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anuary 25, 2024

책 리뷰- 도올 김용옥의 < 동경 대전 1, 2/통나무 (2021)>- 동학농민혁명은 실패가 아닌 혁명의 시작

동경대전東經大全이란 "동학東의 경전經이 크게 大갖추어졌다全."라는 뜻이다.-



 아마도 내가 "사람이 하늘이다"라는 글귀에 집착하게 된 계기는 고등학생 때 당시 대학생이던 형의 책중 <찢겨진 산하>를 읽으면서인 듯하다. 친구들과 시국 얘기를 할 때 겉멋 들어 보이려고 이것저것 대자보 이야기며 대학생 혀들의 이야기를 자기주장처럼 영웅담처럼 하던 때였다.

당시 6.29 선언 직전 6.10 항쟁의 분위기에 기말고사를 준비하며 연세대 앞 텅 빈 거리를 터덜터널 걸어 오던 일이 많던 때였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을 몰래 읽고 낮잠을 자다가 악몽을 꾸고 계엄군이 창검으로 지하도에 쭉 서있는 잔상이 지금도 연세대 앞 지하도를 걸을 때는 떠오르곤 했었다. 


그러다 아마도 대학에 들어가 신동엽 시인의 <금강>을 읽으며, 교양수업으로 한국사를 들으며 교수님께 질문을 통해 동학이 과거완료가 아닌 현대사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3.1운동과 4.19로 이어짐을 
                                                   노래한 신동엽 시인의 <금강>


이후 김지하의 <사상기행>책을 읽다가 다시 동학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거기서 김일부의 정역이나 증산도에 대한 서술이 나오는데 아마도 도올샘이 <정역>에 대한 책도 곧 내실 듯하여 그때 언급하도록 하겠다.

그런 일련의 역사 흐름이 결국은 1894년 농민 봉기의 연장선상이고 이제 1세기반이 지나고 있다. 3세기가 지나면 완성될 것이라는 예언을 도올 김용옥샘은 주장하신다.


                                


최제우 선생은 시호 時乎하며 "드디어 때가 되었다"는 칼노래(검결)를 부르며 칼(혁명)춤을 추던 그 첫 호흡에서 300년 후를 내다보았을까? 아마도 최진립 장군의 7대손으로 무예에 통달한 최제우는 무예보도통지나 관련 무예 서적을 탐독했을 듯하고("검결"이란 용어 차용에 대한 개인 생각) 장사를 위해 전국을 떠돌며 아마도 남대문시장에서 김정호나 최한기를 지나치지 않았을까? 작가는 상상한다. 또한 퇴계 이황의 학풍을 계승한 근암 최호의 아들로 수운 최제우 선생은 당시 문무를 통달한 인물로 설득력 있게 묘사한다.





읽다가 놀란 것은 도올샘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동경대전> 원본을 검토하시면서 지도고문헌 전문가 이기봉샘과 조우한 기록이다. 이기봉샘이 도올서원 1림 출신이라고 한다. 이기봉샘은 개인적으로 인사동 무우수아카데미에서 강의도 들은 바있어 기억이 난다.👉https://dankunjosun.blogspot.com/2023/05/blog-post_20.html

그 뒤로 최제우 선생의 자취를 찾아 돌아다닌 적도 있고 종로 천도교중앙대교당을 찾아 구경하다. 동덕여대의 "동덕 同德"이 천도교의 형제님 자매님 같은 용어라는 것을 처음 천도교 관계자에게 들었다. 3.1운동 자금을 모으기 위해 천도교중앙대교당 건립 기금모금으로 일제의 감시를 피한 일화도 설명해 주셨다.


☝전주 동학혁명기념관
☝경주 용담정, 대부분의 기도터가 물이 흐른다. 겨울에는 춥지 않고 식량(?)을 대체할 것이 물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최제우 선생님도 이 물을 마시지 않았을까?

☝경주에 있는 수운 최제우 생가



👆천도교중앙대교당

☝ <동경대전>에서 윤석산 교수님과의 토론을 언급하고 있다.

수운 최제우 선생이 후계자를 임명한 일화도 특이하다. 당시 일자무식에 천민인 최시형 선생에게 신분을 뛰어넘어 2대 교주로 임명한 것에서 평등사상을 직접 실현하셨다. 수운 선생은 여노비를 해방시켜 며느리로 삼고, 수양딸로 삼은 분이시다.

수운은 용담의 물과 구름이며 사해 四海에 동학을 포교하라는 뜻으로 해월海月(바다에 뜬 달)이라고 호를 지어주셨다. 이 글을 읽으며 큰 바다에 파도 소리를 안고 덩실 뜬 달이 떠올랐다.

☝국립중앙박물관 실감콘텐츠  "금강산에 오르다"

절명에 이른 최제우 선생이 남긴 시구 또한 미래를 내다본 종교인의 풍모가 느껴진다.

 "물위에 가득 등불이 밝았으니 

도무지 어두운 틈이 조금도 없다.

물위에 진 집을 받치고 있는 기둥들은

말라 비틀어진 것처럼 보여도

만세무궁한 힘이 남아 있다."

해월샘은 동경대전을 활자화하여 스승의 뜻을 세상에 전하고 35년의 수배생활(도바리꾼)을 통해 동학교도를 전국에 넘쳐나게 하셨다. 아마도 1차 동학 봉기에 소극적인 해월이 2차 동학봉기에는 "천명"이라고 말하며 거사를 일으킨 것은 이필제가 주도한 영해부교조신원운동(1871)때문이 아닌가 싶다.

☝체포된 뒤 서소문감옥에서 지금 종각역 1번 출구 제일은행본점에 있는 고등재판소에 재판을 받으러 다니며 목에 쓴 칼의 무게에 모전교에 쓰러져 쉬어야 했다. <보국안민 발길로 서울을 걷다/이동초/모시는사람들/2017>





1894년 동학농민혁명 혁명의 시작, 당시 소년 접주 중 김구 선생이 계셨다. 안중근 의사와 인연이 있었는데 당시 안 의사는 동학에 대한 신분적 관점에서 난으로 부정적으로 보셨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안 의사는 서양 신부들의 인종적 차별에 분노하여 거사를 일으킨다.

김개남의 죽음에 관여한 의병장 임병찬 역시 신분제의 편견이 있었음을 보여 준다.

안중근과 임병찬을 보며 종교개혁을 주장한 루터가 농민반란에 극대노하여 농민진압을 주장한 모습이 겹쳐보인다.








☝남원 광한루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1911년 보성전문, 동덕학원 천도교 인수 민족교육 매진, 인재 양성

1919년 3.1 운동 (천도교 주도)


👆군산 3.1운동 100주년 기념관 

동학군은 이쪽으로 전주성로 진입한다.




다가교 위의 일제석등

뒤에 전주 신흥고에서 3.1운동을 주도했다. 아마도 동학군은 이 남천을 따라 전주성으로 진입하지 않았을까?

1926년 6.10 운동( 천도교 주도, 중앙고보 학생이던 이현상은 이후 사회주의 독립운동을 주도하다 이후 6.25 당시 남부군 사령관이 된다. )




☝ 종각에 있는 전봉준 동상,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 하였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은 실패가 아니다.

그건 바로 혁명의 시작이고 

300년 후에 완성될 것이다.

2권 맨뒤의 동학연표(1779~2021)은 어는 연표보다 정성과 풍부한 자료를 담고 있다. 백범일지를 포함 일본군(500m)과 동학군의 화승총(50m) 비거리가 10배라는 등 여러 자료를 집대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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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남태령에서 농민시위대가 트랙터를 몰고 넘을 때 이곳이 바로 우금치라고 주장하는 트위터 글을 읽고 다시 그린 그림





Wednesday, January 17, 2024

영화 < 플라워 킬링 문 Killers of The Flower Moon, (2023) >-백인의 인디언 연쇄살인사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출연한다고 하여 유명세를 떨쳤지만 극장 개봉 당시 순위도 밀리고 애플 TV에서 나중에 나온다 하니 극장에서 보지 않았다. 같은 나폴레옹은 극장에서 봤는데 아마도 전쟁씬을 극장에서 봐야 할 듯해서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보자마자 기막힌 반전 연출로 누구 작품일까 찾게 되고 로버트 디니로가 나오니 뭐지 뭐지 하면서 보다. 3시간을 넘는 런닝타임으로 졸다 자다 다음 날 이어서 보다해서 다 보았다. 극장에서 봤으면 아마도 잤을 듯하다. 이후 영화 내용을 바로 알기 위해 여기저기 검색도 하고 유튜브도 보고 댓글도 읽으면서 하나하나 영화 내용을 알아 가게 되었다.

배경은 미국 오클라호마지역인데 쫓겨난 인디언의 거주지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인디언 거부가 등장하고 돈을 뺏으러 백인들의 연쇄살인이 자행된다. 오클라호마가 붉은okla 사람humma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듯이 원래 인디언 거주지다. 이 사건이후 인디언 부족외의 사람에게 석유 매장지 상속을 금지하는 법이 제정되었다.


☝영화에서 보면 코요테가 나오고 
풀이 자라면서 보름달 아래 
광합성을 못 받은 작은 꽃들이 죽는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바로 백인 등쌀에 죽어가는 아메리카 원주민 오세이지족을 
상징하는 내용이 영화 제목이다.


우선 끔찍한 연쇄살인이 실화이다. 주인공도 실명이다. "플라워 킬링 문"으로 개봉했는데 왜 이렇게 제목을 바꿔 상영했을까 싶었다. 인디언 언어를 사용해 뭔가 이질감을 주고 이방인 같은 미국 내 다른 세계이미지를 준다. 감독의 연출 의도이겠지만 인디언이 기품이 있다. 그리고 살인범이 친근하고 부드럽다.

잔혹하고 인정사정없는 비열한 사건인데 가해자와 피해자를 다 보게 만들고, 가해자가 악당이라기보다 신사처럼 보이게 하는데 그래서 더 질이 나쁘고 죄책감 없는 철면피 이미지를 남겨 두었다.

디카프리오가 웅얼웅얼 대사로 찌질해 보이는 연기를 하고 눈빛으로 침착하게 응시하는 몰리가 백인(양아치), 인디언(지성인) 이미지를 준다. 백인 감독의 고발 영화라 더 정당성을 갖는다.

인디언의 언어, 백인에 동화된 인디언 등 인간 군상이 등장하는데 인디언의 풍습으로 죽음에 대한 암시나 탈출구를 보이는 상징이나 꿈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1997년 연출한 <쿤둔>의 노하우가 더 다듬어져서 나온 듯하다.

Thursday, January 11, 2024

영화 < 난징! 난징! (2009)>-난징대학살을 가장 잘 표현한 영화

 루 추안 감독의 작품이다. <초한지:영웅의 부활(2012)>을 유튜브에 잠깐보다 호기심이 생겨 검색을 통해 감독과 이전 작품을 찾아 보다. 루 추안 감독은 2022년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식 총감독도 하였다.

중국인의 입장에서 본 난징대학살이라 생생히 살아 있다. 일본인 배우도 등장하는데 자국에서 부담이 많이 되었고 이후 출연도 힘들었다고 한다.

광기의 순간 숨죽이며 소극적인 자세로밖에 대처할 수 없었던 소심한 청년 일본군인를 잘 연기했다. 다른 일본군들도 잔인함이외에 미세한 심경 변화, 동료애 등도 보여 주었다.

연출의 힘도 크겠지만 일본군이 당시 동북아 최강의 군인이었고 전투대형에서 뭔가 체계가 잘 잡혀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미리 대비하지 못한 한중 정치 수뇌부의 오판이 힘없는 백성에게 죽음으로 다가왔다.


흑백필름이라 더 처참함이 살아 있다. 주변에 있는 보조출연자들의 연기도 살아 있다. 황폐한 난징의 도심의 모습과 바람이 그 안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마음의 상처를 보여 준다.

위안부가 나올 때는 조선인도 언급되는데, 일본인에 비해 중국인과 같이 화대가 반값이다.

중국영화가 홍콩무협에서 한 단계씩 발전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 <800 (2020)>에서 처럼

국민 혁명군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지금 대만 위기와 관련해서는 중국이 과거와 현재를 분리해서 보려는 의지가 있다고 본다. 

                 


                    ☝ 같이 읽으면 좋을 책들


마지막에 일본군 장례식에 일본군이 춤을 추는데 박정희가 즐겨 췄다는 미꾸라지 춤이 생각났다.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779/read/40735105

뒤에 휘날리는 휘장의 신동아新東亞도 씁쓸하게 보였다. 일본 전통북 타이코의 삼태극 문양도 낯이 익어 검색을 했는데 박물관에서 봤는지 책에서 봤지는 하여간 낯익다.

☝전주박물관 후백제 수막새 삼태극

☝익산박물관 바람개비무늬수막새(백제)


☝임진왜란에 참전한 코바야카와 타카카게의 문양이다.
금산군(금산역사문화박물관) 이치대첩 유튜브 갈무리

아마도 영화 <한산:용의 출연>에서 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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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금남로에 있는 5.18민주화운동기록관

Wednesday, January 10, 2024

책 리뷰-< 골방이 너희를 몸짱되게 하리라! >- 감옥에서 쓴 몽짱비결

 <미래를 소유한사람들/6쇄/2013>





정봉주 전 의원에 대한 나의 기억부터 정리하자면 "이명박 특검"을 위해 국회에서 몸싸움을 할 때 원톱으로 의장석으로 올라타는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다.

이후 그의 이력을 검색으로 알아본 바로는 경찰서장 아들, 3수생, 외대 영어과, 학생운동, 미국대학에서 TESOL자격 취득, 외대어학원 설립, <말>지 기자, 문익환 목사 운전기사 등이다.

유서 대필 의혹으로 유명한 강기훈씨와 인연이 있는 듯하다.

굴곡이 많은 삶이었지만 왠지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친근감이 든다. 

잘 놀고 싸움도 좀 하고 의리도 있었던 듯하다. 대부분 감옥에 가면 원망과 체념으로 보내는데 몸짱이 되겠다는 발상이 참신하다.

<만화로 보는 레님/책벌레/2001>에서 레닌은 유배지에 갔을 때 대부분의 정치범들이 질병, 정신질환, 의욕 상실로 자살을 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운동을 즐기며 농부들의 무료 법률상담(레닌은 카잔대 법대 출신이다.)을 하고 아내와 함께 책을 완역하고 가명으로 정식 출간을 했던 일이 상기되었다.


일을 하다 보니 작년부터 무릎의 거위 근 통증이 심하고 이제는 발목까지 아파 정형외과에서 염증 때문에 깊스제안도 나오는 실정이라 뭔가 근력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해 책을 읽다.



예전에 헬스장을 찾았었는데 3개월에 얼마로 미리 호객행위를 하고 환불도 안해줘 그냥 다녔는데 개인피티를 강요해 중간에 그만둔 경력이 있어 헬쓰장을 혐오하고 있다. 당시 몸의 균형이 깨져 병원비로 나갈 걸 개인피티비로 대체하라고 권고했지만 이후 한의원 추나, 요가, 선무도 등도 했고 유튜브의 의사 쌤 강의로 체형 교정의 모든 치료는 백해무익이라는 내용을 듣고 다 접었다. 


척추측만증에 대한 의사쌤 유튜브👉https://www.youtube.com/watch?v=8y9EYNAmrD0&t=257s&ab_channel=%EC%84%B8%EA%B3%84%EC%9D%BC%EB%B3%B4

한의원도 다녀 봤는데 생활 자세를 바꾸지 않으면 치료가 별 소용 없다는 레지던트 한의사의 말을 듣고 치료도 중단했다.

그래도 짬짬이 근력운동을 위해 책을 펼치다. 이전에 헬쓰나 요가에 관한 책이나 유튜브를 접해 기본 내용은 대충 알고 있지만 역시 학원강사답게 대중들이 쉽게 접근하도록 임팩트 있는 목차나 서술, 목차 등이 눈에 뛴다.


" 근육, 한계를 넘어서야 성장한다."


"팔뚝과 허벅지 둘레가 늘면 수명도 늘어난다."


이후 <나만 따라해 셀프바디성형/MSD미디어/2015>이라는 책도 냈다.

Wednesday, January 03, 2024

홀로 떠나는 마산여행2023①-누비자와 함께 한 마산 여행


마산에 일이 있어 내려 옴

10월 25일 준플레이오프  SSG : 엔씨 경기가 있었다. 
엔씨가 이겨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지었다.
경기장 앞에 있는 커피숍

창원NC선수들의 사인볼이 가득하다.



10월 26일 전날의 열기를 품고 있다.


마산 시내를 걷다.

마산에 왔음을 알 수있다.
전날 SSG를 응원왔다 숙소에서 나온  팬이 걸어 가고 있다.
패배의 상경

산호시장? 바닥에 기념동판을 보고 현대사의 심장임을 상기하다.




이곳도 사람이 북적 거렸을텐데 이젠 추억 속으로 간다.


식당 앞 창원시 공용자전거 누비자를 보다.


이영안내를 전화로 물으니 상담원이 친절하게 알려주심




주변 바닷가를 거닐다 합포수변공원에서 찰칵

월당민속박물관을 들르다.




예전 4.19기념도서관에서 본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3.15 부정선거 당시 민주당사였던 곳에 기념관을 만들었다.
안에 해설해주시는 분 안내로 걸어갈 만한 거리(?)라고 하셔서
걸어서 김주열 열사 시신인양지를 가기로 결심하다.




2차 일본원정을 실패 후 당시 합포근처에 몽고군이 진을 쳤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여기서 발견한 우물에 몽고정이라고 기념비를 세웠다. 

자신들을 2차에 걸쳐 쳐들어 온 세계최강 원나라 군사기지라 관심이 있었나 보다.



몽고군은 이곳에서 합포항을 내려다 보며 3차 원정을 구상했을까?

고려군은 더 이상 전쟁을 끝내고 싶어했을까?

이 곳에 오른 일제강점기 일본인는 일본 쪽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몽고간장이 여기서 시작되었나 보다.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민에게 경찰이 발포하여 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중간에 걸어 가다 붕어빵도 사먹었다.



걷다 거다 힘들어서 마산합포구청사거리에서 누비자를 타다.









남원 출신인데 마산에서 민주화항쟁에 참여해 산화하였다.
마산상고합격 후 불안한 시국으로 발표가 연기되어 확인차 들렀다가 시위대와 맞딱드린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던 상황에

순간의 선택이 

현대사의 역사를 

바꿔놓았다.

이전 중학교 때부터 시국에 관심이 많았었고 
집도 부유한 편이었다고 한다.

당시 김주열의 죽음에 관련된 
경찰이 일제강점기 경찰이었다는 점에서 
과거 청산의 문제를 다시 떠올린다.



광주에서도 공연홍보물을 보았는데 전국투어 중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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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남원 광안루에서 본 김주열 열사 흉상

영화 < 이누가미 일족 (1976) > -옛날 영화인데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

 일본대사관의 홍보 메일을 받아 확인해 보니 상암동 영상자료원에서 하고 있었다. 예약을 못 하고 현장 발권했는데 예약만 하고 오지 않으신 분들이 많아서 빈자리가 많았다. 카토카와회사의 상징인 봉황이 나오는데 고구려 봉황과 비슷하다. 1950년 요쿄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