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https://dankunjosun.blogspot.com/2022/03/2.html
경희대학교 사학과 강인욱 교수님은 러시아에 유학 갔을 때 만주와 한반도를 그들의 시각에서는 한 문화영역으로 묶어 보는 것을 보고 영토개념의 편차에 대해 충격을 받았다. 한반도, 만주는 중국의 한 성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중국이 통일되기 이전의 중국, 한족 외의 여러 민족이 살던 나라를 전제해야 한다.
고조선 준왕, 정가와자 이야기
조윤제 교수님 중국에 최치원기념관이 있다. 유학 당시 중국도 남한 사람을 못 만나 신기해했다. 백제 토기는 남조 것인데 아마도 중국 시장 근처에서 유입된 듯하다. 백제가 교환한 물건은 포, 베 등이라 남아 있지 않다.
김대환 국립경주박물관 샘은 신라가 북조를 세운 흉노의 후예를 자초하며 왕권 강화를 노린 듯하다. 당시 흉노의 후예를 자처하는 세력은 주변에 많이 있었다. 다만 부여계 고구려나, 백제는 그렇지 않았고 아마도 신라의 콤플렉스가 작용한 듯하다.
로만 글라스도 백제는 남조토기를 지방영주에게 나눠 주며 왕권강화를 노렸는데 신라는 의복이나 왕관은 나눠줘도 로만 글라스는 그렇지 않았는데 유독 유라시아 문화에 집착한 것은 부여계가 아닌 것에 대한 집착이 백제, 고구려와 취향 차이를 가져 온듯하다.
북한 수군이 서해해군과 동해해군이 교류하기 힘들고 그래서 독특한 각자 문화를 만들어 내듯이 고구려도 그러했을 것이다.
고구려 남방 정책에서 신라는 유물이 안 나오는데 백제는 고구려 토기가 나오는 것은 아마도 수방사 같은 주력군이 오랜 한강 주도권 교전을 통해 밀고 내려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