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가야 <남한산성> 그리고 야마시 아이잔 <도요토미 히데요시.21세기북스>



임진왜란은 1592년 4월13일부터 시작된 전쟁이다.

2014년 4월16일 진도해안앞바다 세월호 여객선 침몰사고와 비슷한 시점에 벌어진 일이다.



음력날짜인지 양력인지 모르겠으나 두여달의 계절차는 400여년의 시간차에서 용인될수 있는 오차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우리 정부의 동일성이 있다.



속수무책!!우왕좌왕...주먹구구

분노,당혹,허탈...무능 무책임

IT강국, 세계최고반도체, 스마트폰, 위성발사, 조선강국, 대조영함,이지스 구축함인 세종대왕함 어쩌구 하더니...

1590억짜리 해난구조용  수중무인탐지기 장착
통영함  정작 필요할땐 무용지물


우리는 아직도 기본적인 어린 생명하나 국가가 구해주지 못하는 시궁창에서 살고있다는 것이다...

그 400여년전의 지옥세계를 가장 적라나하게 충격적인 화면으로 표현한 작품이
권가야의 <남한산성>이다.

책을 펼치는 순간 숨이 턱막힐 장면장면에 충격을 금할수 없었다.

너무 자극적인적인 모습만 극적화면으로 묘사한 듯하지만 과감한생략과 함께 작가가 고민했을 많은 부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순신영웅신화에 가려 잊혀진 서민의 처절했던 삶을 그 울분...분노..상처를

너무도 잘표현했다.

그리고 희망과 치유도...

정여립사건과 함께 전쟁수습과정에서 보여준 정치와 관료의  광기어린 집착이 오늘날의 선거전 빨갱이 사냥, 조작, 선거부정과 하등 다를바 없으니 개탄을 금할수 없다.

<일본을 유혹한 남자 도요토마 히데요시>는 일본의 입장에서 임진왜란을 기록한 것이라 흥미를 끈다.

400여년전의 사건이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건 그 당시 충격과 주변3국에 끼친 막대한 영향때문이리라..

작가 야마지 아이잔은 1917년 사망하였고, 과거사람의 행적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충분한 반면교사가 된다는 신념하에 많은 연구를 하였고, 1996년 일본 이와나미문고라는
일본1등출판사에 발간되었다하니 일본인이 나름 중시하며 널리 읽혔던 책이라 평가된다.

우리와 달리 일본인들은 풍신수길을 맨주먹으로 일어난 영웅이라고 높게 평가한다는 걸
대충은 안다.

그의 삶 자체가 극적이었고, 나름대로 비범한 처세술로 혼란한 일본전국시대를 통일시키는데 크게 기여한바 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조선침략의 전후사정이다.

책에서는 분열후 통일된 국가는 역사적으로 주변국을 침략한다는 논리다.

물이 높은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당연하다는 논리다.

나폴레옹해전에서 고전했다면서, 임진왜란 당시 해전패전을 나폴레옹에 빗대며 오히려 러일전쟁승리로 이끌 방비였다고  긍정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나폴레옹=히데요시?/프랑스대륙국가=일본 해양국가,섬?/1592년 임진패전이 1904년 러일전쟁에 대비하는계기가 되었다?400년 시차의 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있을까?)

해전의 패전을 전라도 지역이 잦은 왜구침략으로 내성이 생긴 것으로 평가한 것도
흥미롭다.

자주 맞다보면 반격한 기지가 생긴다나..

출항전 날씨문제로 출격시기가 조율되었고, 조선의 강북은 험난하지만 강남은 평야가 많아 흡사 일본의 교토지역과 흡사하다고 기록한것

개전초 연승가도중 조선군의 모략이 아닐까 하고 서로 의견충돌이 있었다는 후일담

명군개입. 군수물자부족등을 기록했지만 의병문제는 안중에 없었다는것

오랜 평화로 조선의 방비가 헤이한 반면 잦은 전쟁경험으로 일본이 전투에서 유리했다는점

선조가 정사는 안보고 안일한 자세로 있을때 조선을 귀족국가로 정의하고, 평민출신 히데요시가 통일한 평민출신들이 많은 일본제후들의 내전생존감각에서 전쟁은 이미 결판났다고 평가한점

조선을 귀족국가/ 일본은 평민국가로 대비시켜 일본을 근대국가처럼 자뻑한대서부터 오류가 나타난다.

 조선=귀족국가=후진/일본=평민국가=선진,근대화?? 천왕은??

아시아최초로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나라가 어디인가?

아직도 왕이 있는 나라가 어디인가?

일본의 자뻑은 어디선가 읽은 일본인 글에서도 나타난다.

일본이 싹싹한것은 전후 상업으로 부흥하기 위해 생존으로 하는것이지 본성을 그렇지 않고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것은 절대오해라는 것

고대로부터 일본은 한반도로부터 어떤 위협도 느껴본적이 없다.

3국시대나 고려시대의  여몽 연합군의 일본침략은 뒤에 있는 중국대륙세력에 대한 두려움이지 우리는 늘 껌이었다.

선조를 이연이라고 적으며 허수아비 취급한다.

언젠가 박물관에서 선조의 친필을 본적이 있는데 문약한 찌질이의 필체로 보기에는 상사할 수 없는 압도감이 있었다. 일국의 정점인 국왕이 그렇게 허수아비였을까?

당시일본은 포투투칼 선교사나 왜구 부산쪽 일본이 거주지? 왜관을 통해 세계정세나 우리국정를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고 방비가 허술함을 알고 침략하였다고 한다.

12.12사태의 혼란중 전두환쿠데타를 알아챈것도 주한일본대사관이고 지금 진도여객선침몰사고로 우리의 대처를 비웃을 놈들도 그들이다.

방비가 허술하면 또 다시 헛된 꿈을 꿀 것이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정부에 의지해서  믿고 신뢰했다가는 서글픈 상처만 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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