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 내항 이래 50여 년,
국비를 투입해서 해군을 양성한 것은
전투 30분을 위함이었다."
배가 아플 때 먹던 정로환이라는 약은 러시아를 정벌하려는 의도(征露)가 담긴 러일전쟁 산물이었고 은단은 청일전쟁 당시 대만과의 관계에서 유래된 것이었다.
이 소설은 메이지 유신부터 이후 러일전쟁까지 30년간의 이야기다. 주변 정세나 일본의 근대화 과정이 소소하게 담겨있어 읽는 재미가 있다.
관련 책으로 <짜르의 마지막 함대>가 있다.
같은 시대, 같은 전쟁에 대해 다르게 바라보고 있다.
👉https://dankunjosun.blogspot.com/2008/11/blog-post_9034.html
👉이 책에서는 극동에서 여력이 없던 영국과 미국이 일본을 이용하여 러시아와의 군사분쟁을 방조, 야기하여 두 분쟁국이 다 탈진하기를 유도했다고 주장한다.
독일의 카이저는 사촌인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를 꼬여 러일전쟁을 유발했고 독일의 숙적인 프랑스육군을 약체화시키려면 러시아 육군을 아시아로 몰아내야 한다고 믿었다.
루스벨트는 일본이 러시아에 근소하게 이겨 아시아에서 영향력 견제를 노렸다.
1900년 의화단 봉기를 진압하려는 독일군 앞에 빌헬름 2세는 "천년이 흐른 뒤에도 중국인이 독일인을 바로 바라 보지 못할 정도"로 강경 진압을 주문하고 연합군에는 일본도 있었다.
아마도 동학진압과정에 활용한 듯하다.
그 당시 서구가 중국을 보는 시각은 일본이 우리를 보는 시각과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일본이 바라본 국제정세와 대응이 완고하게 표현되었지만, 여러 부분에서 한국인의 입장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그러한 점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 동학에 대해서는 소개 정도이고 진압과정의 피해나 잔학성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 을미사변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없다.
- 고승호 사건에서 보듯 한국인이든 중국인이든 자신과는 다른 열등 민족이라고 생각하면 가차 없이 짓밟고, 영국인 등 서구인 등 강대국에는 굽신굽신하는 사하 -마호티즘을 갖고 있다.
- 터키가 아시아인지도 불분명한데 터키의 몰락 이후 아시아의 대체 메인이 왜 일본일까?
- 이토 히로부미를 평화주의자로 묘사하고 군부가 전횡하는 것을 프로이센 헌법을 도입한 맹점에 있다는 주장
- 세계를 지배했던 몽골제국의 후계자로 파란 눈의 몽골인 러시아를 설정 후 러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이 지구최강이라는 논리
- 일본함대가 진해에서 출발했기에 그랬을 수도 있지만, 이순신이 조선에서는 잊히고, 메이지 시대 해군 창설 후 본격 연구되었다거나 동아시아 방위를 위해 이순신에게 출항 전 승리를 빌었다는 논리
- 러일전쟁의 승리가 종국적으로 한반도 전체 공산화를 미연에 방지했다는 논리<-영국 견제, 고구려,신라,고려의 대외항쟁이 일본 평화를 지켜 준 것은 아닐까?
러시아의 남하 정책이 일본을 자극하여 결국에는 전쟁으로 치닫는 실제 원인이었다는 주장은 과연 사실인가?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화를 이룩한 일본이 당장 아시아의 메인이 자리를 차지했다는 역사적 사실이나 근거는 어디에 있나?
한국이 지리적 위치에 의해 일본과 대륙의 완충지였다면 일본 역시 지리적 이점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점이 있지 않았을까?
메이지 유신 이후 각국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고 외교역량을 발휘한 것은 인정할 만하고 그당시 변화하는 사회상은 나의 어린 시절과도 겹치는 듯하다.
등록금 문제로 사관학교나 국공립학교를 지원했던 것, 영어 문제로 난관을 겪어 학과나 진로가 결정되던 시절 등이다.
밀크 홀이라고 우유를 마시면 무료로 신문을 볼 수 있는 요즘의 북카페 같은 게 일본에 있었다는 사실
일본이 미국과 스페인이 쿠바를 두고 벌인 해전을 러일전쟁에 응용한 것, 예맥족에 대한 정리,
이돈성님의 <고조선찾기>에서는 맥족이 흰옷 입은 사람이 신령스러운 짐승을 데리고 다녔다고 해석하는데 시바 료타로는 승냥이 시 豺, 표범 표 豹, 담비 초 貂라고 하여 자기 지역 밖을 야만인 취급하여 짐승과 같다고 표현했다고 주장한다.
👉https://dankunjosun.blogspot.com/2017/10/in-search-of-old-joseon2016.html
맥족의 후예들 👉https://dankunjosun.blogspot.com/2020/05/blog-post_26.html러시아를 파란 눈의 몽골인 취급,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가 일본에서의 봉변으로 평생 일본을 비하했다는 기록, 일본인의 캘리포니아 이민으로 경제 타격을 입은 미국인 노동자의 경계 이야기는 지금 한국에서 겪는 이민자 문제와도 흡사하다. 예일 대학 설립 100주년으로 이토 히로부미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준 사실도 일본이 미국에 공을 들인 흔적을 할 수 있다.
표토르 2세가 엔지니어로 신분을 속이고 욕 얻어 먹어가며 일했던 기록
프로이센이 프랑스의 전쟁(1870년)에서 기습전을 일본이 조선에서 청나라, 러시아, 중일전쟁에 적용한 점
영국이 미국 인디언 이로쿼이족을 이용해 멸족시킨 전략을 아시아에 일본에 적용한다고 받아 들인 점,
러일전쟁 승리 후 포츠머스 조약으로 배상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자 불만을 표출하며 일본이 폭주하게 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청일전쟁, 러일전쟁의 단기전과 국지전의 이외의 승리가 국가 간 총력전에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을 결심하게 하는 오판을 유도했다.
<중일전쟁/권성욱/미지북스/2017> 👉https://dankunjosun.blogspot.com/2018/03/blog-post_31.html
<건담과 일본/타네 기요시/워크라이프/2017> 👉https://dankunjosun.blogspot.com/2018/08/2017_29.html
일본에는 천운이 따른다.
2천6백 년 이래 패한 적이 없었다.
청나라와 프랑스가 베트남을 두고 벌인 전쟁(1884년)에 일본이 깊숙이 정탐하여 청일전쟁에 활용한 점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이 전면전이 아닌 지엽적 전쟁이라 청나라와 러시아의 내부사정(볼셰비키 혁명-이 또한 일본인이 비밀지원하였다.)으로 전면전을 하지 못했고 일본은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게 된다. 결국, 본게임으로 중일전쟁 후 극심한 물자난에 시달리고 보급 부족으로 난관에 부딪힌다. 2차 대전 말 소련에게 만주에서 치욕적인 궤멸을 겪게 된다는 것을 예측하지 못하고 전쟁의 1막의 승리로 휘파람을 불고 있다.
2차 대전 패전으로 쿠릴 반도에서 일본인이 러시아에 영토를 빼앗긴 내용의 애니메이션<은하철도의 밤> 👉https://dankunjosun.blogspot.com/2021/03/blog-post_12.html
러시아 내무장관 플레베는 국내 혁명 분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소규모 전쟁이 필요하다고 주장
(하지만 당시 러일전쟁은 국민 관심 밖)
마카로프는 평민 출신 용장으로 현장경험과 이론가로 지덕체를 겸비한 무인이었다.
일본인이 과민해서 청일전쟁 당시에도 사격에 능하지 못했다는 지적
시모세가 피크린산이 철에 접촉하면 과민 반응이 일어나는 것에 착안하여 화약을 만들었다고 한다.
야콥시프가 러시아의 유대인 탄압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헌 옷 장사부터 시작하여 부자가 된 독일계 유대인에게 일본은 금융지원을 받아 기사회생
러시아군은 "신이 우리를 비호하고 있으며, 승리는 의심할 바 없다"고 확신
러시아군은 일본군의 야습이나 백병전도 초반에는 당황했으나 금방 습득하여 반대로 야습과 백병전으로 돌격해왔다.
포루에서 싸우다 껴안고 숨진 일본군과 러시아 병사를 보니 일본군은 눈알이 빠졌고 입으로 러시아군 목을 물어 기관이 드러나 있었다.
러시아의 전근대성이 일본과의 전쟁에서 패전하리라고 예측한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주장을 실었지만, 당시 일본의 내부사정을 보면 그렇게 러시아보다 근대적이었다고 할 수 없다.
혹한기 훈련을 하다 터진 핫코다 산 사고나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가 일본 방문중 당한 테러에 대한 사죄 표현을 일본 전 국민이 한 사실(용서를 구하며 자결한 여인도 있었으니,,,)
전쟁 패인으로 지목된 일본해군과 육군의 뿌리 깊은 불화는 그 전근대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일본육군(조슈번) | 일본해군(사쓰마번) |
조슈 번 특수부대 출신 | 도쿠가와 막부 수군+ 규슈 번 출신 |
독일 | 영국 |
세균 중시 의학 | 영양보충 의학 |
러시아함대가 범선이 아닌 영국지배하의 세계 각국에서 석탄을 확보하며 자력으로 함대를 이끌고 지구 반대편으로 온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 <짜르의 마지막 함대>에서도 나오지만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은 분명 반대했으나 니콜라이 2세의 독단적 결정이었고, 제독이 요청한 최신배에 대한 지원 요청도 들어주지 않았다.
러시아 관료의 부패로 저질 석탄을 공급한 사실
여순함대의 전투정보로 러시아 함대는 전투함의 장갑에 대한 자부심이 오판을 가져온다.
청일전쟁 후 1895, 1896년에 10개년 계획으로 러시아의 남하와 일본의 충돌을 우려 본격적으로 해군 투자
일본인들은 세계 곳곳에서 치밀하게 전쟁을 준비
핀란드, 폴란드, 스웨덴의 러시아와의 관계, 그리고 자부심
폴란드와 러시아는 조선과 일본과 닮은 역사
일본 외교관들이 정보 획득과 회의, 파티 문화로 자극받아 유럽어 맹공
로제스트벤스키는 러시아함대의 굴뚝을 노랗게 칠해 일본군의 타킷이 되도록 하는 치명적 실수
쓰시마 해전 직전 이순신에게 승리를 빌었다는 소문이 무성했고 기록의 출처:<포탄 속을 뚫고>, 가와다 이사오, 당시 수뢰정 소속 소위
오키노시마 섬에서 해전 중 신사에 기도 드린 일화
쓰시마 해전에 패전했으면 일본의 여러 섬을 러시아에 빼앗기고 조선도 러시아의 속국이 되었으리라는 주장
일본은 최신 무선기술활용 러시아는 기류 신호 선호한 점을 비교
전쟁전 사카모토 료마가 일본왕후의 꿈에 나타나 안심하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시바료타로/대망25 사카모토 료마/동서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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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기본적으로 군인 무사의 마인드로 이기기 위해 실용적인 도선과 정보, 신무기에 개방적이었고 조선은 과거를 통한 문과생이 많아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체면치레로 세계사의 흐름을 읽지 못했다.
1636년 광해군의 외교로 명, 청 교체기에 살얼음판을 걷다가 인조반정으로 청나라를 오랑캐 취급하다 제대로 털리고 1840년대 아편전쟁이 벌어져 청나라의 난리가 날 때 조선 최고의 석학인 김정희는 제주도에서 유배 중에 해안선을 측정하는 영국 배를 보고도 무지에 가까운 발언을 했다. 👉https://dankunjosun.blogspot.com/2019/07/ito-hirobumi-1863.html
일본 사무라이들은 아편전쟁과 페리 함대의 개항(1853)으로 일본에는 저런 큰 배가 없다고 개탄하며 일본 전체를 개혁시키기 시작하여 해군에 장기적 투자를 시작 50여 년 후 1905년 러시아 함대를 쓰시마 해전(동해 해전)에서 궤멸시킨다.
우리는 학교에서 역사를 배울 때 일본근대화에 대해 거의 언급을 안 하고 일본인을 비하하는 것만 화제로 삼아 아직도 섬나라 사람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구한말의 오류를 반복하고 있다.
일본은 1억 3천의 인구에 프랑스보다 인구가 많고 독일보다 큰 영토를 가지고 있고 사계절이 우리보다 뚜렷한 나라이다.
쓰시마섬은 부산에서 60Km, 일본 본토에서는 80km 거리다. 80년대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시 옥상에서 뿌린 전단이 쓰시마섬까지 날아갔다. 그만큼 지리적으로 가깝다.
일본, 일본인은 2천 년간 우리와 교류하고 살았고 요즘 유튜브 일본 24시간 날씨를 보면 하루 차이로 한반도 날씨를 예견할 수 있다.
그들은 우리에게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