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y 14, 2013

Monday, May 13, 2013

서울 구석구석-서소문성지를 가보다. Seosomun martyrs shrine



카톨릭은 종교적의미보다 당시 변화하는 국제정세와 유교정치의 한계를 극복할 개혁이념으로 많은 이들의 동조를 받았다.

몰락한 양반,서자나 노비, 여자들에게 평등한 사회이념은 매력적인 이끌림이었다.

서구과학문명의 충격적인 면과 답이 없이 끊임없이 가라앉는 조선사회에 하나의 대안사상이었다.

하지만 기득권세력에 의한 탄압은 난폭했고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언제가 기독교여학생이 순교를 예를 들어 신을 증거한 것이라며 그분들이 신을 목격했기때문에 과감히 목숨을 던졌다고 하지만 기독교와 카돌릭은 다르며 우왕좌왕하는 사이 대역죄인으로 몰려 죽음을 당한건지 신을 부인하면 살려준다고 선택의 기회를 준것인지는 잘모르겠다.

기독교인은 카톨릭 순교자의 희생위에 덤으로 들어와 우리와 미국과의 특수관계에 기록적인 성장을 한것은 사실아닌가?카톨릭 신부가 프랑스침공 당시(병인양요) 뱃길을 안내하고

제주도 이재주 항쟁시 보였던 태도 역시 비판 받을 만한 일이다.

안중근이 카톨릭신부 프랑스인 홍신부의 과함을 비판했다가 구타당했고, 이토 히로부미 암살후 기도해 달라고 할때 일제에 대한 오해를 풀고 살인죄를 참회하라고 하였다.(김용옥<요한복음강해/통나무 출판사> <뮈텔 주교의 일기4/한국교회사연구소>)

1866년 오페르트(독일인)는 미국인 젠킨스의 자금지원을 받아  프랑스 선교사 페롱을 앞세우고,,,조선인 천주교도 약간명과 함께,,,구만포쪽으로 들어와 총을 쏘며 질주하며 흥선대원군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19세기 서구제국주의자들은 후진국에 "개방"이라는 명목으로,,,,

장사꾼기독교선교사대포와 총칼을 동원하였다,,,(나의 문와유적답사기1권/유홍준/113쪽)



그들은 철도부설권도 가져갔고 광산채굴권도 가져가지 않았는가?

우리가 베트남에 기업과 선교사가 나가 있지만 일정 부분 우리나라에 정보제공도 하고 우리기업의 이권개입에 일정부분 개입도 하지 않는가 말이다.

최근 CNN에 리비아에 미국음식이 유행이라고 기사가 났다.





최창조샘의 책에 보면 양화대교와 한강철교에 절두산과 새남터 순교지가 있는것이 철길소리로 사지의 음습함을 덮기 위함이라 하는데 여기 서소문 순교지도 옆에 철길이 있다.

성스러운곳

오래 이곳을 지나쳐도 이런곳이 있는지 몰랐는데..주위엔 노숙자들의 쉼터이고, 그들이 꿈꾸던 사회개혁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Saturday, May 11, 2013

도서관 리뷰 : 서울도서관 Seoul Metropolitan Library



서울도서관이 생겼다고 하여 가봄

(매주 월요일이 휴관이라 두번 바람맞음)
어두운 역사성과 권력기관이 갖는 상징물이 이제는  힘의 원천이 책을 읽은 소소한 시민에게 있다는 의미로 도서관으로 재탄생

이제는 과시성 이벤트나 체육행사가 아닌 조용한 도서관이 시대상에 맞는다는 시대요구를 잘 담아 구시청건물을 도서관으로 내놨다.
























다소 소란스럽지만 상징이 되어버린 이층 올라가는 계단

싸이의 젠틀맨 뮤직비됴 촬영장소

(퇴관시간 이후에 촬영했다고 함)






















물먹는 옆 공간 전산자료예약기계

터치식인데 잘안된다.



 5월1일 근로자의 날 행사중

이제 집회나 축구응원장소가 아닌 도서관 앞이니 확성기집회 자제 바랍니다.

집회참가자들이 도서관에 우루루 들어와 돌아 다니며 잡담하는 것도 안되고요~~

대학시절 총학생후보들은 도서관앞 확성기집회금지 공약을 늘 내놓으면서  당선이후
한번도 그 공약을 지키지 않았다.

그들은 그리고 몰락해서 뿔뿔히 흩어졌다....

시청 앞은 이제 집회장소가 아니예요~~

시청의 식민지기억을 극복하는 처마모양 신축건물

어두운 음지를 미래지향적인 도서관으로 탈바꿈한 아이디어가 좋다.

건물을 개방함으로 항상 함께 한다는 친근한 이미지도 좋다.

영화 < 이누가미 일족 (1976) > -옛날 영화인데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

 일본대사관의 홍보 메일을 받아 확인해 보니 상암동 영상자료원에서 하고 있었다. 예약을 못 하고 현장 발권했는데 예약만 하고 오지 않으신 분들이 많아서 빈자리가 많았다. 카토카와회사의 상징인 봉황이 나오는데 고구려 봉황과 비슷하다. 1950년 요쿄미조...