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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August, 2017

전시-닉베세이의 엑스레이맨 X-RAY MAN by NICK VEAS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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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미디어카페 후에서 할인 문자가 와서 들르다. 한가람미술관 7전시실이 지하에 있어 찾기 힘들었고 전시공간도 좁았다.  엑스레이 소재로 사물을 표현하는 발상이 특이하다.  보조배터리,,,

면도 크림 질레트 시리즈 센서티브 스킨 쉐이빙 젤 사용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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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과 폼이 같이 첨가 된 듯하다. 거품이 풍부해 조금만 덜어내도 흡족히 쓰고도 남는다. 가장 이상적인 면도크림일듯,,, 올리브 향인지 면도후 상쾌하다. 피부보호도 잘되는 듯,,, 질레트는 상품 종류가 너무 많아 뭐가뭔지 알 수가 없다.

서울 구석구석-지하철 치킨배달 광고 Fried Chicken & Food Delievery Smartphone App advertising in Seoul Subway lin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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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범자들Criminal Conspiracy > 시사회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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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토리펀딩으로 인연을 맺게 되어 관람하게되다. 사실 시사회라고 하여 영화가 개봉한 줄 몰랐다,,, 영화를 보는 내내 지난 일들이 내 개인적인 일들과 같이 엮여 떠오르며 영화<덩케르트>처럼 한 사건안에 다른 상황,기억들이 흘러갔다. 보도되지 않았거나 축소보도되어 잊혀졌던 일들이 생생한 영상과 함께 보여지니 마치 퍼즐조각을 맞추 듯 지난 일들이 하나하나 선명하게 연결고리를 찾아갔다. 입소문으로 MBC앞 스케이트장에 짤린 PD들이 관리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왔고 신문기사를 위해 사실임을 알게 되었다. 책임져야할 사람들은 모르쇠로 일관했고 언론유인과정에서 침묵하지 않고 힘겹게 싸워나간 사람들이 있었다,,, 절차,헌법,사실여부를 주장하는 사람사람들은 길거리에 나온 언론인들의 카더라소식통과 싸움에서 거짓말,위선임이 드러났다. 미네르바 사건을 계기로 인터넷기사에 댓글을 쓰지 않고 좋아요를 누르는 습관은 아직도 유지하고 있으며, 평소 읽지도 않던 내 블로그가 시위관련 글과 사진을 올린뒤 꾸준히 몇백명이 들랑달랑 하며 뭐지? 하다가 민간인 사찰보도가 나간뒤 갑자기 몇십명 내외로 줄어들어 이건또 뭔가 싶던 ,,,심증은 있으나 물증은 없는 그런 시절이 있었다. 홍익대 청소노동자분들에 후원금을 보낸뒤 <금융거래정보 제공사실 통보서>라는 걸 받고 마포경찰서에 문의한 뒤 "별거 아니라"는 경찰관의 답변을 듣고 별거 있구나 뜨악 하던 때도 있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62460.html 3000여명중 40여명을 무작위로 뽑아 조사했다는데 3000대 40의 경쟁률를 뚫고 내가 뽑여 평소 반정부성향이 강한 나를 콕찝어 조사한 경찰의 대단한 눈썰미를 칭찬하며,,,  무용담으로 자랑하던 그런 씁쓸한 기억 2017년 여름 여전히 해결을 보지 못하고 진통을 겪고 있다. 절대 권력자들은 아무...

낙성대 Nakseongdae 강감찬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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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성대역안 홍보물  초딩때 가보고 다시와봄 당시 엄청먼길,,, 그리고 탑은 어렴풋 기억난다... 새단장을 깨끗하게 했다. 명문가 출신이고 태몽도 별을 안고 낳았는데 36세에 문과수석합격-_-;; 이후 고려사 기록이 없는거 한직 전전,,, 그러나 영화는 항상 마지막에 극적반전이 있는 법 귀주대첩으로 고려를 구하고 동아시아 질서를 재편하다,,,

의병대장 운강 이강년(1858~1908) 추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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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문경출생으로 22세에 무과에 급제하였으나 1882년 임오군란1884년 갑신정변등으로 정국이 혼라한 와중에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시고 후일을 기약하시다. 동학봉기에 참가했다가 이후 의병활동을 하시다 제천전투에서 500여 적을 섬멸하시다.  제천 청풍 까치성 전투에서 장마철이라 화승총을 쓸수 없어 고전하던차에 복사뼈에 총탄을 맞고 사로 잡히시다.재판에 회부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시다. (일본검사杉村逸樓삼나무 마을의 편안한 다락?와 일본판사 모리시마森島彌四郞가 내란죄로 교수형 내림) 군인이 전장에서 죽지 못하고 부상으로 체포되어 수모를 당한갓을 개탄하는 시를 남기셨다. 무관출신이면서 동학군,의병활동 등의 실전경험을 바탕으로 보병전법님 속오작대도를 완성하다. 나름대로 의병군이 일제와 싸워 승리한 데에는 이분의 군사전략과 군율,교련등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당시부터 전면전이 아닌 산전山戰에서 매복,복병을 위주로 전투훈련을 받지 않은 의병을 게릴라 전투로 위주로 대항한것- 설복비계(設伏秘計 )- 이 이후 중국공산당과 베트남전에서 호치민군이 활용한 전략의 효시가 되었다는 견해의 실제사례가 아닐까 싶다. 여러 언변과 관련한 기록으로 미루어보아 학문이 깊고 뛰어나신 분이 틀림없다. (이순신장군도 문무에 출중하셨다...조선의 무관교육의 단면을 봄) 고위장교출신임에도 동학군,의병활동 등 대의를 위해 민중과 함께한 그의 심성이 대단하시다. 후손들은 재산을 강탈당하였다. 아마도 이곳이 까치성 전투와 관련있는 곳인 듯하다. 기념관링크 http://www.gbmg.go.kr/open.content/ungang/ 블로그1. http://mpva.tistory.com/19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