적으로 백인 원조인 아리아인과 드라비다족 등 원주민이 있고 여기서 유목민과 농경민족의 충돌 ,혼합,이후 훈족의 침입, 이슬람문명,영국의 침략 등 인도는 긴긴 세월동안 침략자가 들어와 인도에 동화되어 버리며 인도 자체는 더욱 풍부하고 팽창해왔다는 것에 인도의 위대함이 있다.
인도의 악습인 카스트제도는 침략정복민(브라만-사제,크샤트리아-무사,왕족)와 토작피정복민(바이샤,수드라)과의 관계를 만들어냈으며 이들의 구조에 종교가 어떻게 해법을 내놓는가로 흥망성쇠를 거듭한다.
긴 침략과 혼합,균형의 역사속에 영국의 등장은 인도를 과학적으로 업그레이드 시키는 하나의 과정에 불과했다.인도가 성장하는 과정에 촉매제 역할을 하고 찌그러버렸다.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게 된 과정에 영국의 치밀함과 야비함이, 전근대 인도의 허술함이 어이없게 등장한다.
아리아인이 인도로 밀고 들어올때 철기무기와 말이 끄는 전차부대에 발렸듯이, 인도는 영국에 속수무책으로 밀리지만 영국이 2차 대전으로 힘이 빠지자 독립보장으로 담판을 하는건 멀리보기에 능한 인도인의 저력을 보여준다.
영국이 이이제이以夷制夷정책으로 인도의 다양한 인종과 종교에 불화를 추구한 점도 제국주의의 비열한 이빨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인도하면 떠오르는 불교도 인도에서는 쇠락해 흰두교가 대세라니 믿어지지 않는다.
가깝지 않기에 우리는 깔보는 무관심으로 인도를 말하지만 인도는 우리한테 관심도 없고, 안중에 없이 세상의 중심으로 팽창중이다.
팔만대장경이 국보요,민족의 자긍심이고,문화민족의 자랑이고 구텐베르크보다 몇백년앞선 금속활자 어쩌구는 많이 들어왔는데...
구체적으로 팔만대장경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가끔 도서관에서 관련서적을 보면 어려운 한자에 기가 질려 읽다가 그치기를 여러번하였다.
그러던중 2011년 석가탄신일 전 라디오방송을 듣다가 오윤희님의 책을 만나게 되다. 저자에 대한 선입관
책을 다 읽을때까지 문체의 특징과 선입견이 씌여 신촌대 철학과를 나온 비구니 스님인줄 알았다..<매트릭스,사이버스페이스,그리고 선>을 읽으면서 확고한 편견이 생겼다.
다 읽고 나서 인터넷 이미지 검색을 통해 남성분임을 알다.
그것도 아주 나이가 많으신 미남 할아버지...
대장경이란 무엇인가?
석가모니가 설법한 걸 수제자 아난이 기억해 암송하고 몇백년을 거쳐 나뭇잎에 적고
두루마리에 적어 광주리등에 담아놓은것..
플러스 당시 인도에 있던 타종교와의 공개토론내용
토론에서 힌두교에세 캐발린 기록(금칠십론金七十論)
그리스철학과 불교철학의 토론집
삼장법사가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
플러스 실크로드를 다니며 수집한 각종 서적내용
플러스 해설서,,,,교정
고로 대장경은 당시 12세기 인도,중국,한국,일본,실크로드의 역사가 총망라 기록되어있는
동아시아 지식을 집대성한것이기 때문이다. 의천은 왜 위대한가?
아이폰이후 갤럭시3가 안드로이드폰의 총아가 되었듯이 고려대장경은 북송과 요나라 대장경을 참조했지만 나름대로 여러 대장경중 독보적이고 차별화된 고려인의 냄새가 나는 고려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